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AI 춘절 전쟁, 홍바오 1조 원의 진짜 의미
2026년 춘절, 중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AI 앱 하나에 수조 원을 쏟아부었다. 알리바바 30억 위안, 텐센트 10억 위안, 바이두 5억 위안. 합산하면 우리 돈으로 약 1조 원에 가까운 돈이 고작 며칠짜리 세뱃돈 이벤트에 투입된 셈이다. 중국에서 인공지능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지를 보려면, 이 춘절 마케팅 전쟁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것이 가장 빠르다.

11년 전인 2014년 춘절, 위챗은 ‘흔들기’ 기능으로 5억 위안 규모의 홍바오를 뿌렸고, 그 한 번의 이벤트로 알리페이가 10년 넘게 쌓아올린 모바일 결제 시장의 구도를 뒤집었다. 마화텅 텐센트 회장이 올해 내부 회의에서 “11년 전의 감동을 재현하고 싶다”고 말한 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위안바오라는 이름의 AI 챗봇 앱을 애플 앱스토어 무료 다운로드 1위에 올리겠다는 의지다. 실제로 이벤트 시작 직후 위안바오는 바이트댄스의 더우바오를 제치고 1위를 찍었다. 다만 이번에는 상대가 알리페이가 아니라 알리바바의 큐원(Qwen)이다. 텐센트가 위챗이라는 사회관계망 위에 AI를 올리려 한다면, 알리바바는 아예 AI를 일상생활의 관문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알리바바 큐원의 접근법이 흥미로운 것은 AI를 대화 도구가 아니라 실행 도구로 위치시켰다는 점이다. 올해 1월 항저우 본사에서 열린 발표회에서 알리바바 우자 부사장은 직접 큐원에게 밀크티 40잔을 주문하는 시연을 보여줬다. 사용자가 말 한마디를 하면, AI가 가게를 찾고, 주문서를 작성하고, 알리페이 결제 단계까지 안내한다. 타오바오에서 물건을 사고, 어러머로 배달을 시키고, 플리기로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과정이 한 앱 안에서 완결된다. 1월 기준 큐원의 월간 활성 이용자가 1억 명을 넘었다는 수치는 이 전략이 어느 정도 먹히고 있다는 뜻이다. 춘절 기간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몰린 것은 덤이다.
미국과 중국의 AI 발전 경로가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미국은 모델 자체의 성능, 그러니까 추론 능력과 범용 지능 쪽에 자본을 집중한다. 오픈AI(OpenAI)가 1,000억 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받고,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와 구글(Google)이 해마다 수백억 달러를 데이터센터에 쏟는 구조다. 반면 중국은 모델 성능 경쟁에서 한 발 비껴서서, AI를 기존 생태계에 심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텐센트는 위챗이라는 14억 인구의 일상 인프라 위에 AI를 얹고,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와 결제와 배달이라는 실물 거래 위에 AI를 얹는다. 모닝스타(Morningstar)의 이반 수 애널리스트가 “벤치마크 점수에 집착하면 텐센트 같은 기업이 자사 생태계에 AI를 통합했을 때의 진정한 가치를 놓친다”고 지적한 것은 이 맥락에서다.
물론 중국이 모델 경쟁에서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딥시크(DeepSeek)가 2025년 1월 R1 모델을 내놓았을 때, 엔비디아 주가가 하루 만에 6,000억 달러 가까이 증발한 일은 이제 기술 역사의 한 장면이 됐다. H100의 저사양 수출용 버전인 H800 칩 2,048개로, 560만 달러라는 비용으로 오픈AI의 o1 모델에 버금가는 성능을 낸 것이 핵심이었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가 중국 AI를 억누르기는커녕, 제한된 자원 안에서 더 효율적인 기술을 찾아내도록 몰아간 셈이다. 딥시크는 올해 2월 중순 V4 모델 출시를 예고하고 있고, 알리바바의 큐원은 이미 오픈소스 진영에서 전 세계 7억 회 이상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바이두는 자사 모델 어니(Ernie)를 오픈소스로 전환했고, 바이트댄스의 더우바오는 올해 춘절 갈라쇼의 단독 AI 파트너로 선정됐다.
여기서 눈여겨볼 구도가 있다. 중국의 AI 경쟁은 모델 개발사와 플랫폼 기업이 서로 다른 차원에서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딥시크 같은 스타트업은 모델 효율성에서 세계적 기준을 세우고, 알리바바와 텐센트 같은 플랫폼은 그 모델을 자기 생태계 안에서 돈이 되는 구조로 바꾼다. 알리바바가 큐원을 통해 실제 거래액을 만들어내는 방식, 텐센트가 위챗 안에 딥시크 R1을 탑재하는 소규모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 징둥이 AI 안경 쇼핑 서비스를 선보인 것 모두 같은 흐름이다. 모델은 갈아끼울 수 있지만, 14억 인구가 매일 쓰는 플랫폼은 대체하기 어렵다.
중국 정부의 움직임도 이 방향과 맞물린다. 제15차 5개년 계획에 ‘엠보디드 AI'(Embodied AI)를 핵심 성장 엔진으로 명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소프트웨어 AI를 넘어서 로봇과 드론 같은 물리적 시스템에 AI를 심는 것이 다음 단계라는 뜻이다. 부동산 침체와 고령화라는 구조적 문제 앞에서,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단으로 AI를 택한 것이다. 이미 중국 공장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 팀이 24시간 생산 라인에 배치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다시 춘절로 돌아오면,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세뱃돈에 쓰는 행위의 본질은 사용자 습관을 바꾸는 것이다. 검색창에 질문을 치던 사람이 AI에게 말을 걸고, AI가 대답만 하는 게 아니라 밀크티를 주문하고 비행기표를 예약하게 만드는 것. 서방의 AI가 ‘생각하는 기계’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동안, 중국의 AI는 ‘움직이는 기계’를 만드는 쪽으로 무게를 옮기고 있다. 그렇다고 기술 격차를 무시할 수는 없다. 중국 모델들이 오픈AI의 최신 모델과 벤치마크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텐센트 마화텅 스스로가 내부에서 ‘인프라 부족’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는 보도도 있다. 3분기 자본 지출이 전 분기 대비 30% 넘게 줄어든 수치는, 미국의 칩 수출 규제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알리바바의 ‘밀크티 주문’ 시연과 텐센트의 ‘홍바오 뿌리기’ 사이에서, 중국 AI 산업이 보여주는 것은 결국 하나다. 기술의 우위가 아니라 기술의 쓸모를 먼저 확보하겠다는 것. 좋은 모델을 가진 쪽이 이기는 것인지, 좋은 생태계를 가진 쪽이 이기는 것인지는 아직 답이 없다. 다만 14억 인구가 매일 쓰는 위챗과 타오바오와 알리페이 위에 AI가 올라타는 순간, 그 생태계 안의 데이터는 다시 모델을 학습시키는 재료가 된다. 그 순환 고리가 한 바퀴 더 돌았을 때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는, 아마 다음 춘절쯤에야 윤곽이 잡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