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노력은 성공의 몇 퍼센트인가?

성공에서 노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우리가 믿는 것보다 훨씬 작다. 의도적 연습(deliberate practice)이 성과의 차이를 얼마나 설명하는지 측정한 대규모 연구에서, 그 비율은 분야에 따라 26퍼센트에서 1퍼센트 미만까지 흩어졌다. 노력은 성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그리고 방향이 틀린 노력은 성공을 못 만들 뿐 아니라, 실패를 더 빨리 불러온다.

2014년 심리학자 브룩 맥나마라(Brooke Macnamara) 연구진이 학술지 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한 메타분석은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뤘다. 게임, 음악, 스포츠, 교육, 전문직을 가리지 않고 모은 데이터에서, 의도적 연습은 게임 성과의 26퍼센트, 음악의 21퍼센트, 스포츠의 18퍼센트, 학업의 4퍼센트, 전문직 성과의 1퍼센트 미만을 설명했다. 나머지는 전부 다른 요인의 몫이었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수준이 올라갈수록 노력의 설명력이 오히려 줄어든다는 점이다. 같은 연구진이 2016년 엘리트 선수만 따로 떼어 분석했을 때, 의도적 연습이 설명한 성과의 차이는 1퍼센트에 그쳤다. 가장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누가 더 연습했는가가 거의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회는 정반대로 말한다. 노력하면 된다, 안 되는 건 덜 노력해서다. 이것이 능력주의(meritocracy)의 핵심 문장이다. 이 믿음을 정면으로 흔든 연구가 있다. 이탈리아 카타니아대학의 알레산드로 플루치노(Alessandro Pluchino) 연구진은 2018년 학술지 Advances in Complex Systems에 한 가지 모순을 제시했다. 재능과 지능은 정규분포(가우스 분포)를 따르는데, 성공의 대용물인 부는 멱법칙(power law)을 따른다. 입력은 평균 근처에 모여 있는데 출력은 극단적으로 쏠린다면, 무대 뒤에 숨은 재료가 있다는 신호다. 그들이 행위자 기반 시뮬레이션으로 찾아낸 숨은 재료는 운이었다.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행위자의 재능은 평균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었고, 정작 가장 재능이 뛰어난 행위자는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최고의 성공과 최고의 재능이 겹치는 일은 없었고, 그것이 예외가 아니라 규칙이었다. 연구진의 표현을 빌리면, 뛰어난 재능은 큰 성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이 연구는 2022년 이그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렇다면 끈기는 다를까. 앤절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가 대중화한 그릿(grit), 즉 장기 목표를 향한 끈기와 열정은 한동안 성공의 만능 열쇠처럼 다뤄졌다. 마커스 크레데(Marcus Credé) 연구진이 2017년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발표한 메타분석은 그 열기를 식혔다. 88개 표본, 66,807명의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그릿은 성과 및 지속과 중간 정도로만 상관이 있었고, 성실성(conscientiousness)과는 매우 강하게 겹쳤다. 그릿과 성실성의 상관은 0.84에 달해, 두 개념이 사실상 같은 것을 측정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결론은 그릿을 끌어올리려는 개입이 성과와 성공에 미치는 효과가 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논문 제목이 곧 결론이었다. 그릿에 대한 소란(Much Ado About Grit). 

노력의 양이 아니라 방향이 문제라는 것은 시장에서 매일 확인된다. 30년 가까이 시장을 지켜보며 본 가장 흔한 파산은 게으른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추세를 거슬러, 그것도 레버리지를 걸고, 남보다 두 배로 부지런했던 사람의 것이었다. 방향이 맞으면 레버리지는 수익을 키우지만, 방향이 틀리면 같은 레버리지가 손실을 키운다. 노력은 레버리지를 닮았다. 방향을 정하지 않은 노력은 가속 페달일 뿐 핸들이 아니다. 핸들이 잘못 꺾인 채로 페달만 깊게 밟으면, 도착이 빨라지는 게 아니라 사고가 빨라진다.

노자는 道德經 73장에서 天之道 不爭而善勝이라 했다. 하늘의 길은 다투지 않고도 잘 이긴다는 뜻이다. 이어 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성기어 보여도 놓치는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개인의 분투보다 먼저 짜여 있는 더 큰 그물이 있고, 결과는 그 그물의 결을 따라 떨어진다는 관점이다. 다투어 이기는 것이 아니라, 결을 타서 이긴다.

명리학은 이 그물을 대운(大運)이라 부른다. 투입한 노력의 총량은 똑같은데, 한쪽에서는 결실이 되고 다른 쪽에서는 탈진이 된다. 무엇이 갈랐는가. 노력의 크기가 아니라, 그 노력이 흐름과 같은 방향이었는가 거스르는 방향이었는가다.

그렇다면 질문은 옮겨간다. 나는 충분히 노력했는가가 아니라, 나는 흐름이 이미 가고 있는 방향으로 노력했는가로. 그리고 그 방향은 누가, 무엇이 정하는가. 부지런한 사람일수록 대개 그것을 묻지 않는다. 묻지 않은 채로, 더 빨리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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