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AI 무료 보급 정책, 정말 모두를 위한 것인가
정부가 전 국민에게 AI 챗봇을 무료로 보급하겠다고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6년 8월 28일 ‘모두의 AI’ 사업자로 SKT, 카카오, KT 세 곳을 선정했고, 연내 정식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배경훈 부총리는 “AI 활용 역량은 국민 누구나 갖춰야 할 새로운 기본역량”이라고 했다. 그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 역량을 키우는 방법이 범용 챗봇을 나눠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사업 구조부터 보자. 정부는 NVIDIA B200 GPU 512장을 지원하고, 2027년부터는 예산으로 서비스 운영비를 대겠다고 한다. SKT는 앱과 전화, 문자로 접근할 수 있게 설계해서 고령층까지 포괄하겠다는 전략이고, 31개 기업과 기관이 참여한 컨소시엄을 꾸렸다. 카카오는 카카오톡 안에서 바로 쓸 수 있게 했다. 별도 앱 설치가 필요 없다. KT는 다음과 지니TV 등 기존 채널에 AI를 통합하면서 무신사, 직방, EBS 등을 끌어들여 사용자 6000만 명 규모를 내세운다. 접근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꽤 촘촘하게 설계했다.
그런데 이 사업에는 하나의 조건이 붙어 있다. 국산 AI 모델 사용 비율 80% 이상 의무화. 그중에서도 자체 개발 모델을 50% 이상, 다른 국내 기업의 모델을 30% 이상 활용해야 한다. 외산 모델은 국산으로 대체할 수 없는 영역에 한해 “필요 최소한”으로만 허용된다. 사실상 국산 모델 100%를 유도하는 구조다.
여기서 첫 번째 균열이 생긴다. 국산 모델의 품질이다. 솔직히 말해서, 현재 한국의 LLM이 GPT-4나 Claude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미 ChatGPT 무료 버전을 쓰고 있는 사람이, 그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국산 무료 챗봇으로 갈아탈 이유가 없다. 결국 이 서비스는 “AI를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사람에게 첫 경험을 주는” 역할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그 첫 경험의 품질이 낮으면, 사람들은 “AI란 게 별거 아니구나”라는 인상을 갖고 돌아서게 된다. 그게 더 위험하다.
두 번째는 “무료”라는 단어의 문제다. 이건 무료가 아니다. 세금이다. 데이터센터 구축에 수천억 원이 들어가고, 전력비, 냉각설비, 인력 비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GPU 512장으로 2300만 명 규모의 무료 서비스를 감당할 수 있다는 정부의 평가도 현실성이 의심된다. 대규모 추론(Inference) 서비스는 훈련(Training)과는 다른 차원의 컴퓨팅 자원을 요구한다. 사용자가 늘어나면 비용은 선형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공짜라는 말은 “누가 내는지 안 보이게 했다”는 뜻에 가깝다.
세 번째, 프라이버시. 이 부분이 가장 무겁다. 사람이 AI에게 하는 질문은 그 사람의 관심사, 고민, 성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건강 걱정을 물어보고, 법률 상담을 하고, 재정 문제를 묻는다. 그 데이터가 중앙 서버에 축적된다. 정부가 지원하고 대기업이 운영하는 구조에서, 이 데이터가 어디까지 활용되는지 투명하게 공개될 거라는 보장이 없다. “모델 개선을 위한 학습 데이터”라는 명목으로 국민이 생산한 데이터가 조용히 기업 자산으로 전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건 단순한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아니다. 국가와 기업이 국민의 사유 패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 열린다는 뜻이다.
이미 해외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2024년 뉴욕시가 마이크로소프트 지원으로 ‘MyCity’라는 AI 챗봇을 시민에게 보급했다. 결과가 어땠을까. 사업자에게 직원의 팁을 가져가도 된다는 거짓 정보를 줬고, 성희롱을 신고한 직원을 해고해도 된다고 안내했고, 쥐가 갉아먹은 음식을 제공해도 괜찮다고 답했다. 정부가 공인한 AI가 불법을 조장한 셈이다. ‘모두의 AI’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국산 모델 80% 의무화 조건 아래서, 품질 검증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모델이 행정이나 법률 관련 질문에 잘못된 답을 내놓으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네 번째는 정부 주도라는 구조 자체의 한계다. AI는 분기 단위로 판이 바뀌는 기술이다. 올해 최선인 모델이 내년에는 구식이 된다. 그런데 관료 조직은 예산 편성, 기안, 심사, 집행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기술의 속도와 행정의 속도 사이에는 구조적인 시차가 있다. 한국 공공 ICT 사업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대대적으로 시작해놓고 2~3년 뒤에는 업데이트가 멈추고 방치되는 패턴이 반복됐다. 정부24의 UX가 몇 년째 그 모양인 것, 수많은 공공 앱이 앱스토어에서 별점 2점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그 증거다. ‘모두의 AI’가 이 패턴을 깨뜨릴 근거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다섯 번째, 쓸 사람과 안 쓸 사람의 문제. 지금도 ChatGPT가 무료 버전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도 안 쓰는 사람은 안 쓴다. AI에 반감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 “일자리를 뺏는 기술”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에게, 국가가 나서서 그 기술을 보급한다는 건 오히려 반발을 살 수 있다. 또 하나. 도구를 쥐어준다고 격차가 사라지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전 국민에게 보급해도 활용도의 차이는 여전히 크다. AI 리터러시(AI Literacy)가 높은 소수만 진정한 이익을 얻고, 나머지는 “한번 써봤는데 뭐 별로더라”에 머물 수 있다. 보편적 무료 공급이 격차를 해소하기보다 격차의 형태만 바꿔놓을 가능성이 있다.
도덕경 17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太上 下知有之. 가장 좋은 다스림은 백성이 그 존재를 겨우 아는 것이다. 그 다음은 친근하게 여기고 칭찬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두려워하는 것이고, 가장 나쁜 것은 업신여기는 것이다. 정부가 “AI를 국민에게 보급하겠다”고 크게 선언하고 나서는 것은, 노자의 기준으로 보면 최선의 다스림이 아니다. 최선은 국민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행정이 편리해지고, 복지 사각지대가 줄어들고, 관료적 비효율이 사라지는 것이다.
실제로 더 현실적인 대안이 있다. 범용 챗봇을 모두에게 나눠주는 대신, 행정 특화 AI 에이전트(AI Agent)를 만드는 것이다. 부처 간 데이터를 연계해서, 국민이 신청하기 전에 국가가 먼저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알려주는 선제적 행정. 한국의 복지 시스템은 아직도 “신청주의”에 갇혀 있다. 자격이 있는데도 몰라서 못 받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모든 국민에게 ChatGPT 비슷한 걸 쥐어주는 것보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 한 명을 AI가 찾아내서 연결해주는 것이 세금 대비 효과가 훨씬 크다.
평가 기준도 흥미롭다. 접근성과 이용자 확보 전략이 50점, 품질과 안정성이 30점, 국내 생태계 기여도가 20점이다. 품질보다 확산을 더 중시한다는 뜻이다. 많이 퍼뜨리는 것이 잘 만드는 것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구조. 이 배점 자체가 이 사업의 성격을 말해준다.
GPU 512장으로 2300만 명을 감당하겠다는 계획, 국산 모델 80% 의무화로 품질을 담보하겠다는 구상, 세금으로 운영하면서 “무료”라고 부르는 언어, 확산을 품질보다 앞세우는 평가 기준. 의도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가장 좋은 기술 정책은, 국민이 정책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나아지는 것일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