심상편의 느린 장부, 음덕은 다음 세대 명의로 정산된다
심상편(心相篇)의 가장 깊은 층에는 하나의 전제가 깔려 있다. 사람의 행동은 눈에 보이는 보상보다 훨씬 느리게 정산되는 장부에 함께 기록된다는 것이다. 천 년 전 도교 학자 진단이 남긴 이 글은 그 장부를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있는 것처럼 사람을 읽는다. 이 전제를 빼면 심상편의 절반은 설명되지 않는다.

심상편의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欺蔽陰私 縱有榮華兒不享. 남을 속이고 가리고 사사로이 음험한 사람은, 설령 당대에 영화를 누려도 그 자손이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 그 짝이 되는 구절은 公平正直 雖無子息死為神. 공평하고 정직한 사람은 비록 자식이 없어도 죽어서 신이 된다. 보상의 시간 축이 한 사람의 생을 넘어간다. 이것이 느린 장부의 첫 번째 성질이다.
심상편이 이 대목에서 거듭 쓰는 글자가 하나 있다. 陰이다. 多陰毒 積陰私 有陰行. 음험한 독을 품고, 남몰래 사사로움을 쌓고, 드러나지 않는 못된 짓을 한다.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은 숨어 있다는 것이고, 숨어 있기 때문에 당대에는 비용이 청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음(陰)의 행동이 공짜라고 착각한다. 심상편의 셈법에서 陰은 공짜가 아니라 외상이다. 청구서가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늦게 올 뿐이다. 그 반대편에 음덕(陰德)이 있다. 남이 모르게 쌓는 덕. 이것도 당대에는 보상이 보이지 않는다. 같은 이유, 곧 숨어 있다는 이유로 늦게 정산된다.
심상편은 이 정산의 기간을 구체적으로 말한다. 積功累仁 百年必報. 공을 쌓고 어짊을 쌓으면 백 년 안에 반드시 갚아진다. 백 년은 한 사람의 생을 넘는 길이다. 즉 심상편은 자기 생애 안의 회수를 약속하지 않는다. 이것이 느린 장부의 핵심 성질이다. 정산이 느리기 때문에, 당대의 손익만 보는 눈으로는 장부가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악행이 벌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선행이 보상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심상편은 장부가 거짓이어서가 아니라 만기가 길어서라고 본다.
심상편에서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절은 아마 이것이다. 甘受人欺 有子忽然大發. 남에게 속는 것을 달게 받는 사람은, 그 자식이 어느 날 갑자기 크게 일어선다. 속고도 되갚지 않는 것은 당장 보면 어리석음이다. 심상편은 그 어리석음을 다음 세대 명의로 된 예치로 본다. 待人有地 無端得福更延年. 남을 대할 때 여지를 두면, 까닭 없이 복을 얻고 수명까지 늘어난다. 여기서 까닭 없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까닭은 분명히 있는데, 너무 멀리 있어서 본인에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
심상편 뒷부분에는 묻고 답하는 형식의 짧은 구절들이 이어진다. 어찌하여 일찍 죽고 몸을 잃는가. 出薄言 做薄事 存薄心, 박한 말을 하고 박한 일을 하고 박한 마음을 품어, 매사가 박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흉한 재앙으로 죽는가. 事事皆陰, 매사가 음험하기 때문이다. 운명의 결과를 묻는데, 답은 한 번도 사주나 별자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답은 늘 그 사람이 무엇을 쌓았는가로 돌아간다. 굶어 죽는 것이 어찌 얼굴의 무늬에 달렸겠느냐고, 심상편은 못 박는다. 이 시리즈의 첫 편에서 본 그 자리다. 관상서가 끝까지 관상을 부정한다.
이 느린 장부가 실재하는지는 증명할 수 없다. 백 년을 추적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한 집안의 흥망에는 변수가 너무 많아 어느 한 가지를 원인으로 지목하기 어렵다. 심상편 자신도 끝내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장부가 있다고 가정하고 사는 사람과, 없다고 가정하고 사는 사람은, 매일의 작은 선택에서 다르게 움직인다. 그리고 그 작은 선택의 누적이, 심상편이 처음부터 읽으려 했던 바로 그 행동이다. 장부가 실재하든 아니든, 그것을 믿는 행위가 이미 심상을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장부가 있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지금 어느 쪽에 걸고 있느냐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