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과 범죄 사이

충북 진천에서 오폐수 처리업체를 운영하던 54세 김영우의 신상이 공개됐다. 해마다 장학금을 기탁하고 지역사회에 봉사활동을 해온 인물이 전 연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두고 ‘두 얼굴’이라 부른다. 마치 선한 얼굴과 악한 얼굴이 별개의 인격처럼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도교 경전 도덕경에서 노자는 말한다.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악이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천하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알게 되면 추함이 있게 된다. 선과 악은 분리된 두 개의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전체에서 드러나는 양면이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과제가 있다. 살면서 반드시 넘어야 할 산, 풀어야 할 매듭, 직면해야 할 그림자. 이 과제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분노의 조절이고, 누군가에게는 집착의 내려놓음이며, 누군가에게는 상실의 수용이다.
문제는 이 과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일어난다. 풀지 못한 매듭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다가, 특정한 상황이 촉발제가 되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것이 악의 형태로 드러난다.
장학금을 기부하는 선행과 살인을 저지르는 악행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선행은 과제를 회피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바깥으로 베푸는 동안 안으로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제는 기다린다. 언제까지고 기다린다.
치정 문제라는 것은 결국 관계의 과제다. 소유와 집착, 상실과 분노, 자존과 굴욕. 이 과제 앞에서 그는 실패했다. 수십 년간 쌓아온 선행으로도 이 과제를 대신할 수 없었다.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40일간의 심경을 묻는 질문에 김영우가 남긴 말이다.
지옥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도 (地獄道)나 도교에서 말하는 유명 (幽冥)이 저 먼 어딘가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과제를 회피한 채 살아가는 삶 자체가 이미 지옥이다. 범행 후 40일만 지옥이었던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전부터 지옥이었을 수 있다. 다만 본인이 몰랐을 뿐이다.
우리는 종종 사람을 선인과 악인으로 나누고 싶어한다. 그 구분이 명확할수록 세상은 이해하기 쉬워진다. 그러나 선인 안에도 풀지 못한 과제가 있고, 그 과제가 터지면 악이 된다. 악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제에 실패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