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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직함을 바꾸고, 조직을 허물고, 사람을 재배치한다

AI를 도입한 기업들이 직함을 바꾸고, 조직을 통합하고, 백오피스를 자동화하고 있다. Deloitte, Goldman Sachs, Alibaba가 거의 동시에 AI 중심의 구조 개편에 나섰다. 그런데 효율이 올라간 조직과 개인이 공통적으로 빠지는 함정이 있다. 더 빠르게 더 많이 하려는 충동이다. 소총에서 기관총으로 업그레이드됐지만 조준을 안 하면, 과녁을 맞추기 어렵다.

Deloitte는 왜 18만 명의 직함을 바꾸는가

2026년 6월 1일부터 Deloitte의 미국 직원 18만 1,500명 전원이 새 직함을 받는다. Fortune과 Business Insider가 입수한 내부 프레젠테이션에 따르면, Senior Consultant 같은 기존 타이틀이 사라지고 Software Engineer III, Project Management Senior Consultant 같은 기술 중심 직함으로 교체된다. L45, L55 같은 영숫자 등급 코드가 도입되고, 파트너와 매니징 디렉터 위에 Leaders라는 새 리더십 계층이 추가된다.

배경은 명확하다. Deloitte의 프레젠테이션은 현재의 인재 구조가 “내일의 사업을 지탱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수십 년간 유지해온 컨설팅 피라미드, 아래에 주니어를 대량으로 깔고 위에 시니어가 앉는 구조의 전제가 무너지고 있다. AI가 주니어 컨설턴트의 핵심 업무인 리서치, 모델링, 데이터 분석을 대체하면서 피라미드 밑단이 얇아지는 건 시간문제다. Deloitte는 2030 회계연도까지 생성형 AI에 3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고, Nvidia 기반 에이전트형 AI인 Zora AI도 이미 출시했다.

Bersin by Deloitte 창립자 Josh Bersin의 분석은 더 날카롭다. Canadian HR Reporter 인터뷰에서 그는 “사업 컨설팅 산업 자체가 정체하거나 줄어들고 있다”고 말하면서, Deloitte가 McKinsey보다 IBM이나 Accenture에 가까워지려 한다고 평했다. 컨설팅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Goldman Sachs가 AI 에이전트를 백오피스에 배치한 이유

Goldman Sachs는 지난 6개월간 Anthropic 엔지니어들을 사내에 상주시키며 AI 에이전트를 공동 개발했다. CNBC 단독 보도에 따르면, 초점은 두 영역이다. 거래 및 거래 회계(Trade and Transaction Accounting)와 고객 검증 및 온보딩(Client Vetting and Onboarding)이다. CIO Marco Argenti는 이 에이전트들을 “디지털 동료”라고 불렀다.

흥미로운 건 Goldman이 처음엔 AI를 코딩 도구로만 썼다는 점이다. 자율 코딩 에이전트 Devin을 먼저 도입했는데, 그 과정에서 Anthropic의 Claude가 코딩 외 영역에서도 놀라운 능력을 보였다. 대량의 거래 데이터를 파싱하면서 규정을 적용하고, 여권과 법인 등기 서류를 교차 검증하며 예외를 잡아내는 작업에서다. Argenti는 CNBC에 이렇게 말했다. “코딩이 특별한 건지, 아니면 모델이 복잡한 문제를 단계별로 논리를 적용해서 풀어내는 능력인지. 답은 후자였다.”

CEO David Solomon은 2025년 10월에 생성형 AI 중심으로 은행을 재조직하는 다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매출이 급증하는 와중에도 인력 증가를 억제하겠다고 했다. Argenti는 AI가 성숙하면 서드파티 소프트웨어 공급자를 줄일 수 있다고 시사했는데, 이는 SaaS 업계에 던지는 묵직한 경고다. Anthropic의 금융 서비스 책임자 Jonathan Pelosi는 American Banker 인터뷰에서 Claude가 불확실성을 표면화하고 출처를 명시해 감사 추적을 만들도록 설계됐다고 밝혔다. 환각을 줄이되 인간의 최종 판단을 유지하는 구조다.

Alibaba의 530억 달러 AI 베팅, 분할에서 통합으로

Alibaba는 2023년 3월에 도입한 “1+6+N” 구조를 2025년 8월에 4개 사업 부문으로 다시 통합했다. 국내 전자상거래, 해외 디지털 커머스, 클라우드 지능, 기타. 분할에서 통합으로 방향을 완전히 뒤집었다.

핵심은 클라우드와 AI다. Alibaba는 향후 3년간 AI와 클라우드 인프라에 380억 위안, 약 53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CEO Eddie Wu는 실적 발표에서 AI를 “세대에 한 번 오는 기회”라 했다. 숫자가 뒷받침한다. 2025년 6월 분기 기준 클라우드 매출은 전년 대비 26% 성장했고, AI 관련 매출은 8분기 연속 세 자릿수 성장을 기록했다. 외부 클라우드 매출에서 AI가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었다. 오픈소스 전략도 공격적이어서, Qwen 모델 시리즈 300개 이상을 공개해 6억 건 이상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Stanford와 UC Berkeley 연구팀은 50달러 미만으로 Qwen 기반 고성능 모델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면은 복잡하다. 2025년 주가가 89% 올랐음에도 사상 최고가 대비 61% 할인 상태이고, PDD와 JD.com의 경쟁 속에서 국내 전자상거래 수익성은 압박을 받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의 대규모 인력 감축이 항저우 경제 생태계에 충격을 줬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AI 시대의 진짜 함정은 효율이 아니라 방향 상실이다

세 회사의 행보는 서로 다른 맥락에서 출발하지만, 가리키는 곳은 같다. Deloitte는 직함과 경력 구조를 재설계하고 있다. Goldman Sachs는 백오피스 핵심 업무를 AI에 맡기기 시작했다. Alibaba는 조직 전체를 AI 중심으로 재통합했다. 셋 다 AI를 보조 도구가 아니라 조직 설계의 원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컨설팅 피라미드가 무너지는 건 단순한 효율화가 아니다. 주니어가 리서치와 데이터 분석으로 경험을 쌓아 시니어로 올라가는 도제식 성장 경로 자체가 흔들린다는 뜻이다. Goldman에서 AI가 회계와 컴플라이언스를 처리한다는 건, 규칙 기반 판단 영역에서 인간의 비교우위가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Alibaba의 530억 달러 베팅은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경쟁이 클라우드 인프라 투자전쟁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물러서서 봐야 할 것이 있다.

AI를 도입한 기업과 개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 효율이 올라갔다고 한다. 맞다. 올라간다. 문서 파싱이 빨라지고, 코드 작성 시간이 줄고, 리서치에 들이는 공이 확 떨어진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효율이 올라간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거의 예외 없이 같다. 더 많이 하려고 한다. 빨라졌으니까 더 쓰고, 더 만들고, 더 처리하려고 한다.

소총을 쓰던 사람이 기관총을 손에 쥔 격이다. 분당 발사량이 열 배로 늘었다. 그런데 조준을 안 한다. 과녁이 어디인지도 확인하지 않고 방아쇠부터 당긴다. 탄환이 많아졌다는 사실에 취해서, 정작 뭘 맞춰야 하는지를 잊는다.

Deloitte가 호주 정부 프로젝트에서 AI 환각 때문에 환불해야 했던 사례가 정확히 이 지점을 보여준다. AI가 빠르게 보고서를 만들어냈지만, 방향이 틀렸다. 속도와 양이 정확도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빅4 컨설팅펌조차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운 셈이다.

기업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AI를 도입했으니 뭔가를 더 해야 한다는 초조감이 조직 전체를 감싸고 있다. 직함을 바꾸고, 에이전트를 배치하고, 수백억 달러를 쏟아붓는다.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공포가 실행을 앞당긴다. 그런데 속도를 올리는 것과 방향을 잡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AI 효율이 올라갔을 때 개인이 던져야 할 질문

개인에게도 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AI로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세 배로 늘었다고 치자. 그러면 세 배로 많이 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세 배의 여유가 생긴 건가? 대부분은 전자를 택한다. 더 많은 보고서, 더 많은 이메일, 더 많은 미팅, 더 많은 프로젝트. 산출물은 폭증하는데, 정작 이 모든 걸 왜 하는지에 대한 답은 점점 흐려진다.

기관총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건 사실 기관총이 아니다. 과녁이다. 내가 지금 뭘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도구만 업그레이드하면, 결국 더 빠르고 더 효율적으로 엉뚱한 방향을 달리게 된다. 탄환을 아끼던 시절에는 한 발 한 발이 신중했다. 탄환이 무한해진 지금, 신중함은 오히려 더 귀해졌다.

AI가 조직을 바꾸고 직함을 바꾸고 사람의 자리를 옮기는 건 이미 시작됐고, 되돌리기 어렵다. 그 흐름 속에서 빠르게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속도에 취해 방향을 잃는 건 적응이 아니라 표류다. 소총이든 기관총이든, 먼저 과녁을 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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