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의 내공이 가문을 결정한다 – 도덕경 54장과 배우자 성실성 연구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이 가문의 운명을 가른다. 외모나 집안이 아니라, 그 사람의 안이 얼마나 단단한가가 결정적이다. 이것은 낭만이 아니라 관찰이다.
부자들의 배우자 선택을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 그러니까 얼굴이나 학벌이나 재산을 기준으로 짝을 고른 집안과, 성품과 내면의 안정감을 기준으로 짝을 고른 집안 사이에 세대가 지나면서 벌어지는 격차가 상당하다. 전자는 화려하게 시작하지만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후자는 조용하지만 깊이 뿌리를 내린다. 동아시아에서 오래된 가문이 며느리를 고를 때 덕(德)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이유 없는 관습이 아니다.

워싱턴대학교 심리학과의 브리트니 솔로몬(Brittany Solomon)과 조슈아 잭슨(Joshua Jackson)이 2014년 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한 연구가 있다. 호주의 기혼자 4,544명을 대상으로 5년간 추적한 종단 연구다. 배우자의 성격 5대 요인 중 어떤 특성이 상대방의 직업적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다섯 가지 성격 특성 중 배우자의 성실성(Conscientiousness)만이 상대방의 수입, 승진 가능성, 직업 만족도를 유의미하게 예측했다. 이 효과는 성별과 무관했고, 맞벌이든 외벌이든 상관없이 관찰되었다. 배우자 본인의 성실성을 통제한 뒤에도 효과가 유지되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내가 아무리 성실해도 짝이 흐트러져 있으면 한계가 있고, 내가 다소 느슨해도 짝이 단단하면 끌어올려진다는 뜻이다.
연구팀이 밝힌 경로는 세 가지였다. 첫째, 성실한 배우자가 가정의 실무를 안정적으로 처리해주면서 상대방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둘째, 성실한 배우자의 습관이 상대방에게 전염되었다. 셋째, 성실한 배우자와 함께하는 가정생활이 만족스러우면 심리적 에너지가 보존되어 직장에서의 판단과 수행이 좋아졌다. 쉽게 말하면, 안이 편한 사람 옆에 있으면 바깥에서 힘을 쓸 수 있다. 안이 어지러운 사람 옆에 있으면 바깥에 나가기 전에 이미 지쳐 있다.
이 연구가 말하는 것은 사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수천 년째 관찰해온 것과 같다. 집안의 안살림을 잡는 사람의 품성이 그 집안의 흥망을 좌우한다는 것. 다만 현대인은 이것을 구시대적 가부장 논리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솔로몬과 잭슨의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이 효과가 성별에 무관하다는 것이다. 남편의 성실성이 아내의 직업 성공을 예측하는 것도, 아내의 성실성이 남편의 직업 성공을 예측하는 것도 동일한 크기로 나타났다. 누가 안살림을 잡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두 사람 중 내면이 단단한 쪽이 상대방을 끌어올린다는 구조다.
도덕경(道德經) 54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善建者不拔 善抱者不脫 子孫以祭祀不輟. 잘 세운 것은 뽑히지 않고, 잘 안은 것은 벗겨지지 않으며, 자손이 제사를 끊지 않는다. 노자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건축의 기술이 아니다. 무엇을 기반으로 세우느냐의 문제다. 겉으로 크게 쌓는 것은 바람에 무너지고, 안에서 단단히 다진 것은 대를 이어 이어진다. 같은 장에서 노자는 이어서 말한다. 修之於身 其德乃眞 修之於家 其德乃餘. 몸에서 닦으면 그 덕이 참되고, 집안에서 닦으면 그 덕이 넉넉해진다. 개인의 수양이 가정으로 번지고, 가정의 수양이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구절이 배우자 선택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가정이라는 단위에서 덕이 넉넉해지려면, 그 가정 안에 덕을 닦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둘 다 바깥으로만 달리면 안이 비고, 둘 다 욕심으로만 움직이면 기반이 갉아진다. 누군가 한 사람은 안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안을 지킨다는 것은 집에 가만히 앉아 있다는 뜻이 아니다. 감정이 흔들릴 때 중심을 잡는 사람, 결정이 필요할 때 욕심이 아니라 이치로 판단하는 사람, 바깥에서 아무리 자극이 밀려와도 가정의 분위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있으면 그 집안의 에너지가 새지 않는다.
부유한 집안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면, 돈이 먼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먼저 흔들린다. 돈이 많아지면 자극도 많아진다. 자극이 많아지면 판단이 흐려진다. 판단이 흐려지면 관계가 깨진다. 관계가 깨지면 돈이 사라진다. 이 순서를 거꾸로 막을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극이 많아질 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반드시 수행자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안이 고요한 사람이어야 한다. 욕심에 쉽게 끌려가지 않고,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 옆에 있으면 자극이 밀려와도 가정이라는 용기가 깨지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배우자를 고르는 사람 자체가 이미 어떤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겉을 보는 눈은 누구에게나 있다. 안을 보는 눈은 자기 안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 사람에게만 있다. 자기가 흔들려본 적이 있어야 안정된 사람의 가치를 안다. 자기가 욕심에 끌려가본 적이 있어야 욕심이 적은 사람의 무게를 안다.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이 그 사람의 내면 수준을 드러내는 거울인 셈이다.
노자의 표현을 빌리면, 善建者不拔. 잘 세운 것은 뽑히지 않는다. 가문을 잘 세운다는 것은 크게 세운다는 뜻이 아니다. 깊이 세운다는 뜻이다. 깊이의 상당 부분은 옆에 있는 사람의 품성에서 온다.
어떤 기준으로 짝을 골랐는지, 그것이 이미 꽤 많은 것을 결정해놓았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