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마음의 부

부유한 사람과 가까이 지내라는 말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강남 아파트를 가진 사람, 외제차를 모는 사람, 사업체를 여러 개 굴리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래서 그런 자리에 가려고 애쓰고, 그런 모임에 들어가려고 인맥을 만든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본래 이 말이 가리키는 바는 조금 다르다. 진짜 부유함은 통장 잔고로 측정되지 않는다. 마음의 힘이 충만한 상태, 내면의 에너지가 가득 찬 상태가 진정한 부(富)다. 도가(道家)에서는 이것을 기(氣)가 두텁다고 표현한다. 이런 사람 곁에 있으면 별다른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특별히 무슨 말을 해주지 않아도, 무언가를 베풀지 않아도, 그냥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안정감이 온다.

반대로 피해야 할 사람이 있다. 겉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고, 말도 잘하고, 사회적 지위도 있는데 만나고 나면 이상하게 기운이 빠지는 사람들이다. 이런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대화 중에 은근히 상대방을 깎아내린다. 칭찬하는 척하면서 비교한다. 조언하는 척하면서 자기 우월함을 드러낸다. 타인의 약점을 정확히 찾아내서 그 부분을 건드린다. 왜 그럴까. 스스로 에너지가 박(薄)하기 때문이다. 내면이 텅 비어 있으니 밖에서 채우려 한다. 자기 존재감을 타인의 위축에서 확인한다. 상대방이 작아질 때 자신이 커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중독과 같아서, 한 번 시작하면 멈추기 어렵다. 점점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해진다. 나중에는 아주 가까운 사람, 가족이나 연인에게까지 같은 방식을 쓰게 된다.

이런 사람을 지혜롭지 못하다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내면을 직시할 수 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안다. 굳이 남과 비교해서 자기 위치를 확인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은 그 힘이 없다. 자기 안을 들여다보면 공허함만 보이니까 차라리 밖을 본다. 거울 대신 타인을 사용한다. 상대방의 반응에서 자기가 괜찮은 사람인지 확인하려 한다. 그러니 만나는 사람마다 시험하고, 떠보고, 은근히 누르게 된다.

이런 사람과 접촉하는 것은 진흙밭을 걷는 일과 같다. 청나라 시기 장서가 원매(袁枚)가 쓴 글에 비슷한 표현이 있다. 그는 사람을 사귀는 일에 대해 말하면서, 어떤 이와 교류하고 나면 마치 맑은 물에 씻긴 것 같고, 어떤 이와 교류하고 나면 탁한 늪에 발을 담근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진흙이 조금 묻었다고 당장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쌓인다. 대화할 때마다 방어해야 하고, 접촉할 때마다 긴장해야 하니 열정이 소모된다. 마음의 에너지가 새어나간다. 일 년이 지나고, 삼 년이 지나면 당신은 점점 빛을 잃는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냥 피곤하다. 예전에는 사람 만나는 게 좋았는데 지금은 혼자 있고 싶다. 정확히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면, 주변 인간관계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당신의 에너지를 조금씩 빨아들이고 있을 수 있다.

내적으로 풍부한 사람은 다르다. 이들은 대개 많은 것을 겪은 사람들이다. 실패도 해봤고, 배신도 당해봤고, 밑바닥도 경험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탁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맑아졌다. 거친 강물이 바다에 이르러 잔잔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수많은 충돌과 부딪힘을 거친 후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됐다. 도교에서 말하는 연단(煉丹) 과정과 닮았다. 불순물이 타서 없어지고 순수한 것만 남는 과정. 그래서 이런 사람은 판단하지 않는다. 당신이 실수를 털어놓아도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부족함을 보여줘도 그것을 약점으로 이용하지 않는다. 포용한다. 이해한다. 각박하지 않다. 그 사람 곁에 있으면 방어를 내려놓아도 된다는 느낌이 저절로 온다. 억지로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잘난 척하지 않아도 된다. 있는 그대로 있어도 된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초조함이 사라진다.

중국 송나라 시대 선승 대혜종고(大慧宗杲)가 제자들에게 한 말이 있다. 좋은 도반(道伴)을 만나면 수행의 절반은 이룬 것이라고. 혼자서는 십 년 걸릴 일이 바른 사람 곁에서는 삼 년 만에 이루어진다고. 반대로 나쁜 도반을 만나면 수행은커녕 오히려 퇴보한다고. 이것은 수행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투자자 워런 버핏은 육십 년 넘게 찰리 멍거와 파트너십을 유지했다. 버핏은 여러 인터뷰에서 멍거를 만난 후 더 나은 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단순히 사업적 조언을 얻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자신을 성장시켰다는 뜻이다. 서로의 에너지가 상승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후덕재물(厚德載物)이라는 말이 주역 곤괘(坤卦)에 나온다. 흔히들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는 뜻으로 알고 있다. 도덕적으로 바르면 재물이 따라온다고 해석한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본래 의미는 좀 더 깊다. 여기서 덕(德)은 윤리적 개념이 아니다. 생명의 상태를 가리킨다. 에너지가 충만하고, 지혜가 깊고, 내면이 안정된 상태. 그 상태가 두터워야 무거운 것을 담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릇이 얕으면 물이 넘친다. 그릇이 깊어야 많이 담는다. 돈도 마찬가지고, 명예도 마찬가지고, 관계도 마찬가지다. 감당할 그릇이 안 되면 들어와도 유지가 안 된다. 복권에 당첨되고 불행해지는 사람이 있고, 큰 성공을 거두고 무너지는 사람이 있는 이유다.

결국 누구와 시간을 보내느냐가 당신의 에너지 총량을 결정한다. 만나고 나면 힘이 빠지는 사람이 있고, 만나고 나면 이상하게 충전되는 사람이 있다. 전자를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 가족일 수도 있고, 직장 동료일 수도 있고, 오래된 친구일 수도 있다. 그러나 후자의 비중을 조금씩 늘리는 것은 가능하다.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이 쌓이면 오 년 후, 십 년 후 당신은 지금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더 맑아져 있을 수도 있고, 더 탁해져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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