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디션을 핑계 삼지 않는 사람들 – 행동이 동기를 만드는 이유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일을 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컨디션을 핑계 삼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컨디션이란 것은 행동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행동의 부산물에 가깝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행동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라 부르고, 1970년대 임상심리학자 피터 루인손(Peter Lewinsohn)이 우울증 치료를 위해 개발한 이래 수십 년간 검증되어 온 개념이다. 핵심은 단순하다. 행동이 동기를 만든다. 동기가 행동을 만드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대개 순서를 거꾸로 알고 있다. 의욕이 생기면 움직이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의욕이라는 것은 앉아서 기다린다고 찾아오는 손님이 아니다. 오히려 일단 몸을 움직이고, 작은 것이라도 시작하면, 뇌의 도파민 경로가 반응하면서 동기가 뒤따라온다. 스탠퍼드 대학의 신경생물학자 앤드류 허버만(Andrew Huberman)의 연구에 따르면, 하기 싫을 때 몸을 움직이는 행위 자체가 전대상피질(Anterior Mid-Cingulate Cortex)을 활성화시키고, 이것이 의지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하기 싫을 때 하는 것이 뇌를 단련시킨다는 이야기다.
뭐 간단하게는 내가 글을 쓰는것도 컨디션과는 관계없이 쓰지 않더냐? 술먹고 새벽 4시에 들어와도, 꼭 한 두편은 쓰고 자는 것. 물론 다 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투자의 세계에서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작동한다.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은 하루의 80%를 독서에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가 매일 아침 읽고 싶은 기분이 넘쳐서 책을 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에게 독서는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매일 6시 45분에 일어나서 신문을 읽고, 재무보고서를 검토하고, 하루 종일 읽는다. 수십 년간 변하지 않은 이 루틴이 그를 오마하의 현인으로 만들었다. 버핏 본인이 직접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할 필요는 없다, 더 절제할 수 있으면 된다고. 컨디션에 의존하지 않고 구조에 의존하는 사람의 전형이다.
도덕경(道德經) 64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千里之行 始於足下. 천 리 길도 발밑에서 시작한다. 노자(老子)가 말한 이 한 문장은 2,500년 전의 행동활성화 이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자는 거창한 의지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발을 내딛으라고 했다. 장자(莊子)도 비슷한 맥락에서 소요유(逍遙遊) 편을 통해, 작은 새와 큰 새의 비유를 들며, 각자의 크기에 맞는 움직임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그 상태에 맞는 움직임은 항상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심리학에는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는 것이 있다. 1927년 리투아니아 출신의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이 발견한 현상인데, 사람은 완료한 일보다 미완료된 일을 훨씬 더 강하게 기억한다는 것이다. 원래의 관찰은 단순했다. 레스토랑 웨이터가 아직 계산하지 않은 주문은 완벽하게 기억하면서, 계산이 끝난 테이블의 내용은 즉시 잊어버리는 현상이었다. 이것은 실용적으로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일을 시작하면, 설령 5분만 하고 멈추더라도, 뇌가 그것을 미완료 과제로 등록하면서 계속 그 일로 돌아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즉, 컨디션이 안 좋을 때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가 없다. 5분이면 충분하다. 그 5분이 뇌에 고리를 걸어두고, 나머지는 뇌가 알아서 끌고 간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컨디션을 너무 중요하게 취급한다는 점이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다는 판단 자체가 이미 뇌에 명령을 내리는 셈이 된다. 뇌는 그 판단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그 프레임 안에서 처리하기 시작한다. 사소한 짜증을 키우고, 주변 사람에게 날을 세우고, 그 반응이 돌아오면 역시 오늘은 안 좋은 날이라고 확인편향을 강화한다. 컨디션이 나쁜 게 아니라, 컨디션이 나쁘다는 선언이 실제로 컨디션을 나쁘게 만드는 구조다.
뇌라는 기관은 생각보다 단순한 논리로 움직인다. 안전한가, 편한가, 위험하지는 않은가. 이 세 가지가 뇌의 기본 관심사다. 뇌는 당신이 행복한지에는 관심이 없다. 당신이 성장하는지에도 관심이 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위협이 없고 에너지를 덜 쓰는 방향을 선호할 뿐이다. 그래서 뇌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퇴행한다. 도교에서 말하는 수심(修心)이란 결국 이 뇌의 관성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끌려다니지 않는 훈련이다. 마음이 뇌를 쓰는 것이지, 뇌가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니다.
투자에서 이것은 아주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시장이 폭락하는 날, 컨디션이 좋은 투자자는 없다. 그런데 그 순간 공포에 끌려 매도 버튼을 누르는 사람과,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미리 세워둔 원칙대로 움직이는 사람의 결과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으로 S&P 500이 34% 폭락했을 때, 공포에 매도한 투자자들은 이후 2년간의 100% 이상 반등을 놓쳤다. 반면 시스템대로 움직인 사람들은 그 하락을 기회로 전환시켰다. 컨디션이 좋아서가 아니다. 컨디션에 상관없이 움직이는 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컨디션의 순환은 결국 두 가지 방향밖에 없다. 움직이면 작은 성과가 생기고, 작은 성과가 몰입을 만들고, 몰입이 컨디션을 끌어올린다. 반대로, 컨디션을 핑계 삼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고, 시작되지 않으니 성과도 없고, 성과가 없으니 컨디션은 더 내려간다. 어느 쪽 순환에 올라탈 것인가는 사실 아주 작은 선택 하나에 달려 있다.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 있는 가장 작은 행동 하나. 이메일 한 통, 문서 한 줄, 산책 10분.
도덕경 76장은 이렇게 말한다. 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強. 사람은 살아있을 때 부드럽고 약하며, 죽어서 굳고 강해진다. 부드럽다는 것은 움직인다는 뜻이고, 굳었다는 것은 멈췄다는 뜻이다. 컨디션이 안 좋다는 이유로 멈추는 것이 습관이 되면, 사람은 굳어간다. 그리고 굳어진 것은 노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죽음의 무리에 속한다.
물론 진짜로 쉬어야 할 때는 있다. 수면이 부족하면 자야 하고, 몸이 아프면 치료해야 한다. 그것은 컨디션 관리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런 물리적 한계가 아니라, 막연한 기분의 문제를 행동하지 않는 이유로 삼는 습관에 대한 이야기다. 컨디션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교활해서, 돌봐주면 돌봐줄수록 더 나약해지는 속성이 있다. 반대로 무시하고 일단 움직이면, 의외로 알아서 따라붙는다.
결국 이것은 주도권의 문제다. 컨디션이 나를 끌고 가느냐, 내가 컨디션을 끌고 가느냐. 어느 쪽이 더 나은 삶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문제이긴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