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문제를 풀지 않는 사람 – 도덕경 損之又損과 문제 소멸의 기술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없애는 사람이 이긴다. 문제 해결의 가장 강력한 방법은 문제를 정면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존재하지 않도록 조건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역설처럼 들리지만, 오래 관찰하면 패턴이 보인다. 정면으로 부딪혀서 해결하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문제 자체가 사라지게 만드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오래가는 쪽은 후자다.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본능적으로 그 문제에 달려든다. 매출이 안 오르면 영업을 더 뛰고, 상사가 까다로우면 처세술을 연구하고, 건강이 나빠지면 약을 찾는다. 틀린 접근은 아니다. 다만 이 접근에는 한 가지 전제가 깔려 있다. 문제가 고정되어 있다는 전제. 문제가 거기에 있으니까 내가 가서 풀어야 한다는 생각. 그런데 진짜 능숙한 사람은 다르게 움직인다. 문제를 풀러 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문제이기를 그만두게 만든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Wharton School)에서 경영학을 가르쳤던 러셀 애코프(Russell Ackoff, 1919-2009)라는 학자가 있다. 체계적 사고(Systems Thinking) 분야의 선구자로, 저서 “The Art of Problem Solving”(1978)에서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방치(Absolution). 문제를 무시하고 저절로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 둘째, 해소(Resolution). 과거에 해봤던 방법으로 적당히 수습하는 것. 셋째, 해결(Solution). 최적의 답을 찾아 정면으로 푸는 것. 넷째, 소멸(Dissolution). 문제를 가진 체계 자체를 다시 설계해서 문제가 존재하지 않게 만드는 것. 애코프는 네 번째가 가장 강력하다고 했다. 문제를 풀면 그 문제는 사라지지만, 같은 구조에서 비슷한 문제가 다시 생긴다. 문제를 소멸시키면 그 종류의 문제 자체가 돌아오지 않는다.

런던과 파리를 잇는 유로스타(Eurostar) 고속열차 이야기가 이것을 잘 보여준다. 승객들이 열차가 느리다고 불평했다. 공학자들은 당연히 속도를 올리자고 했다. 영국 정부는 채널 터널 레일 링크(Channel Tunnel Rail Link) 건설에 약 60억 파운드를 투자하여, 런던에서 파리까지 소요 시간을 3시간 15분에서 2시간 40분으로, 약 35분을 줄였다. 그런데 광고 회사 오길비(Ogilvy)의 부회장이자 행동경제학자인 로리 서덜랜드(Rory Sutherland)는 전혀 다른 제안을 했다. 그 비용의 극히 일부만 써서 차량에 빠른 와이파이를 깔고, 나머지 일부로 슈퍼모델을 고용해서 승객들에게 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 같은 고급 와인을 제공하면, 오히려 승객들이 열차를 늦춰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 서덜랜드의 논리는 단순했다. 승객들이 불평한 것은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심리적 지루함이라는 것이다. 지루함이 사라지면 속도 문제도 사라진다. 속도를 올리는 것은 문제를 푸는 것이고, 지루함을 없애는 것은 문제를 소멸시키는 것이다.

이 사례에서 눈여겨볼 것은 돈이나 효율이 아니다. 시선의 방향이다. 공학자들은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열차가 느리다. 그러면 빠르게 만들자. 논리적이고 명쾌하다. 그런데 서덜랜드는 문제를 다시 읽었다. 승객이 불편한 이유가 정말 속도 때문인가. 이 질문 하나가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렸다. 문제 자체를 의심한 것이다.

도덕경(道德經) 48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為學日益 為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為 無為而無不為. 배움을 하면 날로 보탠다. 도를 하면 날로 덜어낸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서 함이 없는 경지에 이르면, 하지 않음으로써 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노자가 말한 것은 지식의 부정이 아니다. 쌓는 것과 덜어내는 것의 차이를 짚은 것이다. 배움은 보태는 과정이고, 도는 덜어내는 과정이다. 문제를 풀려고 지식을 쌓고, 기술을 익히고, 전략을 짜는 것은 日益의 방향이다.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덜어내는 방향이 보인다. 문제를 둘러싼 조건 중에서 불필요한 것을 빼버리면, 문제가 스스로 사라지는 지점이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더하기로 해결하느냐 빼기로 해결하느냐의 차이다. 사람은 무언가를 추가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버지니아 대학교의 레이디 클로츠(Leidy Klotz) 교수는 2021년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연구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대상을 개선하라고 하면 압도적으로 무언가를 추가하는 방식을 선택한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빼는 선택지가 있음을 명시적으로 알려주기 전까지, 사람들은 빼기를 떠올리지 못했다. 일이 안 풀리면 더 열심히 하고, 관계가 안 풀리면 더 많이 말하고, 조직이 안 돌아가면 규칙을 더 만든다. 그런데 열심히 하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었을 수도 있고, 말이 너무 많은 것이 갈등의 뿌리였을 수도 있고, 규칙이 조직을 경직시키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빼는 것이 푸는 것보다 빠르다.

1854년 런던 소호(Soho) 지구에서 콜레라가 퍼졌을 때, 의사들은 공기 속의 독기, 이른바 미아즈마(Miasma)가 원인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공기를 정화하려 했다. 소독약을 뿌리고, 석회를 깔고, 창문을 닫으라고 했다. 이것은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정면으로 푸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존 스노(John Snow)라는 의사가 다르게 움직였다. 그는 공기를 연구하는 대신 지도를 펼쳤다. 사망자의 집을 하나하나 지도에 표시했다. 10일 동안 616명이 사망한 이 전염병의 패턴이 나타났다. 사망자들이 브로드 가(Broad Street)의 한 공용 펌프 주변에 밀집해 있었다. 1854년 9월 7일, 스노는 이 데이터를 지역 당국에 가져갔다. 환자를 치료하지 않았고, 공기를 소독하지도 않았다. 그 펌프의 손잡이를 떼어내도록 설득했을 뿐이다. 그 지역의 콜레라 발생이 급격히 줄었다. 이 사건으로 스노는 역학(Epidemiology)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다. 문제를 풀지 않았다. 문제의 입구를 막아버린 것이다.

노자의 損之又損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 이런 것이다.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염원의 접점 하나를 제거하는 것. 수백 명의 의사가 달려들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손잡이 하나를 떼어내는 것으로 끝낸 것이다.

이런 접근이 어려운 이유가 있다. 빼기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새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대단한 전략을 발표하면 사람들이 알아본다. 그런데 불필요한 회의를 없애고, 쓸데없는 보고를 줄이고, 복잡한 절차를 걷어내는 것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빼는 사람은 뭘 한 건지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조직에서도, 삶에서도, 더하기가 빼기를 압도한다. 할 일 목록은 길어지는데, 하지 말아야 할 일 목록은 만들지 않는다.

그런데 오래 관찰하면 보이는 것이 있다.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는 사람일수록 하지 않는 것이 뚜렷하다. 반응하지 않는 상황이 있고, 참여하지 않는 자리가 있고, 건드리지 않는 영역이 있다. 이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선별이다. 에너지를 어디에 쓰지 않을지를 먼저 정하기 때문에, 정작 써야 할 곳에서 밀도가 높아진다.

도덕경 48장이 마무리하는 문장이 의미심장하다. 無為而無不為. 하지 않음으로써 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이것은 아무것도 안 하라는 뜻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을 하지 않으면, 필요한 것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문제를 풀려고 달려드는 대신, 문제가 생기는 조건을 걷어내면, 풀 필요가 없어진다. 손잡이를 떼어내면 콜레라가 멈추고, 와이파이를 깔면 불평이 사라지듯이.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풀려고 달려들기 전에 한 가지를 먼저 물어볼 수 있다. 이 문제는 정말 풀어야 하는 문제인가, 아니면 없앨 수 있는 문제인가. 그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어떤 문제가 진짜 문제이고 어떤 문제가 조건의 문제인지, 그 구분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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