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진짜 전문가의 조건 – 거르는 능력이 경쟁력이다
AI 시대, 진짜 전문가의 조건은 ‘거르는 능력’이다
AI가 코드를 쓰는 시대가 왔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와 있었는데 대부분이 모르고 있었다. 2025년 2월, 전 OpenAI 연구원 안드레이 카르파시(Andrej Karpathy)가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라는 용어를 만들었을 때만 해도, 그건 개발자들 사이의 유행어 정도였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카르파시 본인이 “나는 이제 대부분 영어로 프로그래밍한다”고 말하는 지경이 됐다. 코드를 직접 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어로 설명하면 AI가 알아서 만들어준다는 뜻이다.
숫자가 말해준다. 앤트로픽(Anthropic)의 클로드 코드(Claude Code)는 2025년 5월 정식 출시 후 6개월 만에 연간 반복 매출(ARR)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건 챗GPT보다 빠른 속도다.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세일즈포스 같은 기업들이 줄줄이 계약했고, 클로드 코드 개발 총괄인 보리스 체르니(Boris Cherny)는 자신의 코드 100%를 AI가 작성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2025년 6월, Bolt가 주최한 ‘세계 최대 해커톤’에는 13만 명이 넘는 참가자가 등록했다. 총상금 100만 달러 이상. 이 행사의 슬로건이 흥미롭다. “역사상 처음으로, 아이디어를 가진 누구나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기술 없이도 그것을 만들 수 있다.” 허풍이 아니다. 실제로 수상자 중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프로그래머가 아닌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건축가, 교육자, 창업자. 코딩을 직업으로 삼지 않은 사람들이 AI 도구 하나로 작동하는 앱을 만들어 상을 탔다.
이 현상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과거에 어떤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디지털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앱을 만들고 싶으면 개발자를 고용해야 했다. 문제는 개발자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설명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실제 기획보다 몇 배는 컸다는 점이다. 설명하고, 이해 못 하면 다시 설명하고, 결과물을 보면 내가 말한 것과 다르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시간은 몇 달이 흘러가고, 예산은 몇 배로 불어나고, 결국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한참 다른 물건이 나온다.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클로드 코드 같은 도구에 자연어로 설명하면, 2~3시간 만에 개발자 6개월 작업분에 해당하는 결과가 나온다. Scientific American 기사에서 비개발자 기고자가 직접 클로드 코드로 여러 웹사이트를 만들어본 경험을 공유했는데, 문제가 생기면 자연어로 설명하면 AI가 바로 고쳤다고 한다. InfoWorld의 한 기술 칼럼니스트는 몇 달간 구상만 하던 프로젝트를 클로드 코드로 하룻밤 만에 완성했다고 썼다.
이것이 핵심이다. 구현의 장벽이 사라지고 있다. 남는 것은 무엇인가. 전문성 그 자체다.
여기서 명리학(命理學)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시중에 만세력 앱이나 사주 앱들을 보면, 마케팅 문구가 대동소이하다. “고전을 다 학습시켰습니다.” “시중의 50개 이상의 명리학 책을 AI에 학습시켰습니다.” “3,000년의 지혜를 담았습니다.” 실제로 앱스토어에서 ‘고전 사주’라는 앱은 적천수(滴天髓), 궁통보감(窮通寶鑑), 자평진전(子平眞詮) 세 권의 고전 본문을 수록했다고 홍보한다. 또 다른 앱은 빅데이터 기술로 현대 사회에 적합한 예측 모델을 찾아낸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하나다. 그래서 뭐. 어쩌자고?
명리학 이론은 서로 충돌하는 것이 많다. 적천수와 자평진전의 관점이 다르다. 궁통보감은 또 다른 체계를 갖고 있다. 격국(格局)을 잡는 방법만 해도 학파마다 다르고, 용신(用神)을 정하는 기준은 더 갈린다. 억부(抑扶)를 중시하는 관점과 조후(調候)를 우선하는 관점이 부딪힌다. 종격(從格)의 성립 조건도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이런 충돌을 분석하고,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이론을 적용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이 진짜 전문성이다.
그 능력 없이 50권의 책을 학습시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AI는 모순되는 이론을 동시에 품고, 상황에 따라 이것도 저것도 아닌 답을 내놓는다. 혹은 가장 많이 언급된 이론을 다수결로 채택해서 평균적이고 무난한, 그러나 정확하지 않은 해석을 만들어낸다. 데이터를 많이 넣는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다. 어떤 데이터를 넣고 어떤 데이터를 빼느냐, 어떤 맥락에서 어떤 원리를 적용하느냐를 판단하는 눈이 없으면, 학습 데이터는 그냥 소음이 된다.
물론 일반인들은 그것을 구분할 능력이 없으니까, 잘못된 정보를 받으면서, 미신이니까 틀려도 상관없어 그렇게 너그럽게 대하지만 말이지만,,,
이건 명리학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시중에 투자 관련 책이 수천 권 있고, 전략은 수백 가지다. 가치 투자와 모멘텀 투자는 근본적으로 다른 철학을 갖고 있다. 워런 버핏의 방식과 조지 소로스의 방식은 정반대에 가깝다. 이 모든 것을 AI에 학습시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상황에 따라 어떤 프레임워크를 적용해야 하는지 판별하는 능력이 없다면, AI는 가치투자적 관점과 모멘텀 관점을 뒤섞은 애매한 답변을 내놓을 뿐이다.
결국 AI 시대에 진짜 가치 있는 능력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깊이 있는 전문성. 다른 하나는 거르는 능력, 즉 큐레이션(Curation)이다.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지 판단하는 것. 서로 충돌하는 정보 사이에서 맥락에 맞는 것을 골라내는 것. AI는 도구다. 좋은 도구일수록 사용자의 수준에 따라 결과가 극단적으로 갈린다. 같은 붓을 잡아도 화가와 아이가 그리는 그림이 다르듯이.
이 흐름은 되돌릴 수 없다. 코딩의 진입 장벽은 이미 거의 사라졌고, 앞으로 더 낮아진다. 2025년에 열린 MIT 글로벌 AI 해커톤에는 86개국에서 5세부터 77세까지 1,313명이 참가했다. 그중 60%가 개발도상국 출신이었다. 구현 능력의 민주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무엇이 차이를 만드는가.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본질을 꿰뚫는 사람. 수천 개의 정보 중에서 진짜를 가려낼 줄 아는 사람. AI에게 무엇을 시킬지, 더 중요하게는 무엇을 시키지 말아야 할지 아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AI는 날개가 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AI는 그저 번지르르한 쓰레기 생성기일 뿐이다.
도덕경(道德經) 제48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배움을 하면 날로 보태지고, 도를 닦으면 날로 덜어낸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보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AI가 대신 해준다. 덜어내는 것, 그것이 사람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