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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 봄의 첫 천둥이 깨우는 것들 – 한국 전통 풍속과 양생의 지혜

경칩(驚蟄)은 24절기 가운데 세 번째 절기로, 양력 3월 5일에서 6일 사이에 태양이 황경 345도에 이르는 시점이다. 겨울 내내 땅속에 웅크리고 있던 것들이 봄 천둥소리에 놀라 깨어난다는 뜻인데, 여기서 蟄은 숨는다는 뜻이니 모든 생명이 숨어 있던 곳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다. 본래 이름은 계칩(啓蟄)이었으나, 한나라 경제 유계(劉啓)의 이름을 피하느라 경칩으로 바뀐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계칩이라 부른다.

경칩은 자연의 기운이 바뀌는 전환점이다. 도교에서 말하는 기(氣)의 흐름으로 보자면, 겨울의 수장(收藏)이 끝나고 봄의 생발(生發)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도덕경(道德經) 제16장에 歸根曰靜 靜曰復命이라 했다.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고요함이라 하고, 고요함을 통해 명(命)을 회복한다고 했는데, 겨울 내내 뿌리로 돌아가 고요히 있던 생명이 이제 다시 명(命)을 회복하여 밖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경칩의 도리다. 자연은 억지로 깨어나지 않는다. 때가 되면 스스로 깨어난다.

중국에서는 경칩의 삼후(三候)를 말한다. 첫째 후에 복숭아꽃이 피기 시작하고, 둘째 후에 꾀꼬리가 울며, 셋째 후에 매가 뻐꾸기로 변한다고 했다. 세 번째 후가 흥미로운데, 옛사람들은 매가 사라지고 뻐꾸기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매가 뻐꾸기로 변한 것이라 여겼다. 절기의 징후에는 이런 화(化)라는 글자가 자주 등장한다. 한로(寒露) 때는 참새가 물에 들어가 조개가 된다고 했으니, 이것이 단순한 미신인지, 시간과 생명의 순환에 대한 옛사람들의 독특한 표현 방식인지는 각자 생각해볼 일이다.

한국의 경칩 풍속은 중국과 사뭇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경칩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개구리알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경칩 무렵 번식기를 맞은 개구리와 도롱뇽이 물이 고인 곳에 알을 낳는데, 그 알을 먹으면 허리 아픈 데 좋고 몸을 보한다고 하여 경칩날 개구리알을 먹는 풍속이 전해왔다. 지방에 따라서는 도롱뇽알을 건져 먹기도 했고, 이를 용알이라 불렀다. 용알을 떠오면 농사철에 맞춰 비가 내릴 것이라 믿기도 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경칩에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는 속신이다. 겨우내 갈라진 흙벽 틈새를 메우거나 담을 쌓는 일을 이날 했는데, 겨울 동안 집 안으로 들어온 벌레들이 다시 나오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뜻도 있었다. 경칩 무렵에 봄 천둥소리에 맞춰 북을 치거나 집 안팎에 연기를 피워 잠에서 깨어난 뱀과 벌레를 몰아내는 풍습도 있었는데, 이것이 점차 액운을 쫓아내는 의례로 발전했다.

조선시대에는 경칩이 국가 제의(祭儀)와 직접 연결되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경칩에는 중앙과 지방의 무관을 중심으로 독제(纛祭)를 지냈다. 독제는 군의 대장기인 독기(纛旗)를 세워놓고 독신(纛神)에게 제사하는 것으로, 꿩의 꽁지깃으로 장식한 군기 앞에서 무관만이 참석하여 올렸다. 서운관(書雲觀)에서는 봄에는 경칩, 가을에는 상강(霜降)에 독제를 주관하게 했다. 경칩 이후 해일(亥日)에는 선농제(先農祭)를 지냈는데, 동대문 밖 선농단(先農壇)에서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게 풍년을 빌었다. 왕이 직접 제사를 올린 뒤 선농단 남쪽 적전에서 친경(親耕)하여 농사의 소중함을 몸소 보여주었다.

1415년 태종 15년에는 경칩 이후 산과 들에 불을 놓는 것을 금하는 금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농민들이 논밭에 불을 놓아 산과 들로 번져 피해가 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물이 새로 태어나는 시기에 갓 나온 벌레와 풀을 불태우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다. 생명이 깨어나는 때에 불을 놓지 말라는 것, 여기에는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경칩 무렵의 또 다른 전통이 고로쇠 수액 채취다. 고로쇠의 어원은 골리수(骨利水), 글자 그대로 뼈에 이로운 물이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도선대사(道詵大師)가 지리산에서 오랜 좌선 끝에 무릎이 펴지지 않아 나뭇가지를 잡았는데, 부러진 가지에서 흘러나온 수액을 마시자 무릎이 펴졌다고 한다. 고로쇠 수액은 경칩 전후 약 20일간 채취하는데, 밤에 영하로 떨어졌다가 낮에 영상으로 올라가는 일교차가 15도 이상 되는 날에만 나온다. 밤새 나무 줄기 안에서 수액이 얼었다가 낮에 녹으면서 내부 압력이 높아져 구멍으로 흘러나오는 원리다. 지리산, 백운산, 덕유산 등 고지대 고로쇠나무의 수액이 당도가 높고 질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칩 물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경칩이 한국 고유의 연인의 날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옛날에는 가을에 주운 은행 열매를 겨우내 소중히 간직했다가 경칩에 연인끼리 교환하는 풍습이 있었다. 암나무와 수나무가 마주보고 서서 변치 않고 열매를 맺는 은행나무의 성질에 빗대어 사랑의 징표로 삼은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동구 밖 은행나무를 돌며 정을 다지는 사랑놀이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경칩을 정월대보름, 칠월칠석과 함께 토종 연인의 날이라 부르기도 한다.

명리학(命理學)의 관점에서 보면 경칩은 인묘월(寅卯月)의 목기(木氣)가 본격적으로 발동하는 시점이다. 묘월(卯月)은 순수한 을목(乙木)의 기운이 지배하는 달로, 간지력(干支曆)에서 묘월의 시작이 바로 경칩이다. 목(木)은 오행(五行) 가운데 생장과 확산의 기운을 담고 있으니, 겨울의 수기(水氣)가 봄의 목기(木氣)로 전환되는 것은 수생목(水生木)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한의학에서 봄에 간(肝)을 보양하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데, 간은 목(木)에 배속되고 봄의 기운을 받아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양생(養生)의 면에서 경칩 무렵은 조심할 것이 있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는 風爲百病之長이라 하여 바람이 온갖 병의 으뜸이라 했는데, 대한(大寒)에서 경칩까지가 풍사(風邪)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시기다. 봄바람은 부드러워 보이지만 모공을 열고 들어오기 때문에 머리, 목, 등, 손목, 허리 같은 곳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옛 어른들이 춘추(春捂秋凍)라 하여 봄에는 옷을 충분히 껴입으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로항언(老老恒言)에서는 봄에는 아래는 따뜻하게, 위는 약간 가볍게 입으라고 했는데, 하체의 혈액순환이 상체보다 약하여 찬 기운에 먼저 당하기 때문이다.

도교의 수행 전통에서 보면 경칩은 양기(陽氣)가 막 일어나는 때이므로, 이때의 양기를 잘 지켜야 한다. 動能生陽 也能耗陽이라 했다. 움직이면 양기가 생기지만 지나치면 양기를 소모한다. 그러니 봄의 운동은 태극권(太極拳), 오금희(五禽戲), 팔단금(八段錦) 같은 부드러운 것이 적합하다. 맑은 날 등을 햇볕에 쬐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등은 독맥(督脈)이 지나는 곳이라 양기를 보충하기에 좋다.

음식으로는 신맛을 줄이고 단맛을 늘려 비장(脾)의 기운을 기르라고 했다. 찹쌀, 대추, 호두, 밤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경칩 이후 기온이 오르면 세균 활동도 활발해지니 마늘, 파, 생강 같은 매운 것도 적당히 먹으면 양기를 도울 수 있다. 한국에서 경칩에 배를 먹는 풍습이 있는 것도 건조한 봄철에 폐를 윤택하게 하고 기침을 멈추게 하는 효능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경칩에 배를 먹는데, 배 이(梨)자가 떠나다의 리(離)자와 발음이 같아 해충과 질병에서 떠난다는 뜻을 담기도 했다.

보리싹으로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던 것도 경칩의 풍속이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도 기록이 남아 있다.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는 경칩 때 개구리 울음소리로 점을 치던 풍속을 소개하고 있다. 자연의 징후를 읽어 앞날을 가늠하려 했던 것인데, 이것을 미신이라 치부하기는 쉽지만, 자연과 인간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절의 감각이 거기 담겨 있기도 하다.

세종대왕이 1429년에 농사직설(農事直說)을 편찬한 것도 경칩과 무관하지 않다. 24절기가 본래 중국 화북 지방의 기후에 맞춰 만들어진 것이라 한반도의 실제 농사 시기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고, 세종은 각 지방 농사꾼들의 경험을 모아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서를 만들었다. 중국의 절기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기 땅의 기후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600년 전의 일이다.

현대에 와서 경칩의 실제 기후는 많이 달라졌다. 지구 온난화로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가 약 30일 정도 앞당겨졌다고 한다. 21세기 한반도에서는 빠르면 1월 말, 늦어도 2월 중순이면 개구리가 깨어난다. 절기의 이름과 실제 자연 현상 사이에 벌어진 간극이 점점 커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경칩이라는 이름이 가진 힘은 여전하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봄은 온다는 것, 숨어 있던 것들이 때가 되면 스스로 나온다는 것.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보면 天地與我並生 萬物與我爲一이라는 구절이 있다. 하늘과 땅이 나와 함께 생겨났고, 만물이 나와 하나라는 말이다. 경칩에 깨어나는 것은 벌레만이 아니다. 겨울 동안 웅크려 있던 사람의 기운도, 마음도, 어쩌면 잊고 있던 무엇인가도 함께 깨어나는 때일 수 있다. 봄 천둥이 울리면, 깨어날 것은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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