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의지의 한국인이 의지력으로 못 이기는 것 – 손실회피와 무위의 행동 설계

한국인은 의지의 민족이다. 새벽 5시에 독서실 문을 열고, 마라톤 완주 후 막걸리를 마시며, 금연 선언을 매년 1월 1일에 반복한다. “하면 된다”는 이 나라의 비공식 국가 슬로건이고, 실제로 전쟁의 폐허에서 반도체 강국을 만들어낸 민족이니 틀린 말도 아니다. 문제는 이 슬로건이 거시적으로는 맞는데 미시적으로는 처참하게 무너진다는 것이다. 새해 결심의 평균 수명은 2주다. 헬스장 1월 매출과 3월 매출의 격차는 만국 공통이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의지의 민족이 의지력으로 해결 못 하는 것이 의지력을 유지하는 일이라니, 이것은 일종의 구조적 아이러니다.

1979년,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는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을 발표하면서 인간 행동에 대한 결정적인 사실 하나를 밝혀냈다. 사람은 같은 크기의 이득보다 손실에 약 두 배 강하게 반응한다. 이것을 손실회피(Loss Aversion)라 부른다. 이 논문은 오늘날 경제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이 되었고, 카너먼은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 이론이 말하는 것을 자기계발의 맥락에서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한국의 자기계발 시장은 여전히 “긍정의 힘”, “꿈을 시각화하라”, “아침형 인간이 되라” 같은 당근 일색이다. 뇌는 당근에 별로 감동을 받지 않는데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게으른 것이 아니다.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다. 뇌는 보상보다 위협을 먼저 처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위험과 불편을 감지하는 시스템이 쾌락을 추구하는 시스템보다 빠르고 강하게 작동한다. 2007년, UCLA의 Tom, Fox, Trepel, Poldrack 연구팀이 Science에 발표한 fMRI 연구는 이것을 뇌 수준에서 확인했다. 잠재적 이득이 커질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 특히 복측 선조체(Ventral Striatum)와 전전두엽 피질이 잠재적 손실이 커질 때는 오히려 비활성화되었다. 같은 돈이라도 잃을 때의 뇌 반응이 얻을 때보다 가파르게 변한다. 뇌는 태생적으로 손실에 더 민감하다. 이건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침팬지든 마찬가지다. 2007년 Brosnan 연구팀은 침팬지에게서도, 2006년 Chen 연구팀은 원숭이에게서도 손실회피 현상을 확인했다.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포유류의 문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운동 후의 상쾌함을 상상하고, 저축 후의 풍요를 떠올리고, 사업 성공 후의 자유를 그려봐도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 뇌는 추상적인 미래의 보상을 위해 현재의 안락함을 교환하지 않기 때문이다. 편안함은 안전하고, 노력은 위험하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이불 밖은 위험하다. 이것은 밈이 아니라 신경과학이다. 의지력으로 이불을 박차고 나가는 것은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고, 잠깐은 가능하지만 매일 아침 반복하기에는 뇌의 에너지 예산이 허락하지 않는다.

해법은 방향을 바꾸는 데 있다. 행동을 즐겁게 만들려는 시도를 멈추고, 행동하지 않는 것을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채찍을 자기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채찍이 자동으로 내려오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 원리를 가장 잘 구현한 사례가 있다. 예일대 행동경제학자 딘 카를란(Dean Karlan)과 이안 에이어스(Ian Ayres)가 만든 StickK라는 플랫폼이다. 사용자는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실패할 경우 돈을 잃는 약정 계약(Commitment Contract)을 체결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단체에 기부하는 옵션이다. 열렬한 민주당 지지자가 실패하면 공화당에 기부되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이것은 의지력 테스트가 아니라 공포 영화다. Cambridge University Press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StickK에서 생성된 17,654건의 약정 계약을 분석한 결과, 금전적 벌칙을 설정한 사용자는 그렇지 않은 사용자보다 목표 달성률이 60%포인트 높았다. 싫어하는 단체에 기부하는 조건을 건 사용자는 추가로 6%포인트 더 높았다. 60만 명 이상이 이 플랫폼을 사용했고, 자체 데이터에 따르면 돈을 걸었을 때 목표 달성 확률이 3배 올라간다. 의지력이 아니라 공포심이 사람을 움직인 것이다.

한국에 이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어떨까. 다이어트 실패 시 일본 극우단체에 기부, 금연 실패 시 전 여자친구에게 자동 카톡 발송. 아마 성공률이 99%를 넘길 것이다. 물론 농담이지만, 원리는 진지하다. 손실회피라는 본능을 역이용하면 의지력이라는 소모성 자원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뇌가 손실을 더 두려워한다면, 가만히 있는 것이 곧 손실이 되도록 환경을 재설계하면 된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체력이 사라진다. 아이와 뛰어놀 수 없게 되고, 손주를 볼 때쯤이면 소파에서 일어나는 것도 힘겨워진다. 돈을 관리하지 않으면 빚과 스트레스가 선택지를 좁히고, 행복은 허락된 범위 안에서만 가능해진다. 사업을 시작하지 않으면, 투자를 배우지 않으면, 75세에도 월급을 받기 위해 출근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런 결과들이 두려워야 한다. 막연한 “언젠가”의 걱정이 아니라, 무시할 수 없는 현실로 인식되어야 한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표현으로 바꾸면, 위기감이 있어야 한다. 다만 그 위기감의 방향이 중요하다. “열심히 해야 해”가 아니라 “이대로면 끝장”이어야 한다.

고통의 위치가 바뀌면 저항의 방향도 바뀐다. 시작하는 것이 고통이 아니라, 머무르는 것이 고통이 된다. 회피가 곧 위험이 되면 신경계는 스스로 앞으로 밀어낸다. 행동이 영웅적인 자기 절제의 결과가 아니라, 실질적 위협에 대한 합리적 반응이 된다. 이쯤 되면 행동하는 사람이 대단한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 미친 짓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생긴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無爲而無不爲라 했다. 하지 않으면서 하지 않음이 없다. 수천 년간 이 구절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맥락에서 읽혔는데, 현대 행동과학의 시선으로 다시 보면 의외로 구체적인 메커니즘이 보인다. 억지로 하려는 행위, 즉 의지력을 쥐어짜서 자신을 채찍질하는 방식은 유위(有爲)다. 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하면 된다”를 매일 아침 외치면서 출근하는 직장인의 눈빛이 3월이면 죽어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게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면, 행동은 애쓰지 않아도 일어난다. 무위에 가깝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구조가 방향을 결정하면 의지는 필요 없어진다.

장자(莊子)의 포정해우(庖丁解牛) 이야기도 같은 결을 가진다. 포정이 소를 해체할 때 칼이 뼈와 힘줄 사이를 지나가니 힘이 들지 않았다. 19년을 써도 칼날이 새것 같았다. 반면 서투른 백정은 매달 칼을 갈아야 했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칼도 사람도 무뎌진다. 결을 따르면 저항이 사라진다. 의지의 한국인은 매달 칼을 가는 백정에 가깝다. 열심히 하는 건 맞는데, 방법이 힘들다.

Pennsylvania 대학교의 행동경제학 연구팀이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한 무작위 대조시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16주 동안 약정 계약에 참여한 그룹은 약 50%가 주당 0.45kg 감량 목표를 달성한 반면, 통상적인 관리를 받은 그룹은 10%에 그쳤다. 다만 계약이 끝나자 효과도 사라졌다. 약을 끊으면 효과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이것은 방법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의 부재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의지력에 기대는 것은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고 바닥의 물을 닦는 것과 비슷하다. 열심히 닦는 것은 감동적이지만 효율적이지는 않다.

변화는 간절히 원한다고 오지 않는다. 지체의 대가를 또렷하게 볼 때 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불편한 선택이 될 때, 행동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 된다.

보상을 부풀리지 마라. 지체의 값을 두려워하라. 뇌는 당근보다 채찍에 먼저 반응하도록 만들어져 있고, 수천 년 전 노자는 그것을 자연의 이치라 불렀다. 현대 신경과학이 fMRI로 확인한 것을 동양의 현자는 관찰로 이미 알고 있었다. 의지의 한국인에게 부족한 것은 의지가 아니라, 의지를 쓰지 않아도 되는 설계다.

그 설계는 결국 자기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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