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 시대, 브랜드와 마케팅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
AI가 소프트웨어를 집어삼킨 다음, 브랜드를 집어삼킨다. Citrini Research의 보고서가 촉발한 나스닥 SaaS 주식 폭락은 단순한 공포 매매가 아니라, 인간의 인지적 한계 위에 세워진 비즈니스 모델 전체에 대한 재평가의 시작이다.

지난 주말 Citrini Research라는, 솔직히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소규모 리서치 하우스가 하나의 보고서를 발행했다. 제목은 “2028 Global Intelligence Crisis.” 2028년 6월 시점에서 과거를 회고하는 형식으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AI가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대체하면서 실업률이 10.2%에 도달하고, S&P 500이 고점 대비 38% 하락하는 시나리오를 그렸다. 보고서 저자들도 “시나리오이지 예측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혔지만, 시장은 그 구분에 관심이 없었다. DoorDash 7% 하락, Salesforce 5% 하락, MongoDB와 AppLovin 8% 하락, Visa와 Mastercard 4% 이상 하락. IBM은 하루 만에 13% 빠졌는데, 이건 2000년 이후 최대 일일 낙폭이다. Nassim Taleb까지 소프트웨어 섹터의 변동성 확대와 파산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시장은 완전히 “먼저 팔고, 질문은 나중에” 모드에 들어갔다.
표면적인 이야기는 이렇다. 에이전틱 코딩 도구(Agentic Coding Tool)의 발전으로 유능한 개발자 한 명이 Claude Code나 Codex를 활용하면 중소규모 SaaS 제품의 핵심 기능을 몇 주 만에 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완벽하지는 않고, 모든 예외 상황(Edge Case)을 처리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연간 50만 달러짜리 SaaS 갱신 계약서를 앞에 놓고 CIO가 “이거 우리가 직접 만들면 안 되나?”라고 묻기에는 충분하다. Citrini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Fortune 500 기업의 조달 담당자가 내부 팀이 6자릿수 SaaS 계약을 몇 주 만에 프로토타입으로 복제하는 걸 목격한 후, 기존 벤더와 30% 할인으로 재계약한 사례가 있다. 이건 실제로 대체하지 않아도 “대체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만으로 협상력이 생긴다는 뜻이다.
SaaS 기업들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고객을 놓치지 않으려면 할인해야 한다. 하지만 코딩이 이 정도로 쉬워지면, 내부에서 뛰어난 개발자 한 명 고용해서 만드는 게 나을 수 있다. 외부 벤더와의 소통 비용, 커스터마이징 제약, 계약 갱신 때마다 벌어지는 협상전. 이 모든 걸 감안하면 내재화가 합리적 선택이 되는 기업이 점점 늘어난다. Citrini가 말한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는 이런 구조다. 기업이 AI를 도입해서 인건비를 줄인다. 절감된 비용을 다시 AI에 투자한다. AI 능력이 향상된다. 인건비가 더 줄어든다. 절감된 비용이 다시 AI로 간다. 자연적인 브레이크가 없는 순환이다.
그런데 SaaS 주가 폭락은 사실 전체 그림의 앞부분에 불과하다.
더 본질적인 질문이 있다. 현재 존재하는 비즈니스 모델 중 상당수가 왜 존재하는가. 답은 인간의 인지적 한계(Cognitive Limitation)다.
브랜드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 브랜드가 가치 있는 이유는 인간이 모든 제품을 일일이 비교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도 없고, 정보도 부족하고, 비교 분석 능력도 한정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번 신뢰를 형성한 브랜드를 반복 구매한다. 나이키 운동화가 무조건 최고의 가성비인지 매번 검증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나이키니까 산다. 이건 합리적 선택이 아니라, 인지적 한계에 대한 합리적 타협이다.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광고가 작동하는 이유는 인간의 판단이 불완전하고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슈퍼마켓에서 모든 세제의 성분을 비교하지 않는다. TV에서 본 것, 친구가 추천한 것, 매대에서 눈에 띄는 것을 집어든다. 프로모션, 연예인 광고, SNS 인플루언서 마케팅,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의사결정자일 때 작동하는 도구다.
그런데 의사결정자가 인간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가.
McKinsey가 2025년 10월 발행한 보고서에서 “에이전틱 커머스(Agentic Commerce)”라는 개념을 다뤘다. AI 에이전트가 소비자를 대신해서 제품을 검색하고, 비교하고, 심지어 구매까지 실행하는 상거래 방식이다. 이미 OpenAI는 Walmart과 파트너십을 맺어 ChatGPT 내에서 구매를 완료할 수 있게 했고, Google도 에이전틱 결제 옵션을 출시했다. McKinsey는 이 시장이 2030년까지 미국에서만 1조 달러 규모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Kearney의 조사에서는 미국 소비자의 60%가 1년 안에 AI 쇼핑 에이전트를 사용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AI 에이전트는 인간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멋진 배너 광고에 설득되지 않는다. 브랜드 이미지에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가격, 성분, 리뷰 데이터, 배송 속도, 반품 정책을 입력값으로 받아서 최적의 선택을 출력한다. Kearney의 Katherine Black은 이걸 “구매 의사결정에서 누가 영향력을 갖는지에 대한 근본적 변화”라고 표현했다. 에이전틱 커머스의 세계에서는 알고리즘이 어떤 제품을 보여주고, 어떤 순서로 배열하고, 어떤 가격으로 제시할지를 결정한다.
이 변화가 실현되면, 타격을 받는 산업의 목록이 길어진다. 광고 대행사. 디지털 마케팅 회사. SNS 인플루언서 경제. 브랜드 프리미엄으로 먹고사는 소비재 기업. 리테일 미디어 네트워크. 연예인 광고 모델. 검색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플랫폼. Bain & Company의 분석에 따르면, AI 에이전트가 소비자의 구매 여정을 대행하기 시작하면, 기존 광고 예산은 에이전트가 제품 발견(Discovery)을 통제하는 플랫폼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기존 소매 웹사이트나 앱은 중요도가 떨어지고, “에이전트가 선호하는 브랜드(Agent-preferred Brand)”가 되느냐가 새로운 경쟁축이 된다.
Citrini 보고서가 지적한 또 하나의 구조는 결제 시스템이다. Mastercard가 가상의 2027년 4월 실적 발표에서 “에이전트 주도 가격 최적화”와 “재량 소비 카테고리의 압박”을 보고하는 시나리오를 그렸다. AI 에이전트가 사용자를 위해 가장 저렴한 결제 경로를 찾아주고, 불필요한 수수료를 우회하고, 구독 서비스를 자동으로 최적화하면, 현재 금융 시스템의 수많은 “통행료 징수소(Toll Booth)” 비즈니스 모델이 위협받는다. American Express, Capital One 같은 카드 기반 금융회사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바로 그 “마찰(Friction)”로 먹고사는 구조다.
여기서 한 가지 역사적 유비를 떠올린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은 정보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으로 먹고살던 비즈니스였다. 여행사, 중고차 딜러, 부동산 중개업. 이들은 “고객이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수익의 원천이었다. 인터넷이 정보의 비대칭을 깨뜨리자, 이 비즈니스들은 축소되거나 완전히 재편되었다. 지금 AI 에이전트가 깨뜨리려는 것은 정보 비대칭이 아니라, 인지 비대칭(Cognitive Asymmetry)이다. 인간이 정보를 갖고 있어도 처리할 수 없다는 한계. 비교할 시간이 없다는 한계. 감정에 휘둘린다는 한계. 이 위에 세워진 모든 비즈니스가 재평가 대상이 된다.
물론 과도기는 길 수 있다. 모든 소비자가 AI 에이전트에게 구매를 위임하는 세상이 내년에 오지는 않는다. 인간은 여전히 감정적 소비를 하고, 럭셔리 브랜드에 돈을 쓰고, 비합리적 선택을 즐긴다. 하지만 방향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시장은 늘 방향이 정해지면 가격에 먼저 반영한다. Citrini 보고서가 “시나리오이지 예측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시장이 반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Wharton의 Stefano Puntoni 교수가 Harvard Business Review 2026년 2월호에서 정확히 이 지점을 짚었다. AI가 마케팅을 두 가지 전선에서 뒤흔들고 있다고. 하나는 소비자가 정보를 검색하는 방식의 변화, 다른 하나는 누가 구매 의사결정을 내리는지의 변화. 두 번째 혁명이 진짜 중요한 건데, 이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고.
도덕경(道德經)에 이런 구절이 있다.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세상의 모든 것은 있음에서 생겨나고, 있음은 없음에서 생겨난다. 브랜드라는 것, 마케팅이라는 것, 광고라는 것은 인간의 인지적 “없음” 위에 세워진 “있음”이었다. 없음의 성격이 바뀌면, 있음의 형태도 바뀐다. AI 에이전트가 인간의 인지적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하면, 그 빈자리 위에 세워진 사업들은 근거를 잃는다.
SaaS 주식 폭락이 시작이라면, 끝은 어디인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