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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쿼이아 AI 어센트 2026, 마차에서 자동차로

세쿼이아 캐피털(Sequoia Capital)이 2026년 4월 말에 연 네 번째 AI 어센트(AI Ascent) 행사에서 던진 메시지의 핵심은 한 줄로 정리된다. 인공지능은 더 빠른 마차의 시대를 지나, 자동차의 시대로 들어섰다. 같은 도구가 더 좋아진 게 아니라 도구의 종류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패트 그래디(Pat Grady)가 키노트 무대 위에서 한 표현이 그대로다. 더 빠른 말은 사람을 10에서 40퍼센트 더 생산적으로 만들지만, 자동차는 10에서 40배 더 생산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자동차는 일의 본질과 조직의 본질을 함께 바꾼다.

이 행사는 패트 그래디, 소냐 황(Sonya Huang), 콘스탄틴 불러(Konstantine Buhler) 세 파트너가 진행한 키노트의 제목이 그 자체로 이정표였다. 디스 이즈 AGI(This is AGI). 우리는 AGI가 도착했다고 본다는 선언이다. 이들이 말하는 AGI는 철학자들이 다투는 그 AGI가 아니다. 상용적이고 기능적인 정의다. 어떤 일을 맡길 수 있는 에이전트가 있고, 그 에이전트가 실패에서 회복하면서 일을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다면, 실용적으로는 그게 AGI라는 것이다.

세쿼이아의 분석은 세 가지 변곡점을 그려놓고 시작한다. 2022년 11월의 챗GPT는 첫 번째였다. 사전학습(pre-training)이 어떤 능력을 만들어내는지 세상이 본 순간이다. 2024년 말의 o1 모델은 두 번째였다. 추론 시 연산(inference-time compute)이라는 두 번째 스케일링 법칙이 등장했다. 그리고 2025년 말부터 2026년 초 사이에 등장한 클로드 코드(Claude Code) 같은 장기 호라이즌 에이전트(long-horizon agent)가 세 번째 변곡점이다. 일을 시키면 실패해도 다시 시도해서 끝까지 가는 시스템. 이게 다른 두 변곡점과는 종류가 다르다는 게 세쿼이아의 주장이다. 앞의 둘이 더 똑똑한 모델이었다면, 셋째는 일을 마치는 시스템이다.

그래디가 보여준 슬라이드의 또 한 줄이 시장의 성격을 바꾼다. 지난 모든 기술 혁명이 통신의 혁명이었다는 것이다. 인터넷도, 클라우드도, 모바일도 정보를 어떻게 분배하느냐의 문제였다. 인공지능은 다르다.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혁명이다. 통신의 혁명은 소프트웨어 시장 안에서 일어났다. 처음 15년 동안 소프트웨어 전체 시장은 3,500억 달러에서 6,500억 달러로, 클라우드는 4,000억 달러까지 자랐다. 인공지능이 노리는 시장은 그 위에 얹혀 있는 서비스 시장이다. 미국 법률 서비스 한 분야가 전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과 맞먹는 4,000억 달러다. 세쿼이아의 어림잡은 추정으로 약 10조 달러 규모. 실제 숫자는 5조가 될 수도 있고 50조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이 하던 인지 노동의 상당 부분을 기계가 가져가는 시장이라는 게 핵심이다.

세 번째 발표자 콘스탄틴 불러는 이 흐름을 더 멀리서 본다. 그는 모든 일을 두 갈래로 나눠 시작한다. 물리적 일은 힘 곱하기 거리. 짐을 옮기고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일. 인지적 일은 의식적 사고. 피타고라스의 정리부터 단백질 접힘 문제 풀이까지. 물리적 일은 이미 자기 혁명을 거쳤다. 수천 년 동안 사람과 가축의 근육이 하던 일이, 물과 바람으로, 증기 기관으로, 내연 기관으로, 전동기로 옮겨갔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사람을 위해 행해지는 물리적 일의 99퍼센트 이상은 기계가 한다. 인지의 혁명은 같은 패턴을 따라가는 중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곧 지구 인지 노동의 99.9퍼센트가 기계로 옮겨간다. 산업혁명과 비슷한 패턴이지만,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빠르다.

불러는 이 미래의 결을 네 가지 비유로 짚었다. 첫째 알루미늄 이야기. 1800년대 중반 미국은 워싱턴 기념비 꼭대기를 100온스의 알루미늄으로 마감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금속이라 맨해튼 티파니에 진열까지 했다. 몇십 년 안에 어느 젊은 발명가가 전기분해를 개발한다. 흙에서 알루미늄을 분리해 내는 방법이다. 알루미늄은 기념비 꼭대기에서 사탕 포장지와 샌드위치 호일까지 내려왔다. 그러고는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알루미늄이 지능이고 전기분해가 인공지능이라는 게 그의 비유다. 수십 년을 들여 익힌 박사급 기술이, 곧 호출 한 번에 즉시 동원되고, 쓰고 나면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지는 무언가가 된다.

둘째 외계의 설계 이야기. 2006년 NASA가 위성 안테나 하나를 진화 알고리즘에 맡겼다. 결과물은 사람이 보기에 기괴한 모양이었다. 대칭도 없고, 깔끔한 기하학적 형태도 없는, 사람이 직관으로는 절대 그리지 못할 모양이었다. 그런데 성능은 인간 설계를 압도했다. 인공지능이 칩을, 자동차를, 건물을 설계하기 시작하면 그 결과물은 우리가 익숙한 어떤 형태와도 다를 수 있다. 새 시대의 사물은 사람의 감각이 아니라 기계의 최적화 곡면 위에서 솟아오른다.

셋째 떠오를 학문 이야기. 산업혁명 초기, 뉴커먼과 와트 같은 사람들이 증기기관을 다듬은 방식은 기본적으로 시행착오와 직관이었다. 작동 원리를 이해해서 만든 게 아니다. 만들어 놓고 잘 굴러가니까 더 잘 굴리려고 만진 것이다. 사디 카르노가 열역학을 정립해 무수한 입자의 거동을 학문으로 만든 건 그로부터 120년이 지나서다. 인공지능은 지금 그 시행착오 단계에 있다. 잘 알려진 과학 같지만, 사실 우리는 모른다.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지금의 열역학에 비견할 만한 학문이 나올 것이고, 그건 고등학교에서 가르쳐질 것이다.

넷째 비이성의 예술 이야기. 수만 년 동안 미술은 사실에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동굴 벽화에서 이집트 상형문자, 그리스 도자기, 르네상스 회화로 이어지는 흐름은 한 줄로 보면 기법의 정련이었다. 그런데 사진이 나타나면서 그 길이 끊겼다. 기계가 사람보다 잘 보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많은 사람이 회화의 죽음을 선언했다. 그러나 미술이 한 일은 죽음이 아니라 변신이었다. 인상주의, 표현주의, 입체주의, 신표현주의. 눈에 보이는 한 순간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이 그 순간을 어떻게 겪는지를 그리는 새 형식들이 솟아났다. 공학이 눈을 가져갔을 때, 사람은 다른 것을 잡았다.

세쿼이아 키노트의 마지막 문장은 이 모든 비유의 무게에 비해 의외로 짧고 단단했다. 변하는 것이 너무 많은 시대에,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무엇이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답이다. 피타고라스의 오래된 말 한 줄을 빌려왔다. 사람이 만물의 척도다. 알루미늄도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고, 예술도, 지능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사람의 경험만이 그것에 의미를 입힌다. 10년 후 일은 지금과 매우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옆 사람과 맺는 관계만큼은 그대로 남는다.

세쿼이아의 진단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99.9퍼센트라는 숫자는 비유고, 어떤 시간 축 위에서 하는 말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데이터센터의 전력과 GPU 공급은 이미 병목이다. 변곡점이 네 번째로 또 올지, 아니면 세 번째에서 한참을 평탄화될지도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래디가 키노트 중간에 슬쩍 끼워 놓은 자동차 경주 비유는 길게 남는다. 맑은 날에는 차 열다섯 대를 추월할 수 없지만, 폭우가 쏟아지면 추월할 수 있다. 지금은 새 능력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중이라 어느 누구의 선두도 안전하지 않고, 동시에 어느 누구도 이길 수 있다.

도덕경 29장에 천하신기 불가위야(天下神器 不可爲也)라는 구절이 있다. 천하는 신묘한 그릇이라 인위로 어찌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지 노동의 99.9퍼센트가 기계로 옮겨간다는 시나리오 앞에서, 어느 한 회사도 어느 한 정부도 그 흐름을 통째로 설계하지는 못할 것이다. 거대한 흐름은 누군가가 설계하는 게 아니라 그저 굽이치며 흘러간다. 그 안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흐름의 결을 읽고 자신이 어디에 서야 하는지를 정하는 정도다.

25년 넘게 시장을 들여다보면서 비슷한 국면을 몇 번 봤다. 닷컴 시대가 그랬고, 모바일이 그랬고, 클라우드가 그랬다. 매번 큰 흐름이 시작될 때마다 모두가 더 빠른 마차를 만드는 데 매달렸다. 자동차가 무엇이 될지를 본 사람은 늘 소수였다. 그리고 그 소수가 나중의 큰 회사를 세웠다. 이번에는 마차와 자동차의 차이가 과거 어떤 시대보다 크다는 게 세쿼이아의 주장이고, 만약 그 주장이 맞다면 그 사이의 거리는 머지않아 산업의 지도를 통째로 다시 그리게 될 것이다.

자동차의 시대로 옮겨갔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끝까지 따라가 보면, 결국 한 질문에 닿는다. 일의 99.9퍼센트를 기계가 한다면, 남은 0.1퍼센트는 무엇인가. 세쿼이아는 그것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고 말했고, 그 답은 듣기에는 따뜻하나 실행 계획으로는 모호하다. 그 0.1퍼센트의 자리에 무엇이 들어설지를 우리는 아직 모른다. 다만 그 자리가 비워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키노트 무대 위에서 세 사람이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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