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세 단계의 사람 – 양강의 일생과 도덕경 15장의 두 방향

사람의 한 생을 단계로 나눠 보면 대개 세 마디가 보인다. 막혀 있는 시기, 풀려 있는 시기, 그리고 풀려 있는 줄 알았다가 다 잃고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시기. 막힐 때는 나아가는 힘이 필요하고, 풀릴 때는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필요하고, 잃은 뒤에는 담담함이 필요하다. 이 세 가지가 한 사람 안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면, 인생이라는 단어가 조금 다르게 읽힌다.

도덕경 15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動之徐生. 누가 능히 흐린 것을 고요하게 하여 서서히 맑게 할 수 있는가. 누가 능히 안정된 것을 움직여 서서히 살아나게 할 수 있는가. 노자가 짚어놓은 두 방향이 있다. 흐릴 때 맑아지는 길과, 맑아진 뒤에 다시 움직이는 길. 보통 사람은 둘 중 하나만 한다. 흐릴 때는 더 흐려지고, 맑아진 뒤에는 그 자리에 멈춘다. 두 방향을 한 생애 안에서 모두 통과한 사람의 자취는 드물다.

양강(楊絳, 1911-2016)은 그 드문 자취 중 하나를 남긴 사람이다.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번역가로, 돈키호테를 중국어로 처음 완역한 사람이기도 하다. 남편은 위성(圍城)이라는 소설로 중국 현대문학의 한 줄기를 만든 첸중수(錢鍾書)였고, 외동딸 첸위안(錢瑗)도 학자였다. 양강은 105년을 살았고, 그 시간 안에서 막힘과 풀림과 잃음을 차례로 거쳤다. 마지막까지 글을 썼다.

1935년 양강은 남편을 따라 영국 옥스퍼드로 갔다. 첸중수는 나라에서 보내는 장학생이었지만 양강은 자기 돈으로 가야 했다. 옥스퍼드의 문학원에 정식 학생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학비와 지도교수에게 내야 하는 돈을 감당할 수 없어 청강생 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다른 학생들이 검은 가운을 입고 정식 수업에 들어가는 동안, 양강은 청강석에 앉아 있었다. 자존심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는 자리다. 그런데 거기서 그녀는 한 가지를 결정한다. 정해진 수업 일정대로 흥미 없는 책을 의무로 읽는 대신,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자기 시간표대로 읽기로 했다.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했고, 졸업할 무렵에는 정식 학생인 남편보다 읽은 양이 더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 막힌 자리에서 풀어가는 힘이라는 것은 이런 식이다. 자리를 못 바꾸면 자리 안에서 방향을 바꾼다. 도서관은 청강생에게도 정식 학생에게도 똑같이 열려 있었다.

귀국 뒤의 시간은 더 험했다. 항일전쟁, 국공내전, 반우파 운동, 대약진, 문화대혁명. 한 가족이 살림을 차리고 끌고 가야 하는 평범한 일상의 배경이 매번 바뀌었다. 양강은 가정교사를 했고, 초등학교에서 보결 수업을 했고, 희곡을 썼다. 친척집에 얹혀살았고, 좁고 추운 사무실에서 지냈고, 딸의 학교 기숙사에서 겨울을 났다. 그러는 동안에도 가족은 흩어지지 않았다. 사정이 어려울수록 세 사람은 함께 동물원에 가고, 식당에서 옆 자리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그들의 인생을 상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따로 떨어져 있는 시기에는 각자 본 것을 적어두었다가 다시 만나면 꺼내서 함께 들여다봤다. 그것을 그들은 돌멩이라고 불렀다.

쉰을 한참 넘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양강은 처음부터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영어와 프랑스어는 이미 능통했지만 스페인어는 한 글자도 몰랐다. 그렇게 시작해서 돈키호테를 번역했다. 이 번역본은 지금도 중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돈키호테로 남아 있다. 누적 발행 부수가 100만 부에 가깝다. 막힐 때 나아간다는 말은, 큰 결단의 순간에만 적용되는 표현이 아니다. 환갑을 앞두고 새 언어를 시작하는 사람의 일상에 더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1980년대 이후 두 사람의 이름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다. 첸중수의 위성은 다시 읽혔고, 양강의 간교육기(幹校六記)는 호평을 받았다. 학계에서 부부가 차지한 자리는 단단했고, 1994년에는 베이징의 큰 병원이 첸중수를 정성껏 돌볼 만큼의 위치였다. 풀려 있는 시기다. 그런데 풀려 있을수록 어떤 식으로 사는가가 더 정확하게 드러난다. 양강 부부는 자기 이름값에 얹혀살지 않았다. 인터뷰에 거의 응하지 않았고, 매체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고, 자기 책에서 들어오는 인세를 자신을 위해 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청화대학에 호독서(好讀書) 장학금을 만들어 가족 세 사람의 이름으로 모든 인세를 기부했다. 누적 금액이 수백만 위안에 이르렀다.

도덕경 9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持而盈之 不如其已. 가지고서 가득 채우려 하는 것은, 그치는 것만 못하다. 가득한데 더 채우려는 충동이 사람을 무너뜨린다. 양강 부부의 풀려 있는 시기는 길었지만 그들은 가득 채우려 하지 않았다. 명성이 들어오면 그 자리에 머물렀고, 들어오지 않아도 끌어오려 하지 않았다. 화제로 떠오를 만한 행보를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 풀려 있다는 것은 더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의 일상이 매일 보여줬다.

그리고 가장 모진 시기가 왔다. 1996년 외동딸이 척추에 생긴 종양으로 입원했고 이미 말기였다. 1997년 3월 4일 딸이 먼저 갔다. 1년 9개월 뒤인 1998년 12월 19일 첸중수가 갔다. 양강은 86세에 딸을, 87세에 남편을 잃었다. 평생 가족이 곧 일터이고 일터가 곧 가족이었던 사람에게 두 사람이 차례로 사라진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바깥 사람은 짐작만 할 수 있다.

양강은 그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딸이 갔고, 남편이 갔고, 나도 가고 싶다. 그런데 갈 수가 없다. 남아서 뒷정리를 해야 한다. 그게 내 책임이다. 그가 정리하겠다고 한 것은 첸중수가 남긴 7만여 쪽의 손글씨 원고였다. 종이는 누렇게 변했고 글씨는 흐려져 알아볼 수 없는 곳이 많았다. 양강은 13년에 걸쳐 이것을 정리했다. 2003년에 첸중수수고집(錢鍾書手稿集) 영인본 40권이 나왔고, 그 작업은 사실상 양강 한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92세 되던 2003년, 양강은 우리 셋(我們仨)을 썼다. 1935년 옥스퍼드에서 시작해 1998년 남편이 떠나기까지 63년의 일상을, 한 가족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석 달인지 넉 달인지의 짧은 기간 안에 써냈다. 책의 어조는 무겁지 않다. 무겁게 쓸 만한 일이 한가득인데도 무겁게 쓰지 않았다. 일상의 자잘한 장면들이 평평하게 이어진다. 식당에서 옆 자리의 대화를 엿듣고 같이 웃던 장면, 첸중수가 잉크병을 엎어 셋방 식탁보를 더럽혔을 때 양강이 괜찮아 내가 빨면 돼라고 한 장면, 어린 딸이 두 살 무렵 처음 본 아빠를 알아보지 못해 우리 엄마한테 가까이 오지 마라고 한 장면. 이런 것들이 책을 채운다.

도덕경 15장으로 돌아가면, 흐림을 고요하게 해서 서서히 맑아지게 한다는 것은 흐림을 흔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흔들면 더 흐려진다. 그냥 두면 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은 떠오른다. 양강이 가족을 잃은 뒤 한 일은 흔들지 않은 것이다. 슬픔을 흔들지 않았고, 분노로 갈아엎지 않았고, 의미를 짜내려고 무리하지 않았다. 그저 남편의 글을 정리했고, 딸과 남편과 자기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적었다. 가라앉을 것은 가라앉았고, 떠오를 것은 떠올랐다. 13년이 걸렸다. 서서히 맑아진다는 것이 그렇다.

같은 장의 뒷부분이 한 번 더 의미를 갖는다. 安以動之徐生. 안정된 것을 움직여서 서서히 살아나게 한다. 가족을 다 잃은 뒤의 양강은 안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안정된 자리에 있었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자리. 노자가 말한 안(安)은 바깥 조건의 안락이 아니라 안에서 자리를 잡은 상태다. 더 잃을 것이 없으면 더 두려워할 것도 없다. 두려움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양강은 새로 움직였다. 92세에 책을 한 권 쓰고, 96세에 다시 인생의 가장자리에 서서(走到人生邊上)라는 책을 한 권 더 썼다. 100세를 넘긴 뒤에는 첸중수가 미완으로 남긴 작은 작품을 이어받아 세조 후(洗澡之後)라는 후속 이야기를 써서 마무리했다. 102세 때 출간했다. 안정된 자리에서 다시 살아나는 길이 무엇인지를, 노자의 한 줄이 양강의 한 인생을 따라 천천히 풀려나간다.

105세에 양강은 갔다. 가기 전 그녀가 한 마지막 결정 가운데 하나는, 첸중수와 자신의 일기, 그리고 일부 친지들의 편지를 직접 태우는 것이었다. 가까운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다. 사적인 편지가 경매에 부쳐지는 것을 본 뒤로 마음을 정한 일이었다. 흐림을 맑게 하고 안정에서 다시 살아나는 길의 마지막은, 자기 자취를 자기 손으로 정리해서 내보내는 데 있었다.

세 단계를 다 통과한 사람의 일생에는 어딘가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결이 있다. 옥스퍼드 청강생 시절에 도서관에서 자기 시간표대로 책을 읽던 24세의 양강과, 92세에 우리 셋을 쓰던 양강과, 105세에 일기를 태우던 양강은 결국 같은 사람이다. 다만 흐림이 한 번 가라앉았고, 안정이 한 번 다시 살아났다. 그 사이에 70년이 있었을 뿐이다.

묶일 때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풀릴 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고, 잃은 뒤에 담담한 사람이 있다. 세 종류의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한 사람이 시기를 따라 그렇게 보일 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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