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가난은 설계되었다 왜 근면은 시스템의 연료가 되는가

가난은 운이 나빠서 생기는 일이 아니다. 현대 사회는 저임금을 감당해 줄 사람이 꾸준히 공급되어야 돌아가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고, 대부분의 근면은 그 구조를 유지하는 연료로 쓰인다. 열심히 일할수록 부자가 된다는 말은 오래된 약속이지만, 지난 30년의 데이터는 그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2025년 12월 파리경제대학 세계불평등연구소가 내놓은 세계불평등보고서 2026에 따르면 전 세계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개인 자산의 75퍼센트를 가져갔고 하위 50퍼센트가 쥐고 있는 몫은 2퍼센트에 불과하다. 상위 0.001퍼센트에 해당하는 약 6만 명이 세계 인구 절반인 28억 명이 가진 자산의 세 배를 들고 있다. 1995년 이후 이 0.001퍼센트의 자산은 연 8퍼센트 이상 늘어난 반면 하위 절반의 증가율은 2에서 4퍼센트 사이에 머물렀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한국은행과 국가데이터처가 2025년 12월에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는 순자산 상위 10퍼센트가 전체의 46.1퍼센트를 점유한다고 보고했다. 상위 20퍼센트 가구의 평균 자산은 하위 20퍼센트의 45배다. 격차는 해마다 벌어지고 있고 복리로 벌어지고 있다.

이 숫자를 보면서 누군가의 게으름을 탓하기는 어렵다. 하위 50퍼센트가 지난 30년간 놀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같은 시간 동안 저임금 노동은 더 길어졌고 배달과 물류라는 새로운 형태의 저가 노동이 산업의 뼈대로 들어왔다. 시스템은 근면한 사람을 싫어하기는커녕 필수적으로 필요로 한다. 새벽 네 시에 거리를 청소할 사람, 빗속에 음식을 배달할 사람, 물류창고에서 열두 시간 서 있을 사람이 계속 공급되어야 도시가 돌아간다. 모두가 재정적 자유를 얻는다면 이 구조는 이틀을 버티지 못한다. 그래서 집값, 교육비, 의료비, 그리고 끊임없이 갱신되는 소비 기준이 정교하게 맞물려 보통 사람의 가처분 소득을 기본 생활을 겨우 유지하는 수준에 묶어 둔다. 음모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균형이 그렇게 잡혀 있다. 이런 균형을 유지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개인은 질문을 멈추고 성실하게 바퀴를 돌리는 사람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일 장치가 필요한데, 바로 주의력의 소모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클러치가 2025년 10월에 실시한 조사에서 성인의 95퍼센트가 숏폼 영상을 시청했고 71퍼센트가 매일 소비했다. 오토노머스가 집계한 2025년 성인 평균 스크린 타임은 하루 6시간 40분이며 미국은 7시간을 넘긴다. 2025년 데이터리포털 기준 틱톡 하나만 하루 95분을 차지한다. 2004년 2분 30초였던 평균 주의 지속 시간은 2012년 75초로 떨어졌고 최근 몇 년간은 47초 안팎에서 관측된다. 하루 열두 시간 노동과 두 시간 화면 스크롤이 합쳐지면 깊이 생각할 시간이 남지 않는다. 깊이 생각하지 못하면 자신이 서 있는 구조의 모양이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으면 벗어날 계획도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시스템이 가장 선호하는 상태다. 불만은 허락되지만 질문은 피곤해서 포기하게 되는 상태.

장자 거협편에는 잘 알려진 비유가 있다. 상자와 궤짝을 여는 좀도둑을 막겠다고 사람들은 끈으로 단단히 묶고 자물쇠를 꼼꼼히 채운다. 세상이 지혜라 부르는 바로 그 일이다. 그러나 대장 도둑이 오면 상자째 통째로 둘러메고 달아난다. 도망가는 동안 그가 걱정하는 것은 오직 자신이 멘 상자의 끈과 자물쇠가 혹시 풀릴까 하는 것뿐이다. 결국 세상이 정성껏 쌓아 올린 지혜는 대장 도둑을 위해 재물을 모아 둔 꼴이 된다. 장자는 이 비유로 성인이 만든 제도가 실은 큰 도둑의 손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는 도구가 된다고 말했다. 노동의 신성함, 저축의 미덕, 성실이라는 도덕은 개인에게는 좋은 기준이지만, 그 기준을 만들고 관리하는 층과 따르는 층 사이의 거리가 벌어질 때는 상자의 자물쇠 역할을 한다. 부지런히 묶을수록 누구의 상자를 단단히 만들고 있는가, 이 질문이 거협편이 남긴 오래된 문장이다.

부의 이동이 왜 이렇게 비대칭인가를 다시 생각해 볼 만하다. 한국은행의 같은 보고서는 가구 자산 가운데 실물자산 비중이 75.8퍼센트에 이른다고 썼다. 부의 이동은 근로소득이 아니라 자산 가격의 변동으로 결정된다는 뜻이다. 근로소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무리 성실해도 자산을 가진 쪽의 부 증가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이것은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측정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스템은 노동량을 재지 않고 자산의 수익률을 잰다. 그래서 확실성의 영역에 머무는 사람은 오래 일할수록 뒤처지고, 불확실성의 영역에 먼저 들어간 사람은 잘못해도 어느 정도 위로 밀려 올라간다. 규칙이 이렇게 짜여 있다는 사실만 알아도 근면이 신성하다는 오래된 서사에 조금은 거리를 두게 된다.

그렇다고 일하지 말라는 말이 되지는 않는다. 벗어나는 첫 걸음은 대체로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다만 일 자체가 목적이 되어 주의력을 모두 태워 버리면 구조를 볼 눈이 남지 않는다.

내가 후배들에게 이야기했던 것들이 “바뻐서 돈 벌 시간이 없었다. 너희들은 회사에 충성만 하지 말아라.” 이것이었는데, 비슷한 이야기다.

남는 에너지를 무엇에 쓰느냐가 분기점이 된다. 같은 하루 동안 어떤 사람은 가격을 읽는 법을 배우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상품의 형태로 바꾸는 법을 배우며, 어떤 사람은 규칙을 만든 쪽의 논리를 읽는 법을 배운다. 이 셋은 숫자 대신 방향을 바꾸는 작업이다. 이동은 수평이 아니라 각도다.

나비는 고치를 벗기 전까지 고치 안에서 가장 깊은 어둠을 지난다. 이 어둠이 설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다만 알아차린 뒤에야 비로소 자물쇠를 어느 방향으로 풀어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방향은 각자 다를 것이고, 그것을 대신 찾아 줄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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