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경험하는 미지의 세계와 그 영향
어린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참 흔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타나 숨겨둔 돈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거나, 세 살배기가 텅 빈 문 앞을 보며 증조할아버지를 부르며 안아달라 했다거나, 예전에 형장이었다는 체육관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아이가 다음 날 거기 사람이 많아서 무서웠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산에서 버섯을 따다가 저기 두 사람이 누워있다고 가리킨 곳이 무덤 두 기였다는 이야기도 있고, 한밤중 불을 끄면 거실 소파에 여러 어른들이 앉아 수다를 떠는 게 보였는데 불을 켜면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버지가 퇴근해서 들어왔는데 저 사람 누구냐며 아버지를 못 알아보더니, 며칠 뒤 큰아버지가 출장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민간에서는 이런 현상을 흔히 천안(天眼)이 아직 닫히지 않았다고 표현한다. (사실 진정 천안이라기 보다는 음양안이라고 하는게 맞다.)아이들은 후천의 기운에 물들기 전이라 선천의 감각이 남아있어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것이다. 도교적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영혼의 순수함, 혹은 미성숙함과 관련이 있다. 아이의 혼백은 아직 완전히 육신에 정착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에서 양쪽을 모두 감지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어떤 이들은 천안이라기보다 영혼 자체가 약해서 감응이 더 예민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런 경험담은 상담을 하다 보면 심심찮게 듣게 된다. 어릴 때 이상한 것들이 보였는데 크면서 자연히 사라졌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성인이 되어서도 그 감각이 유지되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이것이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건 그만큼 접촉할 필요가 없는 것들과 접촉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보고 듣게 되면, 그런것들이 더 달라 붙게 되고, 또 듣는것을 믿어버리면 (때론 아주 정확하기에), 오히려 문제가 커지게 된다. 어린 시절 그런 경험이 잦았던 아이들 중 일부는 원인 모를 야경증에 시달리거나, 특정 장소를 극도로 무서워하거나,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술법으로 이런 감각을 어느 정도 닫아주는 것도 가능하다. 천안을 완전히 봉인하는 것이 아니라 과도하게 열린 감각의 문을 적당히 좁혀주는 것이다. 혹은 간섭이 너무 심해서, 영혼이 타격을 심하게 입는다면, 영혼을 숨긴다는지 등 각종 방법을 강구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은 케이스마다 접근이 달라야 한다. 선천적으로 그런 체질을 타고난 경우와, 특정한 사건이나 장소로 인해 일시적으로 열린 경우는 다르게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닫는 것이 능사도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 감각이 본인을 지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니까.
어릴 때 천안이 열려 있으면 그닥 좋지 않다고 보는 시선이 있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아이는 자신이 보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능력이 없고, 스스로를 보호할 방법도 모른다. 어른들은 아이가 헛것을 본다며 무시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겁을 먹고 호들갑을 떨기도 하는데, 둘 다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아이가 무언가를 보았다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필요하다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낫다.
세상에는 보이는 것만 있는 게 아니고,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도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