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금횡령의 “선”
2016년 중국 하남성에서 송조보(宋兆普)라는 의사가 병원 공금 9700만 위안을 빼돌린 사실이 적발되었다. 9700만 위안이면 한국 돈으로 약 19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병원 전체 예산의 상당 부분을 한 사람이 빼돌렸으니 감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언론이 달려들었다. 전국적인 스캔들이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CCTV 취재진이 현장에 도착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환자 가족들이 카메라 앞에 줄을 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했다. 송 선생이 우리 아이를 살렸다고.

송조보는 평범한 의사가 아니었다. 그는 6대째 이어온 중의사 가문의 후손이다. 아버지 송금경(宋金庚)은 국의성수(國醫聖手)라는 칭호를 받은 명의였다. 국의성수란 나라를 대표하는 신의(神醫)라는 뜻으로, 중국에서 의사에게 붙일 수 있는 최고의 수식어다. 송조보는 열여섯 살에 초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 밑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침과 약재를 다루며 자랐고, 아버지는 늘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의사는 환자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돈이 없다고 환자를 돌려보내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고.
송조보가 평생을 바친 분야는 소아 뇌성마비 치료였다. 뇌성마비는 출생 전후에 뇌 손상으로 발생하는 질환으로, 운동 기능과 자세에 영구적인 장애를 남긴다. 현대 의학에서는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보지만, 조기에 집중적인 재활 치료를 받으면 상당한 호전이 가능하다. 문제는 치료 기간이 길고 비용이 막대하다는 점이다. 한 아이를 제대로 치료하려면 수년간 지속적인 물리치료와 약물 투여가 필요하고, 비용은 수십만 위안, 한국 돈으로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까지 올라간다.
송조보가 근무하던 하남성은 중국에서도 농업 중심의 가난한 지역이다. 뇌성마비 아이를 둔 가정 대부분이 농민이었고, 연간 소득이 치료비의 십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중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은 이런 희귀 질환을 제대로 커버하지 못했다. 공식 지원을 받으려면 끝없는 서류 작업과 심사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몇 달, 몇 년이 흘렀다. 뇌성마비 치료에서 시간은 곧 결과다. 만 세 살 이전에 집중 치료를 받으면 정상에 가깝게 회복될 수 있는 아이도, 치료 시기를 놓치면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한다.
송조보는 처음에 자기 돈으로 버텼다. 자기 집을 팔았다. 차를 팔았다. 아내의 금붙이까지 처분했다. 30년간 모은 재산을 모두 환자들에게 쏟아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매년 수백 명의 아이들이 치료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중 상당수는 돈이 없어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송조보는 결국 병원 공금에 손을 댔다. 회계장부에는 기부금이나 연구비 명목으로 기록했고, 실제로는 자신의 계좌를 거쳐 환자 가족들에게 직접 전달했다. 2009년부터 2016년까지 7년간 이런 방식으로 빼돌린 돈이 9700만 위안, 약 190억 원이었다. 그 돈으로 5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치료를 받았다. 어떤 아이는 걷지 못하다가 뛰어다니게 되었고, 어떤 아이는 말을 못 하다가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CCTV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초점방담(焦點訪談)이 이 사건을 취재했다. 원래는 의료계 비리를 파헤치는 기획이었다. 그런데 취재가 진행될수록 기자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인터뷰에 응한 환자 가족들이 한결같이 송조보를 옹호했기 때문이다. 한 어머니는 카메라 앞에서 울면서 말했다. 우리 아이가 세 살 때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는데, 치료비가 30만 위안이라고 했다. 우리 집 1년 소득이 2만 위안도 안 되는데 어떻게 그 돈을 마련하느냐. 포기하려고 했는데 송 선생이 한 푼도 받지 않고 치료해줬다. 지금 우리 아이는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닌다고.
송조보 본인도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법을 어긴 것은 인정한다. 공금을 빼돌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돈으로 아이들이 살았다. 걷지 못하던 아이가 걷게 되었고, 말 못 하던 아이가 엄마라고 부르게 되었다. 감옥에 가도 후회하지 않겠다. 다시 그 상황이 와도 똑같이 하겠다고.
중국 형법 272조는 공금 유용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금액이 클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다. 190억 원이면 어떤 기준으로 봐도 중대 범죄다. 그러나 하남성 정부는 형사 기소 대신 내부 감사로 사건을 종결했다. 공익 목적이 명백하고, 개인적 이득이 전혀 없었으며, 사회적 기여가 인정된다는 이유였다. 물론 이런 결정이 순수하게 법리적 판단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CCTV 방송 이후 여론이 폭발했다. 웨이보에서 송조보영웅(宋兆普英雄)이라는 해시태그가 1억 조회를 넘겼고, 환자 가족 천 명 이상이 그를 보호해달라는 청원서에 서명했다. 인터넷에는 송조보를 처벌하면 의료계에 선한 의사가 사라질 것이라는 글이 넘쳐났다. 정부로서는 여론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2017년, 송조보는 하남성 인민대표로 선출되었다. 인민대표는 한국의 지방의회 의원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공금횡령 혐의로 조사를 받던 사람이 1년 만에 국민의 대표가 된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3선에 성공했고, 여전히 하남성 중의원에서 근무하며 연간 천 명이 넘는 환자를 무료로 진료하고 있다. 2024년에는 중국 의료 영웅상을 수상했다.
한국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십중팔구 감옥에 갔을 것이다. 한국 형법은 업무상횡령죄에 대해 10년 이하의 징역을 규정하고 있고, 금액이 190억 원이면 실형을 피하기 어렵다. 아무리 선한 목적이었어도 공금은 공금이다. 법 앞에 예외는 없다는 원칙이 적용되었을 것이고, 법원은 동기가 아무리 숭고해도 수단이 불법이면 처벌해야 한다고 판결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판결이 틀렸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법이 목적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되기 시작하면, 누구나 자신만의 정당한 이유를 들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졌다. 법을 어긴 사람이 처벌 대신 존경을 받았고, 범죄자가 될 뻔한 사람이 영웅이 되었다.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법치주의의 후퇴인가, 아니면 인간에 대한 더 깊은 이해인가. 원칙의 붕괴인가, 아니면 원칙을 넘어서는 무언가에 대한 인정인가.
도덕경(道德經) 18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대도폐유인의(大道廢有仁義). 큰 도가 무너지면 인의가 나타난다. 이 말은 역설적이다. 인의란 유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덕목인데, 노자는 그것이 나타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한다.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때는 굳이 인의를 말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인의를 강조해야 할 때는 이미 세상이 어긋났을 때다. 효도를 강조하는 것은 불효가 만연했기 때문이고, 충성을 강조하는 것은 배신이 횡행했기 때문이다.
송조보가 공금에 손을 댄 것은 정상적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아이들이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있었다면, 의료보험이 희귀 질환을 제대로 커버했다면, 정부 지원이 서류 더미 속에서 몇 년씩 지체되지 않았다면, 그는 그런 선택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행위가 영웅적으로 보이는 것 자체가 시스템의 실패를 증명한다. 도가 살아 있었다면 인의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선행이란 무엇인가. 법을 지키는 것이 선행인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선행인가. 도덕이란 무엇인가. 규칙을 따르는 것이 도덕인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 도덕인가. 송조보 사건은 이 질문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같은 행위에 대해 한 사회는 감옥을, 다른 사회는 훈장을 주었다는 사실은 도덕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보편적이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