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돈과 에너지: 재물의 흐름을 바꾸는 법

사람이 큰 돈을 벌기 직전, 혹은 돈 때문에 고비를 넘겨야 할 때, 그 사람의 에너지장이 먼저 바뀐다. 이것은 동양의 오래된 관찰이다. 명리학에서 말하는 재운(財運)이 들어오기 전, 사람의 언행과 사고방식이 먼저 변한다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다. 도교에서는 이를 과전관(過錢關)이라 부른다. 인간의 삶에는 여러 관문이 있는데, 애정의 관문인 과정관(過情關), 가족의 관문인 과친관(過親關), 건강의 관문인 과병관(過病關) 등이 있다. 모든 사람이 모든 관문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며, 각자의 명에 따라 넘어야 할 관문이 다르다. 재물의 관문은 그중에서도 현대인 대부분이 마주하는 것이다.

두려움 속에 있는 사람에게서 재물은 빠르게 빠져나간다. 안정된 에너지장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꾸준한 재물이 흘러들어온다. 창조의 에너지장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재물이 배가되어 들어온다. 이것은 신비주의가 아니라 일종의 심리역학이다. 도덕경에서 말하는 무위(無爲)의 원리와도 통한다. 억지로 쥐려 하면 빠져나가고, 자연스럽게 흐르게 두면 모여든다.

돈을 벌면서 고통스러운 사람들 대부분은 두려움의 에너지장에 갇혀 있다. 그들의 가장 큰 바람은 어디선가 목돈이 뚝 떨어져서 눈앞의 모든 걱정을 해결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돈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돈 버는 과정 자체를 고문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일을 싫어하고, 일을 주는 사람도 싫어하고, 자신이 여기 있는 것이 재능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일을 그만둘 수 없으니, 월급에 집착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돈을 못 벌까봐 두렵고, 그래서 돈을 쓰는 것조차 괴롭다. 안팎으로 메마른 상태가 된다. 도교에서 말하는 집착이 고통을 낳는다는 가르침 그대로다. 쥐려는 마음이 강할수록 손안의 것은 빠져나간다.

안정된 에너지장 속에 있는 사람은 다르다. 이들에게는 늘 돈이 들어온다. 왜냐하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데 집중하고, 매일 꾸준히 움직이며, 누군가 왜 자신에게 돈을 주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재물은 손에 쥔 일을 제대로 해낸 대가라는 것을 믿는다.

창조의 에너지장에 있는 사람은 안에서 바깥까지 힘이 넘친다. 그들의 머릿속 주요 질문은 이것이다. 내가 무엇을 새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분야를 어떻게 더 낫게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사람에게 재물은 시간을 팔아서 받는 대가가 아니다. 상품이든, 시스템이든, 개인 브랜드든 무언가를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기회를 쫓아다니지 않아도 기회가 찾아온다. 장자가 말한 대붕(大鵬)의 비유가 떠오른다. 작은 새는 나뭇가지 사이를 바쁘게 날아다니지만, 큰 새는 한 번 날갯짓으로 구만리를 간다. 창조의 에너지장에 있는 사람은 작은 기회를 쫓아 분주히 움직이지 않는다. 큰 흐름을 타고 멀리 나아간다.

돈의 고비를 넘기는 에너지장이란 결국 이런 것이다. 어떻게 돈을 벌지, 돈이 어디서 올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 어떻게 나를 온전히 펼쳐낼 것인가에 집중한다.

이런 에너지장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먼저 이미 돈이 충분한 사람처럼 느끼며 사는 것이다. 만약 지금 재정적으로 자유롭고, 여행도 실컷 다녀서 질렸고, 매일이 좀 심심하다면, 그때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을 만나면 뜻이 통한다고 느낄 것 같은가? 돈이 충분한 느낌이란 시간을 자신의 몰입에 더 많이 배분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쓰고, 그 과정에서 마음이 채워지는 것이다. 도교 수행에서 말하는 지족(知足)의 경지다. 이미 충분하다고 느끼는 마음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불러온다.

다음으로 창조력이 생명 깊은 곳에서 솟아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감정적으로 크게 반응하는 지점을 살펴야 한다. 무엇에 화가 나는가? 남들이 형편없이 하는 것을 보고 짜증이 치미는 영역이 무엇인가? 그 감정이 큰 곳에 자신의 생명이 외치는 것이 숨어 있다.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시장에 깔린 못생긴 옷들을 참을 수 없어서 결국 자신이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낸다. 도덕경을 오래 연구하고 그 덕을 본 사람은 엉터리 해석이 판치는 것이 싫어서 직접 제대로 된 것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또한 자신이 바라는 삶의 모습을 그려야 한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그러면 비슷한 바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든다. 한복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복 동호회를 만들고, 그 안에서 옛것의 아름다움을 되살리는 움직임이 생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의 그림을 선명히 그릴수록, 그 그림에 끌리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자신의 독특함을 봐야 한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고, 바꾸고 싶은 것이 있는데 왜 움직이지 않는가? 대부분 자신의 목소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이 보잘것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 바꿔주기를 바라기만 한다. 하지만 자신의 독특함을 인정하는 순간, 이 일에는 내가 필요하다고 믿는 순간, 사람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남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한다. 도교에서 말하는 진인(眞人)이란 남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본성대로 사는 사람이다. 재물의 관문을 넘는 것도 결국 자신의 본성을 찾아 그대로 사는 데서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사업 구조가 필요하다. 가슴 뛰는 것을 상품으로 만들고, 하고 싶은 일을 시스템으로 구축하고, 자신을 하나의 브랜드로 세워야 한다. 이름이 알려져야 하고 싶은 일을 더 빨리 해낼 수 있다. 좋은 사업 구조가 없으면 열정은 상상 속에만 머문다. 전략이 있어야 하고, 구체적인 행동이 있어야 하고, 날마다 지키는 것이 있어야 뜻한 바가 이루어진다.

돈의 고비를 넘긴 사람들은 대체로 이 과정을 거쳤다. 이미 충분한 것처럼 느끼며 살다가, 자기 안의 창조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업 구조 안에 담아 세상에 내놓는다. 에너지장이 바뀌면 재물은 저절로 따라온다.

명리학에서 재성(財星)이 용신(用神)인 사람이 있고 기신(忌神)인 사람이 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돈이란, 단순히 재성만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명조든 재물을 다루는 방식은 결국 그 사람의 에너지장이 결정한다. 팔자가 아무리 좋아도 두려움 속에 웅크린 사람에게는 돈이 머물지 않는다. 팔자가 평범해도 창조의 에너지장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찾아온다. 운명은 정해진 틀이 아니라 에너지의 흐름이다. 도교에서 말하듯, 도(道)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재물의 관문 앞에 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노력이 아니라 에너지장의 전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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