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카파시의 소프트웨어 3.0과 이해의 소유권

사고는 외주화할 수 있지만 이해는 외주화할 수 없다. 안드레이 카파시(Andrej Karpathy)가 2026년 4월 세쿼이아 캐피털의 AI 어센트(Sequoia AI Ascent) 행사에서 스테파니 잔과 진행한 대담에서 던진 말이다. 그가 “마음에 박혔다”고 한 어느 트윗의 문장이라고 인용했다. 이 한 문장이 그가 같은 자리에서 풀어낸 소프트웨어 3.0 이야기의 사실상 결론이다.

카파시는 OpenAI 공동 창업자였고 테슬라(Tesla)의 자율주행 인공지능을 책임졌던 사람이다. 그가 이 자리에서 한 첫마디가 의외였다. 프로그래머로서 지금처럼 뒤처진다고 느낀 적이 없다고 했다. 농담이 아니다. 2025년 11월까지 그는 자기 코드의 약 80퍼센트를 직접 썼고 나머지 20퍼센트만 인공지능에 맡겼다. 12월에 그 비율이 뒤집혔다. 80퍼센트를 에이전트에게 위임하고, 자기는 20퍼센트만 직접 쓰기 시작했다. 그가 한 표현이 그대로다. 마지막으로 코드를 고친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점점 더 시스템을 신뢰하게 됐다.

소프트웨어 3.0이라는 그의 분류는 이런 흐름의 이름표다. 소프트웨어 1.0은 사람이 명시적으로 작성하는 코드. 파이썬이나 C++ 같은 언어로 한 줄씩 짜는 방식. 소프트웨어 2.0은 신경망 가중치가 곧 프로그램인 시대. 데이터를 모으고 모델을 훈련시키면 가중치가 사람의 코드를 대신한다. 카파시 본인이 2017년에 만든 개념이다. 소프트웨어 3.0은 거대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을 자연어로 프로그래밍하는 시대다. 컨텍스트 창(Context Window)이 프로그램이 되고, 거대언어모델이 인터프리터가 된다. 그가 한 표현으로는, 영어가 가장 뜨거운 프로그래밍 언어가 됐다.

이 변화의 무게는 1.0과 2.0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셋이 겹쳐 있다는 데 있다. 어떤 일은 직접 코드를 짜는 게 빠르고, 어떤 일은 모델을 훈련시키는 게 정확하고, 어떤 일은 자연어 프롬프트 한 덩어리로 끝낸다. 이 셋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사람과 한 가지 방식에 갇혀 있는 사람의 격차는 매년 넓어진다.

그런데 카파시의 진짜 통찰은 도구의 변화가 아니라 도구의 본질에 있다. 그는 거대언어모델을 들쭉날쭉한 유령(Jagged Ghost)이라고 불렀다. 10만 줄짜리 코드베이스를 리팩토링하고 제로데이 보안 취약점을 찾아낼 수 있는 존재가, 동시에 50미터 떨어진 세차장까지 운전해 가라고 권유한다. 능력의 분포가 사람과 다르다.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 보상 신호가 집중된 영역에서는 초인적인 성능을 내고, 그 바깥에서는 어이없이 무너진다. 수학과 코드처럼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가장 빨리 좋아진다는 그의 지적이 같은 맥락이다. 검증 가능성(Verifiability)이 자동화의 속도를 결정한다.

그래서 그는 2025년 2월에 자기가 만든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라는 단어를 1년 만에 거둬들이고, 에이전틱 엔지니어링(Agentic Engineering)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내놓았다. 바이브 코딩은 비전문가가 원하는 것을 자연어로 말하면 대충 돌아가는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단계다. 바닥을 끌어올리는 능력. 에이전틱 엔지니어링은 다르다. 전문가가 에이전트를 부리되, 기존 소프트웨어의 품질 기준을 그대로 유지하는 단계다. 천장을 더 끌어올리는 능력. 카파시의 표현으로, 가장 뛰어난 에이전틱 엔지니어는 가장 뛰어난 전통 엔지니어보다 10배 이상 차이를 낸다. 더 적게 타이핑해서가 아니다. 더 깊이 이해해서다.

여기서 처음의 문장으로 돌아온다. 사고는 외주화할 수 있지만 이해는 외주화할 수 없다. 카파시가 직접 만든 메뉴젠(MenuGen)이라는 앱 이야기를 함께 들으면 이 말의 무게가 달라진다. 식당 메뉴를 사진으로 찍으면 음식 이미지를 자동으로 생성해서 보여주는 작은 앱이었다. 잘 돌아가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 날 결제 흐름이 이상하게 꼬였다. 코드를 들여다보니 에이전트가 사용자 식별을 이메일 주소 일치로 처리해 두었다. 스트라이프(Stripe) 결제 계정과 구글(Google) 계정의 이메일이 같으면 같은 사용자로 간주하는 식이다. 두 이메일이 갈라지는 순간 시스템이 무너진다. 사람의 명세서가 잡아냈을 종류의 실수다. 동작은 하는데, 카파시 본인의 표현으로 가끔 심장마비가 올 정도로 흉한 코드. 부풀려져 있고, 복사-붙여넣기가 흩어져 있고, 어색한 추상화가 군데군데 박혀 있다.

이게 도구의 결함이 아니라 외주화의 한계라는 점이 핵심이다. 사고를 외주화한다는 건 일을 시키는 것이고, 이해를 외주화한다는 건 판단을 넘기는 것이다. 일은 넘겨도 판단까지 넘기는 순간, 결과물의 미세한 결함을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 결제 흐름이 어디서 어긋났는지 코드를 열어서 잡아낸 건 결국 카파시였다. 에이전트가 아니다.

장자(莊子) 천지편(天地篇)에 비슷한 결의 이야기가 있다. 자공(子貢)이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우물 밑까지 내려가 항아리에 물을 떠서 직접 손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자공이 안타까워하며 두레박틀이라는 기계를 권했다. 하루에 백 이랑은 너끈히 적실 수 있고 힘은 거의 들지 않는다고 했다. 노인이 발끈했다. 기계를 가진 자에게는 반드시 기계의 일이 생기고, 기계의 일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기계의 마음이 생긴다. 기계의 마음이 가슴 속에 있으면 순백한 것이 갖춰지지 못하고, 순백한 것이 갖춰지지 못하면 정신과 본성이 안정되지 못한다. 그래서 모르는 게 아니라 부끄러워서 쓰지 않는다고 했다.

2,300년 전의 노인은 도구의 외주화가 마음의 외주화로 이어진다는 것을 경계했다. 카파시는 도구의 외주화는 받아들이되 이해의 외주화만은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같은 지점을 양쪽에서 본 셈이다. 한쪽은 거절했고 한쪽은 협상한다. 누가 옳은지를 가르는 자리가 아니다. 다만 이 둘 사이의 어디쯤에서, 도구를 쓰면서도 도구에 부려지지 않는 좁은 길이 열리는 것 같다.

25년 넘게 시장을 들여다보면서 비슷한 구조를 자주 봤다. 거래 도구가 좋아질 때마다 사람들이 같은 착각을 한다. 도구가 결정을 대신해 줄 거라고 믿는다. 자동매매 시스템이 처음 나왔을 때도, 알고리즘 트레이딩이 보편화됐을 때도, 인공지능 기반 자산관리가 등장했을 때도 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도구를 잘 부리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번다. 도구에 자기 판단을 떠넘긴 사람은 처음 몇 번 운이 좋다가 어느 순간 크게 깨진다. 차이는 거의 항상 같은 자리에서 갈린다.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가. 도구가 내놓은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안목이 자기 안에 있는가.

소프트웨어 3.0의 시대에 사람이 할 일은 점점 줄어든다. 자연어 한 덩어리로 앱이 만들어지고, 한 줄의 지시로 시스템이 배포된다. 그런데 줄어든 자리의 끝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카파시는 다시 한 번 짚었다. 에이전트는 의지를 갖지 않는다. 어떤 문제를 풀 가치가 있는지를 모른다. 어디까지가 충분한지를 모른다. 검증할 수 없는 것을 검증할 척하지도, 못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럴듯한 것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충분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자리는 비어 있다. 그 자리에 누가 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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