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감
사람들은 직감을 믿으라고 말한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직감이라는 것이 과연 늘 나를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사람은 많지 않다.

직감은 중립적인 기제다. 그것은 나침반과 같은데, 문제는 그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쪽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악업(惡業)이 두텁게 쌓인 사람의 직감은 묘하게도 그를 파멸의 길로 안내한다. 본인은 분명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느끼는데, 돌이켜보면 그 모든 선택이 자신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들이다. 반대로 선업(善業)이 많은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무언가에 이끌리듯 화를 피한다. 약속 시간에 늦어서 사고를 면하고,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잘못된 투자를 거두고, 이상하게 그 사람이 꺼림칙해서 거래를 취소했는데 나중에 보니 사기꾼이었다.
역사적으로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에서 일하던 사람들 중 일부는 그날 아침 이상하게 출근이 늦어졌다. 평소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로 지각을 했고, 그래서 살았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그날따라 일찍 출근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것을 우연이라고 할 수도 있고, 운명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같은 직감이라는 이름 아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람들이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사람은 순수하게 선업만 있거나 악업만 있는 존재가 아니다. 누구나 선업과 악업을 동시에 품고 살아간다. 다만 시기에 따라 어느 쪽이 더 강하게 작용하느냐가 달라질 뿐이다. 운이 좋은 시기에는 선업의 과보가 익어서 직감이 좋은 방향으로 작동한다. 위험을 피하게 하고, 좋은 인연을 만나게 하고, 기회를 붙잡게 한다. 이런 시기를 몇 번 겪으면 사람은 자신의 직감을 신뢰하게 된다. 나는 감이 좋은 사람이야, 내 느낌은 틀린 적이 없어, 이렇게 믿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운의 흐름이 바뀌어 악업이 선업을 압도하는 시기가 오면, 그토록 믿었던 직감이 정반대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본인은 여전히 자기 직감을 신뢰한다. 과거의 성공 경험 때문이다. 그래서 악업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서도 이번에도 잘 될 거야, 하고 믿는다. 이렇게 크게 망가지는 것이다. 주식 투자로 크게 성공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잡는 것마다 하락하는 경험, 사업마다 성공하던 사람이 갑자기 무엇을 해도 안 되는 시기, 이런 것들이 그렇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늘 청정심(清淨心)을 유지하는 것이다. 청정심이란 고요하고 맑은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데, 이 상태에서는 지금 내가 어떤 흐름 속에 있는지를 스스로 감지할 수 있다. 지금 나의 직감이 선업에서 오는 것인지, 악업에서 오는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맑은 물에서는 바닥이 보이지만 흐린 물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마음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흐려져 있으면 자기 상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그저 직감이 시키는 대로 따라갈 뿐이고, 그것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끌려간다.
도덕경에서 노자가 말한 치허극 수정독(致虛極 守靜篤)이 이것이다. 비움을 극에 이르게 하고 고요함을 돈독하게 지키라는 것. 이 상태에서 비로소 만물의 순환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자기 안의 업의 흐름 역시 마찬가지다. 고요한 마음으로 자신을 들여다볼 때, 지금 내가 어떤 파도 위에 있는지가 보인다.
운이 좋을 때 겸손하기가 어렵고, 운이 나쁠 때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직감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직감을 쓰되,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를 안다.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저는 재를 버리고 인을 취하라는 말이 직감으로 오는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