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이 돈이 되던 시대는 끝나가는가 – AI 시대 가치 창조의 전환
예로부터 장사의 본질은 인간의 욕망을 읽는 것이었다. 탐욕, 색욕, 공포, 결핍. 이 네 글자가 수천 년간 부의 원천이었다는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 서복을 보낸 것이나, 2024년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들이 스위스에서 줄기세포 시술을 받는 것이나, 그 밑바닥에 깔린 것은 같은 것이다. 죽음이 두렵고, 늙기 싫다는 마음.

도덕경(道德經)에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이라 했다. 다섯 가지 색은 눈을 멀게 하고, 다섯 가지 소리는 귀를 먹게 한다. 감각의 자극을 좇는 인간의 본성은 바뀌지 않았고, 그것을 이용하는 장사꾼의 기술만 정교해졌을 뿐이다. 주사위가 알고리즘 매매(Algorithmic Trading)로 바뀌었어도 도박꾼의 눈빛은 같고, 청루가 AI 동반자(AI Companion)로 바뀌었어도 외로움의 질감은 같다. 여기까지는 동의한다.
그런데 한 가지 전제를 짚어야 한다. 이 모든 논리는 가치 창조의 중심에 인간이 서 있을 때 유효한 이야기다.
2025년 MIT 연구에 따르면 현재 AI 기술만으로도 미국 전체 노동시장의 11.7%, 약 1억 5100만 개의 일자리에 해당하는 업무를 대체할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2025 미래직업보고서(Future of Jobs Report)는 2030년까지 1억 7000만 개의 새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9200만 개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숫자만 보면 순증이지만, 사라지는 자리와 생기는 자리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반복적인 실행 업무는 줄고, AI 에이전트를 설계하고 감독하는 관리직이 늘어난다. 가치의 무게중심이 ‘실행하는 사람’에서 ‘질문하는 사람’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2026년 CES에서 업계가 주목한 키워드는 에이전틱 AI(Agentic AI)였다. 대화하는 AI가 아니라 행동하는 AI. 항공편을 예약하고, 환불을 협상하고, 스마트홈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시연되었다. 배터리벤처스(Battery Ventures)의 제이슨 멘델은 2026년을 소프트웨어가 인간의 생산성을 높이는 단계에서 일 자체를 자동화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해라고 규정했다. 사피르(Sapphire)의 라지브 담도 기업 예산이 채용에서 AI 인프라로 재배치될 것이라 전망했다.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여기서 역학(易學)을 끌어오지 않을 수 없다. 역(易)이라는 글자 자체가 변화를 뜻한다. 주역(周易)의 첫 번째 가르침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고, 두 번째 가르침은 변화의 흐름을 읽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막히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이 구절이 지금처럼 절실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인간의 탐욕, 색욕, 공포, 결핍이 장사의 원천이라는 명제는 인간이 경제활동의 주체일 때 성립한다. 소비하는 것도 인간이고, 생산하는 것도 인간이며, 그 사이에서 욕망을 자극하는 것도 인간일 때. 그런데 만약 생산의 상당 부분을 AI 에이전트가 맡고, 소비의 의사결정까지 AI가 보조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는가. 이미 버츄얼스 프로토콜(Virtuals Protocol) 같은 플랫폼에서는 18,000개 이상의 AI 에이전트가 서로 서비스를 요청하고, 가격을 협상하고, 결제하는 에이전트 간 거래(Agent-to-Agent Commerce)가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이 빠진 경제 순환이 이미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향후 3년에서 7년은 기존의 인간 욕망 기반 사업 모델이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 AI의 본격적 침투에는 인프라 구축, 규제 정비, 조직 문화의 전환이라는 시차가 존재한다. MIT 슬론의 연구가 보여주듯, AI를 도입한 제조기업들은 초기에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는 J커브(J-Curve)를 경험한다. 새 기술이 기존 프로세스와 정렬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 시차가 곧 기존 사업자들의 유예기간이다.
문제는 그 유예기간이 끝난 뒤다. 제프리 힌턴(Geoffrey Hinton)은 AI가 약 7개월마다 이전 작업 시간의 두 배에 해당하는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지금 한 시간 걸리는 코딩 작업을 AI가 몇 분 만에 끝내고, 몇 년 안에 한 달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을 해치울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속도라면 가치 창조의 중심축이 인간에서 기계로 넘어가는 것은 시간의 문제다.
그때가 되면 욕망의 장사라는 오래된 공식도 재편될 수밖에 없다. 탐욕을 자극해 금융상품을 팔던 구조에서, AI가 스스로 투자 판단을 내리고 실행하는 구조로. 외로움을 소비로 전환시키던 구조에서, AI 동반자가 인간의 감정적 필요를 거의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구조로. 공포를 이용해 건강보험을 팔던 구조에서, AI가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를 자동으로 수행하는 구조로. 결핍을 부추겨 소비 대출을 유도하던 구조에서, AI가 소비 패턴을 최적화해 결핍 자체를 줄이는 구조로. 욕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다루는 주체가 바뀌는 것이다.
역학에서 말하는 음양의 전환이 바로 이것이다. 양(陽)이 극에 달하면 음(陰)이 시작되듯, 인간 중심의 경제가 극에 달하면 그 다음 질서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변화를 보는 것이 역학의 본령이라면, 지금 이 전환의 조짐을 읽지 못하는 것은 역학을 한다고 말할 자격이 없는 것과 같다.
자꾸 미래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욕망 네 글자가 돈이 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다만 그것이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맞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순간, 시대의 조류에서 이탈하게 된다. 기술은 과거의 것이 되지만, 변화는 미래의 것이다. 어느 쪽을 바라보고 서 있느냐에 따라 같은 시장에서도 보이는 것이 전혀 달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