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갈라놓는 두 개의 선 – 중국 노동시장과 프론티어 모델 양극화
남의 나라 이야기이지만
글쎄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을까?

오유빈(吳維斌)이라는 이름의 배우가 있다. 서른아홉, 횡점(橫店) 촬영 기지의 단역이었고, 업계에서는 희왕(戲王)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별명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2023년 6월부터 2년 반 동안 매달 스무 날 이상을 촬영장에서 보냈고, 마이크로드라마에서 “쓰레기 아빠” 역할을 백 편이 넘게 맡았다. 오해받고 손가락질당하다가 마지막에 진심이 밝혀지는, 3분짜리 영상의 단골 아버지. 그의 얼굴은 이 플랫폼 저 플랫폼에 편재해 있었고, 일당은 끝내 1500위안까지 올랐다. 한국 돈으로 하루 32만 원 남짓이다. 촬영장의 도시락값과 숙소비를 생각하면 넉넉하지는 않지만, 단역 기준으로는 업계 상위에 속했다.
그가 지난 2월 6일 한 작품을 마쳤다. 그다음부터 그의 일정표는 비었다. 하루가 비고, 사흘이 비고, 한 주가 비었다. 에이전시 단톡방은 조용해졌다. 부감독한테 전화를 걸었다. 매니저한테 물었다. 같이 일하던 동년배 배우한테 문자를 보냈다.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다들 일이 없어. 한 달이 지나고, 그는 자기 글의 첫 줄에 이렇게 썼다. 하늘이 무너졌다.
이 한 문장이 지금 중국 마이크로드라마 촬영 기지에 앉아 있는 수만 명의 단역 배우들이 공유하는 체감이다. 그런데 하늘이 무너지는 방식은 사실 그들이 예상한 것과 다르다. 드라마를 찍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드라마를 사람 없이 찍기 시작한 것이다. 2025년 한 해 중국에서 만들어진 AI 만화극 시장 규모는 168억 위안, 한국 돈으로 약 3조 6천억 원 수준이다. 2026년에 접어들면서는 매달 1만 편 이상의 AI 만화극이 새로 올라오고 있다. 춘절 연휴 마이크로드라마 시청량 90억 회 중 AI 제작물이 차지한 몫이 거의 30%에 달했고, 1월 만화극 순위 100위 안에서 AI 실사풍 단기극이 차지한 비중은 38%로, 전년의 7%에서 다섯 배 넘게 뛰어올랐다. 비교해 보면 감이 온다. 사람이 출연하는 실사 마이크로드라마 한 편의 제작비는 150만에서 300만 위안, 3억에서 6억 원 정도다. 같은 규격의 AI 마이크로드라마는 20만 위안, 4천만 원대로 만들어진다. 바이트댄스(ByteDance)가 2026년 2월 공개한 시댄스(Seedance) 2.0 같은 최신 영상 생성 모델을 쓰면 1회 분 제작비가 500위안, 11만 원 아래로 내려간 사례까지 나왔다. [지금은 더 강력한 영상 생성 모델인 해피호스도 나왔다. ]
숫자만 봐서는 실감이 잘 안 오지만, 감독 강효기(姜曉祁)가 정리한 한 줄이 있다. 그는 2023년 7월 이후 마이크로드라마를 110편 넘게 찍은 사람인데, 올해 1분기 횡점의 크랭크인 수가 전년 같은 기간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하락분 중 30% 정도를 AI 탓으로 본다. 나머지는 지난 2년간의 과잉 확장, 수익이 나지 않자 빠져나간 투자자, 당국의 규제 강화 같은 요인이 얽힌 결과다. 그러니까 AI는 이 산업이 주저앉은 단독 원인이라기보다, 이미 누적된 피로 위에 내려앉은 방아쇠에 가깝다. 그런데 방아쇠를 당기면 결국 총알이 나간다. 오유빈의 일정표가 빈 것은 그가 모르는 사이에 어느 플랫폼의 오피스에서 누군가가 프롬프트 창에 대본을 붙여 넣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따라가면, 중요한 장면이 하나 더 있다. 그는 글의 끝 부분에서 자기가 최근에 한 일을 적었다. 2599위안짜리 AI 연간 회원권을 끊었다. 한국 돈으로 56만 원 남짓. 거기서 영상 편집과 후반 작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자신이 쓴 표현은 이랬다. 이길 수 없으면 합류한다. 이 문장이 묘하게 이 이야기의 방향을 바꾼다. 한쪽에서는 자신을 밀어낸 바로 그 도구로 향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선택지를 모르거나 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남는다. 같은 촬영장에서 같은 일당을 받고 같은 도시락을 먹던 동료들이 그 한 번의 결정으로 갈라지기 시작한다.
이 갈라짐에 대해 가장 간결하게 정리한 사람이 와튼스쿨의 에단 몰릭(Ethan Mollick)이다. 그는 인공지능을 사람들이 어떻게 쓰는지를 꽤 오래 연구한 교수인데, 2026년 2월 자기 뉴스레터에서 간단한 진단을 하나 내놨다. 사람들은 지금 두 집단으로 나뉘고 있는데, 한쪽은 무료 모델만 써보고 “인공지능 별거 없더라”로 결론 내린 사람이고, 다른 한쪽은 월 20달러든 200달러든 지불해서 프론티어 모델(frontier model)을 매일 업무에 끌어들이는 사람이다. 몰릭은 꽤 매운 문장을 덧붙였다. 인공지능이 멍청한 짓을 한다면서 SNS에 올라오는 사례의 대부분은, 쓰는 사람이 무료 모델을 쓰고 있거나 더 똑똑한 모델로 바꾸지 않은 데서 온다. 무료 모델은 정확도가 아니라 채팅 속도와 말맛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 진단이 중요한 이유는, 몰릭이 나중에 BCG와 함께 진행한 실험이 그 함의를 정량화했기 때문이다. 그와 동료들은 758명의 지식 노동자를 세 집단으로 나눴다. 인공지능을 쓰지 못하는 집단, 인공지능을 쓸 수 있는 집단, 인공지능을 쓰되 프롬프트 사용법을 사전에 간단히 배운 집단. 그리고 보스턴컨설팅 컨설턴트들이 실제로 수행하는 18개의 과제를 풀게 했다. 결과는 이랬다. 인공지능이 잘 처리할 수 있는 과제, 즉 몰릭이 이름 붙인 들쑥날쑥한 경계선(jagged frontier) 안쪽의 과제에서는 인공지능을 쓴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과제 완성 속도가 25% 빨랐고 완성도는 평균 40% 높았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평균 이하 능력의 참가자는 43%, 평균 이상 능력의 참가자는 17% 성능이 올랐다는 점이다. 그런데 경계선 밖의 과제, 즉 인공지능이 그럴듯한 답을 내지만 사실은 틀린 과제에서는, 인공지능을 쓴 쪽이 오히려 19%포인트 낮은 정답률을 보였다. 이 실험이 말하는 것은 단순하다. 어디까지가 경계 안이고 어디부터가 밖인지 감을 가진 사람만 인공지능의 이익을 가져가고, 감이 없는 사람은 틀린 답을 그럴듯하게 받아 들고 자신 있게 실패한다. 이 감은 매뉴얼로 배울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써본 시간에 비례해 자라는 종류의 감각이다. 그러니 몰릭의 진단을 다시 보면, 무료 모델만 잠깐 써본 사람과 프론티어 모델을 매일 네 시간씩 다루는 사람 사이의 간격은 단순히 구독료의 차이가 아니라, 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세상의 어디까지가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인지에 대한 지도 자체가 달라지는 간격이다.
이 지도의 간격이 왜 그렇게 빠르게 벌어지는지 이해하려면, 이야기를 오유빈 한 사람에서 떼어내 산업 전체로 밀어봐야 한다. 중국에서 AI에 가장 먼저 밀려나고 있는 직군은 마이크로드라마 단역이 아니다. 그들은 언론에 노출된 상징적인 사례일 뿐이다. 실제로 가장 빠르게 규모가 줄어들고 있는 쪽은 훨씬 더 조용하다. 번역가가 그렇다. 넷이즈 유다오(網易有道) 사전의 AI 동시통역 사용자가 2000만 명을 넘어섰고, 2025년 중국 원격 동시통역 시장은 약 23억 7천만 위안으로 전년 대비 30% 가까이 성장했다. 이 충격은 일자리 숫자 이전에 대학원 정원에서 먼저 드러났다. 2025년 베이징어언대학은 러시아어 필역, 일본어 통역, 독일어 필역, 한국어 필역, 스페인어 필역을 포함해 7개 번역 전공의 석사 모집을 중단했다. 허베이대학은 2026년부터 영어 통역과 일본어 통역 석사 모집을 중단한다고 공고했다. 화동사범대학은 2025년 10월 번역, 광고학, 회화, 조소를 포함한 24개 전공의 모집을 중단했다. 중국전매대학 당위서기 랴오샹중(廖祥忠)은 2026년 양회 기간 기자들 앞에서 해당 학교가 2025년에 번역, 사진, 만화 등 16개 학부 전공 및 방향을 한 번에 폐지했다고 밝혔다. 중국 교육부 통계로는 2024년 한 해 전국 대학에서 폐지된 전공이 1428개, 모집이 중단된 전공이 2220개에 달한다. 통계가 시작된 이래 최대 규모의 조정이다. 학부 4년과 석사 2년을 준비했던 스물다섯 살짜리가, 졸업하기 전에 자신의 전공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을 보는 국면이다.
일러스트레이터의 상황은 다른 각도에서 선명하다. 휴슈(虎嗅)가 취재한 한 일러스트레이터 주디(Judy)는 이 국면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인공지능이 잔혹한 지점은 당신이 몇 년을 배웠는지 어떤 학위를 받았는지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당신이 하는 일을 자기도 할 수 있는지만 본다. 표준화된 일러스트, 유행하는 배색, 정형화된 구도는 인공지능 쪽이 훨씬 빠르고 저렴하다. 남는 자리는 미묘한 정서나 독자적 미학처럼 정답이 없는 영역뿐이다. 그녀의 진단이 정확하다는 것은 중국 게임업계의 수치가 증명한다. 업계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돌아다니는 시나리오에 따르면, 200명 규모의 게임 타이틀 하나를 기준으로 미술 인원의 40%에서 50%, 기획의 25%에서 30%, 운영의 30%에서 35%가 AI로 감축 가능하다. 이 시나리오는 책상 위의 계산이 아니었다. 넷이즈(網易)는 2026년 초 외주 인력을 대규모로 정리했고, 기획, 프로그래머, 미술을 합쳐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빌리빌리(B站)는 게임 부문을 줄이면서 콘텐츠 운영과 기초 심사 자리의 15%에서 30%를 덜어냈다.
프로그래머 쪽은 원래 고임금의 성소처럼 보이던 자리다. 시안(西安) 소프트웨어 파크의 한 외자 기업에서 8년 차 개발자 헬렌(Helen)이 지난 4월 10일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녀가 자기 글에 쓴 문장은 이렇게 요약된다. 같은 외자 기업과 프로그래머라는 두 단어가 한때는 부러움의 대명사였는데, 지금은 같은 두 단어가 세상이 뒤집혔다는 뜻이 되었다. 그녀가 받은 Teams 메시지는 간단했다. 시간 있으면 회의실에서 이야기 좀 나눕시다. 그녀는 그 순간 직감했다고 썼다. 올 게 왔구나. 같은 날 여러 동료가 같이 짐을 쌌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헬렌의 사례가 개별적 불운이 아니라는 것은 조금 위쪽을 보면 드러난다. 알리바바는 2026년 4월 CNBC 보도에서 “AI 우선순위로의 사업 재편”을 이유로 인원이 30% 이상 감소했다고 밝혔다. 2022년 고점 기준 24만 명대에서 출발한 직원 수가 이 흐름을 따라 꾸준히 내려오고 있다. 바이두는 2025년 한 해 비핵심 부서에서 20%에서 30%의 인력을 정리했다. 반면 같은 해 텐센트는 전체 직원 수가 오히려 소폭 늘었고, 화웨이의 연구개발 인력은 2025년 12월 기준 11만 4000명으로 전년보다 천 명 증가했다. 같은 국가 같은 업종 안에서도 회사별 방향이 이렇게 갈린다.
이 갈림은 태평양 건너편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에서는 2026년 1분기에만 테크 업계 감원이 약 8만 명에 달했고, 그중 절반 가까이가 AI를 직접 원인으로 지목했다. 3월 초 블록(Block)의 CEO 잭 도시(Jack Dorsey)는 전사 메모에서 약 4000명, 전체 인력의 40%를 한 번에 줄이면서 이렇게 적었다. 이 결정은 재무적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인공지능 도구가 더 넓은 범위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이 문장은 미묘하게 정직했다. 그동안 대부분의 CEO가 “구조조정”이나 “전략적 재편”이라는 표현 뒤에 숨던 것과 달리, 그는 사유를 있는 그대로 밝혔다. 그 직후 오라클이 4월 초 2만에서 3만 명을 새벽 6시 이메일 한 장으로 통보했다. 발신자는 “오라클 리더십”으로만 적혀 있었고, 특정 임원 이름은 없었다. 세일즈포스는 이미 4000명의 고객지원 상담원을 에이전트 AI로 대체했다. 코그니션(Cognition)이 만든 데빈(Devin)이라는 이름의 코딩 에이전트는 골드만삭스와 인포시스에 배치됐고, 시니어 엔지니어 한 명이 다섯 명 분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런 숫자들 사이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통계는 제조업 쪽이다. 곤산(昆山)에 있는 폭스콘 공장은 산업용 로봇 6만 대를 도입한 뒤 직원 수가 11만 명에서 5만 명으로 줄었다. 국제로봇연맹(IFR) 자료 기준 중국은 2024년에 산업용 로봇 29만 5천 대를 설치했다. 일본이 4만 4500대, 미국이 3만 4200대였다. 하드웨어 쪽의 대체는 이미 수년 전부터 누적돼 왔고, 여기에 2025년부터 본격화된 생성형 AI와 에이전트 AI가 지식 노동 쪽 벽을 같이 허물고 있다. 손발이 먼저 잘리고 뒤이어 머리가 잘리는 순서다.
여기까지가 닫히는 문에 관한 이야기다. 반대편에서 열리는 문도 함께 봐야 이 국면의 전체가 보인다. 2025년 10월까지의 10개월간 중국 AI 관련 직무 채용 수요는 전년 동기 대비 543% 늘었다. 9월 한 달 기준으로는 열한 배 이상이었다. 메이투안(美團),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징둥(京東)은 AI 연구개발 핵심 인력을 두고 글로벌 수준의 연봉을 걸고 있다. 메이투안은 2025 회계연도에 매출 3649억 위안으로 8% 성장했음에도 순손실 234억 위안, 약 5조 원을 기록했는데, 그 적자 한가운데서 CEO 왕싱(王興)은 AI를 핵심 전략으로 선언하고 자체 모델 롱캣(LongCat), AI 어시스턴트 샤오투안, 독립 앱 샤오메이를 출시했다. 알리바바는 AI 인프라에 3800억 위안, 한국 돈으로 약 82조 원 규모의 투자를 공표했다. 같은 회사 안에서 한쪽 문이 닫히고 다른 문이 열리는 구조가 한 치의 모순도 없이 동시에 돌아간다. 미국 쪽도 비슷하다. 아틀라시안은 1600명을 줄이면서 동시에 AI 관련 신규 직무 800개를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IBM은 2026년에 신입 채용을 세 배로 늘렸다. AI가 많은 기초 업무를 해내긴 하지만 여전히 사람 손이 필요한 영역이 있고, 신입 파이프라인을 끊으면 중간 관리자로 올라올 인력 자체가 사라진다는 판단이었다.
문제는 두 문의 크기와 통과 규격이 같지 않다는 것이다. 닫히는 문을 지나온 사람이 열리는 문 앞에서 그 규격에 맞지 않아 되돌아선다. 헬렌이 8년간 쌓은 Java 스택은 AI 에이전트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역량과 겹치지 않는다. 오유빈이 100편에 걸쳐 다듬은 “쓰레기 아빠”의 연기 결은 프롬프트 엔지니어의 기술과 겹치지 않는다. 주디의 일러스트 작업 경력은 디퓨전 모델을 파인튜닝하는 일과 겹치지 않는다. 그러니까 전체 고용 숫자가 늘거나 줄거나 하는 문제 이전에, 개별 인간이 자기 경력의 축을 몇 도 틀어서 다음 칸으로 옮겨가야 하는 과제를 동시에 떠안는다. 누가 그 축을 빨리 트는가. 여기서 몰릭의 진단이 다시 돌아온다. 프론티어 모델을 매일 다루며 자기 업무의 경계선을 몸으로 익혀온 사람이 축을 빨리 틀고, 무료 모델만 잠깐 써보고 “별거 없더라”에 머문 사람이 축을 늦게 튼다. 같은 업계 안에서도, 같은 회사 안에서도, 심지어 같은 팀 안에서도 그 속도 차이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속도 차이는 연봉 구간과 자리의 존속 여부로 고스란히 번역된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되는 변수가 있다. 대체된 노동자가 동시에 소비자였다는 사실이다. 2025년에 펜실베이니아대와 보스턴대의 공동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 “AI 감원의 덫(The AI Layoff Trap)”의 핵심 메시지가 이것이다. AI로 노동자를 대체하는 기업은 동시에 자신의 고객을 해고하는 셈이다. 개별 기업 수준에서는 감원이 합리적 선택이다. 비용이 줄고 마진이 늘어난다. 그런데 모든 기업이 동시에 같은 선택을 하면, 충분한 수의 실업자가 누적되면서 시장 전체의 구매력이 침식된다. 결국 감원에 앞장섰던 기업들도 구매력이 비어버린 시장에서 판매 실패를 겪는다. 저자들은 이 상태를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로 명명했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에서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한 말을 빌린 것이다. 여기서는 같은 자리에 있으려면 있는 힘껏 달려야 한다. 어디론가 가려면 적어도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한다. 모두가 있는 힘껏 달리지만 아무도 앞서지 못하는 상태, 그리고 누군가는 결국 스스로의 연료를 태우고 쓰러지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 지점에서 이야기가 묘하게 2000년 전의 문장과 만난다. 장자(莊子) 천지편(天地篇)에 자공(子貢)이 한음(漢陰)의 노인을 만나는 이야기가 있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남쪽을 여행하다가 한 노인이 밭에 물을 주는 장면을 보았다. 노인은 우물까지 걸어 내려가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다시 올라와 밭에 쏟아부었다. 힘은 많이 들고 효과는 미미했다. 자공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하루에 백 이랑을 적실 수 있는 기계가 있습니다. 힘은 적게 들고 효과는 큽니다. 쓰시지요. 용두레라고 합니다. 노인은 허리를 펴고 자공을 바라본 뒤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그리고 답했다. 내가 스승에게 듣기로, 기계가 있으면 반드시 기계의 일이 있고, 기계의 일이 있으면 반드시 기심(機心)이 있다 하더이다. 기심이 가슴에 있으면 순백의 본성이 깨지고, 순백의 본성이 깨지면 신(神)이 안정되지 않으며, 신이 안정되지 않은 자에게는 도(道)가 머물지 않는다. 내가 모르는 바가 아니라, 부끄러워 쓰지 않는 것이오.
이 우화는 흔히 기술을 거부하는 도가의 보수성으로 읽힌다. 그런데 2026년의 현실에 놓고 다시 읽으면 방향이 한 번 꺾인다. 오늘날 기심은 기계를 쓰는 자의 마음이 아니라, 기계가 대신 갖게 된 마음처럼 보인다. 손으로 연기하던 오유빈의 자리에 표정을 학습한 모델이 들어서고, 사람이 말하던 라이브 스튜디오의 자리에 합성된 목소리가 들어서며, 주디의 손놀림 자리에 디퓨전 모델이 앉는다. 한음의 노인이 손수 항아리를 들던 자리에 용두레가 들어선 것이 아니라, 용두레 자체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서 있는 국면이다. 노인이 부끄러워 기계를 거부하던 선택의 전제는 자기 손과 기계 사이에 선택권이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 선택권조차 기계 쪽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자기 얼굴의 값을 500위안에 넘기고 나면, 그 얼굴은 복제되어 무한히 존속하고, 원본 인간은 더 이상 원본이 아니게 된다.
도덕경(道德經) 58장이 이 국면에 관해 한 구절을 남겼다.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화 안에 복이 기대어 있고, 복 안에 화가 엎드려 있다. 이 문장은 한국에서 흔히 새옹지마의 위안으로 인용되지만 본래 문맥은 조금 다르다. 노자는 이어 적었다. 孰知其極 其無正也. 누가 그 끝을 알겠는가, 거기에는 정해진 형상이 없다. 화와 복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구조 자체에 정해진 방향이 없다는 말이다. 알리바바가 AI 인프라에 82조 원을 투자한다고 공표하던 같은 분기에 단역 배우의 초상권이 플랫폼에 500위안, 11만 원에 거래된다. 대학원 번역 전공이 집단으로 사라지는 뉴스와 AI 채용 수요가 열한 배 뛰었다는 뉴스가 같은 주에 나온다. 블록의 4천 명이 잘리는 날, 같은 실리콘밸리의 다른 회사는 AI 엔지니어에게 시니어 연봉의 배를 주고 있다. 이 두 장면 중 하나만 잘라서 헤드라인으로 올리면 어느 쪽도 진실이 아니다. 둘이 같은 사건의 앞뒤 면이다. 노자가 그 끝을 알겠느냐고 물은 것은 그 앞뒤 면을 하나의 방향으로 섣불리 접으려는 마음을 경계한 말이다.
명리학(命理學)의 관점을 잠시 빌리면, 2026년은 병오(丙午)년이다. 천간과 지지가 모두 화(火)로 강하게 투출된 해다. 화는 변혁, 확산, 표현, 급격한 전환의 기운이다. 낡은 틀을 태우고 새 시스템을 재구성하는 해의 성격과, 실제로 촬영장이 비고 데이터센터가 그 자리를 채우는 현상이 우연히 겹치지 않는다. 다만 화가 지나치면 수(水)가 필요하다. 화만 가득한 구조에는 제어가 없고, 결국 불이 스스로의 연료를 태우고 꺼진다. 이 구조가 앞에서 언급한 붉은 여왕 효과와 정확히 포개진다. AI 자본은 사람을 대체하면서 원가를 줄이고, 원가가 줄어든 만큼 마진이 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의 소득이 줄고, 소득이 줄면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마진이 원래 가야 할 목적지인 매출도 줄어든다. 화가 수의 뒷받침 없이 번지는 구조에서 불 자체가 결국 연료를 잃는다. 어느 해의 운이 한 글자로 편중돼 있으면 그 운은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쉽다. 동양의 오행론과 서양의 과업 기반 자동화 모형이, 2천 년의 문법 차이를 넘어 같은 국면을 가리키는 장면이다.
다시 오유빈으로 돌아간다. 그가 56만 원을 내고 AI 회원권을 끊은 행위는 이 국면의 한 결말이 아니라 시작이다. 같은 촬영장에서 그와 똑같이 백 편의 드라마를 찍었던 동료 중 어떤 사람은 AI 회원권을 끊지 않고 외식 배달을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호가를 절반으로 낮추고 기다리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아예 고향으로 돌아갔다. 오유빈이 옳고 다른 이들이 틀린 것이 아니다. 헬렌이 옳고 다른 이들이 틀린 것도 아니다. 다만 각자가 자기 자리의 경계를 어디에 긋는가에 따라 다음 분기의 좌표가 달라진다는 사실만 분명하다. 그리고 그 경계를 긋는 데 필요한 감각은, 몰릭의 실험이 보여줬듯이 프론티어 모델을 매일 다루면서 경계선의 들쭉날쭉함을 몸으로 익히는 시간 위에서만 자란다. 이것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양극화의 이면이다. 직군과 직군 사이가 아니라 같은 직군 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선이 그어지고 있고, 그 선을 긋는 주체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이 가장 당혹스러운 지점이다.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 자기가 긋는다.
숫자들을 한 번 더 나란히 늘어놓아 본다. 횡점 크랭크인 전년 동기 대비 4분의 1, AI 실사풍 마이크로드라마 순위 비중 38%, AI 라이브 1.8배 GMV, 알리바바 감원 30% 이상, 중국 대학 학부 전공 폐지 1428개에 모집 중단 2220개, 폭스콘 곤산 공장 11만에서 5만, 블록 4천 명에 오라클 2만에서 3만, 중국 원격 동시통역 시장 23억 7천만 위안에 AI 채용 수요 전년 대비 543%, 중국 청년 실업률 15%에서 19%. 같은 한 분기 안에 이 숫자들이 동시에 성립한다. 한쪽 문이 닫히는 속도와 다른 쪽 문이 열리는 속도가 다르고, 닫히는 문을 지나온 사람이 열리는 문의 규격에 맞는 사람과 좀처럼 겹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든 숫자의 바깥에서, 오늘 어떤 모델을 켜고 어떤 프롬프트를 쓰는지 하는 작은 결정 하나가 향후 몇 분기의 궤도를 미세하게 휘게 만든다. 오유빈의 회원권 갱신일이 다가오고 있고, 헬렌의 이직 면접이 잡혀 있고, 주디의 새 포트폴리오가 만들어지고 있다. 촬영장은 비었지만 세 사람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중이다. 그 움직임의 총합이 어떤 모양을 만들지, 지금 내놓을 수 있는 답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