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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의 종말 – 인공지능이 중간관리자를 대체한 뒤 남는 사람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구조다. 2026년 2월, 블록(Block)의 잭 도시(Jack Dorsey)가 직원 만 명 중 4천 명을 해고했다. 40%다. 이유는 하나였다. 인공지능이 회사의 운영 방식 자체를 바꿨기 때문이다. 실적이 나빠서가 아니다. 매출총이익은 계속 늘고 있었고, 고객 수도 증가하고 있었다. 잘 되고 있는 회사가 절반 가까운 인력을 잘라낸 것이다.

이 사건이 단순한 구조조정과 다른 이유가 있다. 도시는 4천 명을 자르고 나서, 세쿼이아 캐피탈(Sequoia Capital)의 로엘로프 보타(Roelof Botha)와 함께 “위계에서 지능으로(From Hierarchy to Intelligence)”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그들은 2천 년 된 질문을 꺼냈다. 조직은 왜 피라미드 모양인가.

답은 정보 때문이다. 로마 군대가 만든 구조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은, 수천 명을 통솔하려면 정보를 단계별로 올리고 내리는 체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8명이 한 조를 이루고, 10개 조가 한 백인대를 이루고, 6개 백인대가 한 대대를 이루는 식이다. 각 단계마다 정보를 모으고, 걸러서, 위로 전달하는 사람이 있었다. 현대 기업의 중간관리자가 하는 일이 정확히 이것이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취합하고,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해석해서 전달한다. 정보의 중계기다.

문제는 이 중계 과정에서 정보가 왜곡된다는 것이다. 한 번 거칠 때마다 빠지는 것이 있고, 더해지는 것이 있다. 중간 관리자의 판단이 개입하고, 중간 관리자의 이해관계가 섞인다. CEO가 받아보는 보고서와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 조직이 커질수록 이 간극도 커진다. 이것이 대기업병의 본질이다. 정보가 느리고, 정보가 왜곡되고, 결정이 현실과 어긋난다.

도시가 본 것은 이것이다. 인공지능이 충분히 강력해지면, 이 중계 기능을 기계가 대신할 수 있다. 회사의 모든 프로젝트, 모든 의사결정, 모든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정리하는 시스템이 중간에 들어가면, 6천 명의 직원이 CEO에게 직접 보고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 정보가 왜곡 없이 흐른다. 지시가 해석 없이 전달된다. 중간관리자라는 존재의 핵심 기능이 사라지는 것이다.

도시와 보타는 이 구조에서 세 종류의 직원만 남는다고 했다.

첫째,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는 실무 전문가(Individual Contributor). 이 사람들은 관리자가 아니라 인공지능 시스템으로부터 맥락을 받아서,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한다.

둘째, 특정 문제를 통째로 책임지는 사람(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 90일 단위로 하나의 문제를 맡아서 해결한다. 자원을 끌어오는 것도, 결과를 내는 것도 온전히 본인의 몫이다.

셋째, 선수 겸 코치(Player-Coach). 과거의 관리자와 다르다. 본인도 직접 일을 하면서, 동시에 사람을 키운다. 보고서를 취합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코드를 짜거나 제품을 만들면서 옆에 있는 사람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사람이다.

이 세 종류를 가만히 보면, 공통점이 하나 보인다. 전부 직접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다. 관리하는 사람, 조율하는 사람, 전달하는 사람은 목록에 없다. 그 역할을 인공지능이 가져갔기 때문이다. 회의를 잡고, 진행 상황을 추적하고, 보고서를 정리하고, 부서 간 소통을 중재하던 기능이 전부 기계의 몫이 되었다.

도덕경(道德經) 17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太上不知有之 其次親而譽之 其次畏之 其次侮之. 가장 뛰어난 윗사람은 아랫사람이 그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다음은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대상이다. 그다음은 두려워하는 대상이다. 가장 못한 것은 업신여기는 대상이다. 노자가 2,500년 전에 말한 최고의 통치는, 통치자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다. 백성이 스스로 해냈다고 느끼는 상태.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일이 이루어지면 백성들이 모두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인공지능이 조직의 중심에 들어가서 정보를 흐르게 하고, 자원을 배분하고, 맥락을 제공하는 구조는 이 太上의 형태와 닮아 있다. 관리자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관리라는 기능이 눈에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것이다. 직원은 지시를 받는다고 느끼지 않는다. 맥락을 받을 뿐이다. 맥락 안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인다. 저절로 그렇게 된 것처럼.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를 짚어야 한다. 이 구조가 작동하려면, 개인의 질이 달라야 한다. 피라미드 구조에서는 지시를 잘 따르는 사람이 유용했다. 중간관리자가 할 일을 정해주고,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방향이 틀어지면 교정해줬다. 개인이 판단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시키는 것을 정확히, 빠르게 하는 사람이 좋은 직원이었다.

인공지능이 중간층을 대체하면, 이 보호막이 사라진다. 맥락은 주어지지만 판단은 본인이 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관리자에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의하고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이것은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태도의 문제다. 지시를 기다리는 사람과 맥락을 읽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인간이다.

25년 넘게 조직을 관찰해오면서 보게 되는 패턴이 있다. 어떤 사람은 빈 공간을 보면 채우고, 어떤 사람은 빈 공간을 보면 누군가 채워주기를 기다린다. 전자가 후자보다 반드시 뛰어난 것은 아니다. 다만 구조가 바뀌면, 전자만 살아남는다. 피라미드 구조는 기다리는 사람도 수용할 수 있었다. 위에서 내려보내는 지시의 흐름이 있으니, 그 흐름을 타면 됐다. 그런데 피라미드가 무너지면, 흐름 자체가 사라진다. 스스로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피동형 사주보다 주동형 사주가 유리해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겁 식상이 , 정관, 인성보다 각광받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이야기)

도시가 세쿼이아 팟캐스트에서 한 말이 있다. 이상적인 경우에는 모든 6천 명의 직원이 자기에게 직접 보고하는 구조라고 했다. 옛날 방식으로 보면 터무니없는 말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모든 사람의 작업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문제를 감지하고, 맥락을 제공하는 시스템이 있다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CEO와 직원 사이에 정보를 중계하던 다섯 단계, 여섯 단계가 사라지고, 중간에 인공지능이라는 투명한 매체만 남는다. (왜냐면, 모든 직원이 인공지능에게 자기가 가진 정보를 입력하면, 그 CEO는 원하는 정보를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면 되니까, 직접 보고와 같은 효과)

이 변화가 블록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징후가 곳곳에서 보인다. 아마존 CEO 앤디 재시(Andy Jassy)는 더 적은 층위가 필요하다고 했고, 세일즈포스 CEO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는 인공지능이 업무를 흡수하면서 고객 지원 인력 4천 명을 줄였다. 마이크로소프트 AI 수장 무스타파 술레이만(Mustafa Suleyman)은 사무직 근로자에게 1년에서 1년 반의 시간이 남았다고 했다. 과장이 섞여 있을 수 있다. 코로나 시기에 불어난 인력을 줄이면서 인공지능을 핑계로 쓰는 것일 수도 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Oxford Economics)의 벤 메이(Ben May)가 그 가능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방향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진짜 질문이 나온다. 살아남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기술을 잘 다루는 사람이라는 답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그것은 절반만 맞다. 인공지능 도구를 능숙하게 쓰는 것은 이미 기본이 되어가고 있다. 기본이 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는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두가 계산기를 쓸 수 있게 되면, 계산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 아니다.

도시와 보타가 글에서 강조한 지점이 있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윤리적 판단, 전략적 방향 설정, 복잡한 상황에서의 인간적 결정. 그들은 이것을 가장자리(Edge)라고 불렀다. 인공지능이 중심에서 조율하고, 사람은 가장자리에서 판단한다. 창의적 결정, 문화적 결정, 윤리적 결정. 기계가 답을 내기 어려운 영역에서 인간이 작동한다.

이것을 뒤집어 읽으면 이렇다. 기계가 답을 낼 수 있는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은 위험하다. 정보를 모으는 일, 보고서를 쓰는 일, 일정을 관리하는 일, 데이터를 정리하는 일. 이런 일들은 인공지능이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한다. 이 영역에서 자기 존재 가치를 찾고 있었던 사람에게는 불편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가장자리에서 판단하는 능력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하기 어렵지만, 관찰해온 바에 따르면, 맥락 없이도 맥락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데이터가 주어지면 답을 내는 것은 기계도 한다. 그런데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혹은 데이터가 서로 모순되는 상황에서, 자기 경험과 직관과 원칙을 동원해서 방향을 잡는 것은 아직 기계가 못 한다. 이 능력은 매뉴얼로 가르칠 수 없다. 오랫동안 한 분야를 깊이 파고, 실패하고, 다시 파고, 또 실패하면서 몸에 배는 것이다.

도덕경 17장의 太上이 작동하려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위에서 느끼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통치하려면, 아래가 단단해야 한다. 아래가 물렁하면 위가 아무리 지혜로워도 무너진다. 인공지능이 조직의 太上이 되려면, 그 조직의 구성원 하나하나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시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구성된 조직에 인공지능을 넣어봐야,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블록에서 해고된 4천 명 중에는 훌륭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실제로 해고 직후 일부가 다시 채용되기도 했다. 디자인 엔지니어 한 명은 나흘 만에 돌아왔는데, 이유가 사무적 실수였다. 이것은 이 변화가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유능한 사람이 유능하지 않은 구조 안에 있으면 잘리고, 구조가 바뀌면 다시 불린다.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구조가 바뀔 때, 자기가 어느 자리에 서 있는가.

정보를 중계하는 자리에 서 있다면, 그 자리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 직접 문제를 정의하고, 직접 사람을 키우는 자리에 서 있다면, 구조가 어떻게 바뀌든 자리는 남는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만드는 사람과 판단하는 사람과 사람을 키우는 사람은 필요하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도시는 대부분의 회사가 1년 안에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했다. 성급한 예측일 수 있다. 와튼스쿨의 에선 몰릭(Ethan Mollick)은 효과적인 인공지능 도구가 아직 매우 새롭고 업무 조직 방식도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50% 이상의 효율 향상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블록 내부에서도 인공지능이 생성한 코드의 95%가 여전히 사람의 수정을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지만, 현재 인공지능은 사실 1년반전 칩 기술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고, 추론 기능을 통해서 성능을 향상 시켜 놓은 것, 다음세대 칩으로 돌아가는 인공지능들이 2026년에 쏟아져 나오고, 매년 새로운 칩이 나오게 될 것이고, 그럼 인공지능의 성능은 미친속도로 올라가게 되어 있고, 아직 그 규칙의 한계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현재 간극이 있다는 것과 방향이 틀렸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2000년에 인터넷 버블이 터졌지만,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기술이라는 판단은 맞았다. 시점이 틀렸을 뿐이다. 인공지능이 조직을 재편하는 속도가 도시의 예측보다 느릴 수 있다. 하지만 방향 자체를 되돌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노자가 말한 太上의 세계가 실현되려면, 아마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기술이 준비되는 것보다 사람이 준비되는 것이 훨씬 느리기 때문이다. 지시 없이 움직이는 사람, 구조 없이 구조를 만드는 사람, 관리받지 않아도 스스로를 관리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다수가 되는 세상은, 인공지능이 완성되는 것보다 더 먼 이야기일 수 있다.

다만 방향은 정해졌다. 그 방향 위에 자기가 서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은, 아마 지금이 적당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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