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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마다 싸우는 집, 진짜 원인은 ?

명절마다 싸우는 집은 왜 싸우는가. 반찬이 짜다, 그릇이 깨졌다, 친정을 너무 갔다, 시댁은 너무 안 갔다. 백만 원도 안 되는 돈 때문에 목소리가 올라가고, 누군가 한 사람의 기분이 바닥을 치면 온 집안이 전쟁터가 된다. 겉으로 보면 돈 문제다. 그러나 실제로는 돈이 아니다. 오랫동안 쌓인 서운함이 명절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한꺼번에 터지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설과 추석 직후인 2월에서 3월, 10월에서 11월의 이혼 건수가 직전 달보다 평균 11.5퍼센트 높다. 2023년 추석 연휴 기간 가정폭력 112 신고는 5,734건으로, 전년도 3,742건 대비 53퍼센트나 급증했다. 알바천국이 2024년 성인 3,44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는 3명 중 1명이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고, 그 원인 1위는 취업이나 직업에 대한 잔소리, 2위는 선물과 용돈 등의 비용 부담이었다. 숫자가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명절은 많은 가정에게 축제가 아니라 시험이다.

도덕경(道德經) 18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六親不和 有孝慈. 가족이 화목하지 못하면 비로소 효도와 자애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노자의 이 말은 역설이다. 진짜 화목한 집에서는 효도라는 단어 자체가 필요 없다. 효도가 강조되는 순간, 이미 그 집은 무언가 어긋나 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명절에 유독 “가족이니까 참아야지”라는 말이 많이 오가는 집일수록 평소에 참을 것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참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참는 것은 말하지 못하는 것이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관계가 이미 기울어져 있다는 신호다.

사실 명절의 갈등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추수감사절(Thanksgiving)은 가족 갈등의 대명사다. 미국심리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38퍼센트가 연말 가족 모임에서 스트레스가 증가한다고 응답했다. 돈, 정치, 종교, 자녀 양육 방식을 둘러싼 의견 충돌이 주된 원인이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평소에 거리를 두고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한 공간에 모이면 갈등이 생긴다. 거리가 예의를 만들고, 밀착이 마찰을 만든다. 이것은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어볼 것이 있다. 이런 문제가 생기는 가정은 저층 가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말은 소득이 낮다는 뜻이 아니다. 예의나 도리를 모른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에너지(기)가 낮다는 이야기다. 가난해도 조용한 집이 있고, 부유해도 매일 싸우는 집이 있다. 저층이라는 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기(氣)의 문제다. 집안의 기가 낮다는 것은 그 집에 여유가 없다는 뜻이고, 여유가 없다는 것은 서로에게 한 발짝 물러설 공간이 없다는 뜻이다. 도교에서 말하는 허(虛)가 없는 집이다. 그릇이 비어 있어야 무언가를 담을 수 있듯, 마음에 빈틈이 있어야 상대의 말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꽉 찬 그릇에 물을 부으면 넘치듯, 꽉 찬 감정에 사소한 자극이 더해지면 폭발한다.

명절에 싸우는 집의 구조는 대개 비슷하다. 한 사람이 불만을 품고 있고, 그 불만은 명절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명절이라는 밀폐된 시공간이 그것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그 불만의 핵심에는 거의 예외 없이 존중의 부재가 있다. 돈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왜 나만 이렇게 해야 하느냐”는 물음이고, 반찬이 짜다는 지적 같지만 실은 “내 수고를 왜 알아주지 않느냐”는 호소다. 문제는 이런 호소가 직접적으로 나오지 못하고, 반찬 간이나 설거지 순서, 용돈 액수 같은 대리전의 형태로 분출된다는 점이다.

장자(莊子)의 산목편(山木篇)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빈 배가 와서 내 배에 부딪히면 아무도 화를 내지 않지만, 사람이 탄 배가 와서 부딪히면 소리를 지른다. 배는 같고 충격도 같은데, 화의 유무는 상대에 대한 기대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가족 간의 다툼이 유독 격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에게는 기대가 없으니 부딪혀도 넘어가지만, 가족에게는 기대가 있으니 사소한 것에도 화가 치민다. 명절에 터지는 싸움의 진짜 원인은 “너는 나를 알아야 하는 사람인데, 왜 모르느냐”는 절망이다.

명절은 원래 기(氣)를 보충하는 시간이다. 평소의 고단함에 잠시 쉼표를 찍고, 작은 사치를 허락하고, 일상에 없던 달콤함을 한 숟갈 넣는 것이 명절의 본뜻이다. 도교에서는 이것을 양기(養氣)라 한다. 기를 기르는 일이다. 돈을 좀 쓰더라도 즐거운 기운을 집 안에 채우는 것, 그것이 명절의 쓸모다. 반대로, 명절에 싸우는 것은 기를 소모하는 일이다. 한 해 동안 겨우 모은 가족의 온기를 하루 만에 날려버리는 일이다. 백만 원짜리 싸움으로 수억 원 어치 관계가 무너진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싸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직 관계가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짜 끝난 관계는 싸우지 않는다. 그냥 안 만난다. 명절에 모여서 소리를 지르고, 그릇을 깨고, 울고, 그러다 또 모이는 것은 어쩌면 서투른 애착의 표현일 수도 있다. 물론 그 서투름이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2023년 추석에는 토지 문제로 시비가 붙어 5촌 조카에게 흉기를 휘두른 70대 남성이 현행범으로 체포되었고, 같은 날 경북 김천에서는 돈 문제로 갈등을 빚던 40대 남성이 70대 부모와 아내에게 둔기를 휘둘러 존속살인미수로 잡혔다. 서투른 애착과 범죄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다.

노자는 말했다. 大道廢 有仁義. 큰 도가 무너지면 인의가 나타난다고. 집안이 화목하지 않으면 효도가 나타나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충신이 나타난다고. 이 말을 뒤집으면, 효도와 인의를 강조하지 않아도 되는 집이 진짜 좋은 집이라는 뜻이다. 명절에 “가화만사성”을 굳이 외쳐야 하는 집은, 이미 만사가 성하지 않은 집이다. 참고로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은 원나라 때 가단구의 희곡 형채기(荊釵記)에서 처음 등장했고, 명심보감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졌다. 그 유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이 말이 나온 배경 자체가 가난한 선비와 부잣집 딸의 갈등과 이별, 그리고 재회의 이야기라는 점은 묘한 울림이 있다.

명절이 지나간 뒤, 어떤 집은 조용해지고, 어떤 집은 법원을 찾는다. 어떤 집은 다음 명절에도 또 모이고, 어떤 집은 영영 흩어진다. 그 갈림길에서 무엇이 다른가를 따져보면,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되는 것 같다. 상대에게 빈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느냐 없느냐. 도덕경 11장의 그 유명한 구절처럼, 삼십폭공일곡 당기무 유차지용(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이는데, 그 빈 곳이 있어야 수레의 쓸모가 있다. 가족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빈 곳이 있어야 함께 굴러갈 수 있다.

가족이기에, 이래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좀 더 편안한 관계를 찾을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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