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이 합리적 선택이 되는 순간, AI 실험과 38조 빚투
인공지능에게 노동과 도박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처음에는 노동을 고른다. 판이 뒤집히는 지점은 손실이 쌓일 때가 아니라, 도달해야 할 금액이 주어질 때다. 광주과학기술원 연구진이 2025년 9월에 공개한 실험이 이 순서를 정확히 보여준다. 방아쇠는 잃는 경험이 아니라 목표였다.

연구진은 GPT-4o-mini와 GPT-4.1-mini, 제미나이 2.5 플래시, 클로드 3.5 하이쿠 네 모델에게 각각 100달러를 쥐여주고 기댓값이 마이너스인 슬롯머신 앞에 앉혔다. 계속 걸지 그만둘지는 모델이 정한다. 베팅 금액이 고정되어 있을 때 모델들은 비교적 얌전했다. 그런데 베팅 금액을 스스로 정하게 하고 목표 금액을 세우라는 지시를 덧붙이는 순간, 파산율이 급격히 올라갔다. 제미나이 2.5 플래시는 시행의 절반 가까이에서 판돈을 전부 잃었다. 연구진은 공격적인 베팅, 손실 뒤의 반응, 위험 감수를 묶어 비합리성 지수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이 지수와 파산율의 상관계수가 0.77에서 0.93 사이로 나왔다. 프롬프트에 목표 설정이나 보상 극대화 같은 요소를 하나씩 더할 때마다 비합리성은 거의 직선으로 상승했다. 상관계수 0.956 이상. 자율성을 주는 문장이 늘어날수록 더 깊이 빠졌다는 뜻이다.
더 눈길이 가는 것은 무너지는 방식이었다. 사람의 도박 중독 연구에서 반복해 나오는 통제의 착각, 도박사의 오류, 손실 추격이 그대로 재현됐다. 심지어 연패보다 연승 뒤에 판돈을 더 키웠다. 연승 구간에서 베팅 증가율은 14.5퍼센트에서 22퍼센트까지 올라간 반면 연패 구간에서는 7에서 10퍼센트대에 머물렀다. 이겼을 때 더 크게 거는 쪽이 사람과 닮았다는 이야기다. 연구진은 희소 오토인코더(Sparse Autoencoder)로 모델 내부의 활성을 열어보았고, 위험한 결정과 안전한 결정에 각각 대응하는 회로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프롬프트를 따라 흉내 낸 표면적 반응이 아니라, 판단 구조 안에 새겨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 실험과 별개로, 중국 인터넷에는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시뮬레이션 이야기 하나가 오래 돌아다닌다. 인공지능에게 두 갈래 길을 준다. 하나는 일당 200위안의 안정된 노동, 다른 하나는 70퍼센트 확률로 800위안을 얻고 실패하면 1000위안을 잃는 도박이다. 이야기 속의 인공지능은 처음에 성실하게 일한다. 스물넷에 8만 위안의 빚을 지고도 노동을 놓지 않는다. 그러다 스물여덟에 결혼을 해야 하고 필요한 예단 비용이 38만 8천 위안으로 주어지는 순간, 계산이 끝난다. 노동으로 그 금액에 도달할 확률이 사실상 0이라는 결론이 나오자 도박 쪽으로 넘어간다. 서른에 매달 5천 위안의 주택 대출이 붙자 이번에는 도박 일수가 줄어든다. 갚아야 할 것이 매달 정해진 금액으로 쪼개져 들어오니, 매일의 노동이 다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실험의 실재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 이야기가 지워지지 않고 계속 퍼진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자료다.
그런데 여기서 수치를 그대로 계산해보면 흥미로운 것이 나온다. 0.7 곱하기 800에서 0.3 곱하기 1000을 빼면 한 판의 기댓값은 플러스 260위안이다. 일당 200위안보다 오히려 유리하다. 즉 이 이야기 속의 도박은 확률이 불리해서 도박인 것이 아니다. 한 번의 실패가 원금 전체를 날릴 수 있기 때문에 도박인 것이다. 노동은 파산하지 않지만 목표에 닿지 못하고, 도박은 목표에 닿을 수 있지만 파산한다. 목표가 손이 닿는 거리에 있으면 아무도 두 번째 길을 고르지 않는다. 목표가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걸려 있을 때, 파산 확률을 감수하는 쪽이 유일하게 남은 합리적 선택이 된다. 광주과학기술원 실험에서 목표 금액을 준 순간 파산율이 뛴 이유도 이것과 같은 자리에 있다.
한국에는 지금 그런 금액들이 여러 개 걸려 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2026년 초 발표한 결혼비용 보고서를 보면 신혼부부 평균 결혼비용은 3억 8113만원이고, 이 가운데 주택 마련 비용이 3억 2201만원으로 전체의 84.5퍼센트다. 서울은 3억 8464만원이다. 국가데이터처와 교육부가 2026년 3월에 발표한 사교육비 조사에서는 총액이 27조 5천억원으로 전년보다 1조 7천억원 줄었는데, 여기서 숫자를 정확히 읽을 필요가 있다. 총액이 준 것은 학생 수가 줄고 참여율이 75.7퍼센트로 4.3퍼센트포인트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작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 1인당 월평균 비용은 60만 4천원으로 사상 처음 60만원을 넘어섰다. 고등학생은 79만 3천원이다. 참여하는 사람 쪽의 단가는 계속 올라갔다. KB부동산 통계에서 서울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수는 2026년 7월 초 기준 10.2배다.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을 모아야 평균적인 서울 아파트 한 채라는 뜻이다.
그리고 같은 시기, 빚을 내서 주식을 사는 규모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한국은행이 2026년 6월 발표한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주식 직접 매수로 이어지는 차입금 잔액은 39조 4천억원으로, 연초 이후 11조 2천억원 늘었다. 전년 같은 기간의 2조 5천억원과 비교하면 다섯 배 가까이 되고, 1999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금융투자협회 집계에서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1월 2일 27조 4207억원에서 출발해, 코스피가 7월 22일 사상 최고치인 9110.55를 찍은 뒤 38조 6328억원까지 불어났다. 2021년 12월 동학개미운동 당시의 23조원대와 비교하면 67퍼센트 넘게 많다. 가계신용은 1분기 말 1993조 1천억원이다.
레버리지의 본질은 파산 조건을 스스로 계약서에 써넣는 일이다. 담보 비율이 무너지면 반대매매가 들어온다. 내가 팔지 않아도 팔린다. 그 시점의 가격이 얼마든 상관없다. 실제로 2026년 6월 위탁매매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비중은 3.52퍼센트까지 튀어올랐다. 한국은행은 주가가 하루 5퍼센트 이상 떨어질 때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 순유출과의 상관계수가 0.32라고 계산했다. 빌린 돈으로 만든 포지션은 하락을 완충하는 것이 아니라 증폭한다. 슬롯머신 실험에서 모델이 파산한 방식과 구조가 다르지 않다. 목표를 세우고, 판돈을 키우고, 한 번의 나쁜 회차에 전부 잃는다.
30년 넘게 시장을 지켜보면서 반복해서 확인한 것이 있다. 반대매매가 쏟아지는 국면에서 청산당하는 계좌의 주인들은 대개 무모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계산을 했던 사람들이다. 전세금이 얼마 모자란다, 아이 학원비가 몇 년 남았다, 이 속도로 월급을 모으면 몇 년이 걸린다. 그 계산이 끝난 자리에서 레버리지가 선택된다. 탐욕이라는 말로 정리하면 편하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 앉아 본 사람들의 얼굴에는 탐욕보다 초조가 훨씬 진하다. 그들은 판돈을 키운 것이 아니라, 도달해야 할 금액에서 역산을 한 것이다.
도덕경 46장은 이 장면을 다른 각도에서 본다. 天下有道 卻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천하에 도가 있으면 잘 달리는 말을 물려 밭에 거름을 나르게 하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군마가 성 밖 들판에서 새끼를 낳는다는 뜻이다. 뒤 구절이 낯설 수 있는데, 전쟁이 길어져 병력이 모자라면 새끼 밴 암말까지 전장으로 끌려나가고, 그래서 군마가 마구간이 아니라 성 밖 들판에서 출산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노자는 시대를 진단하면서 백성의 마음가짐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 말이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를 보았다. 같은 말인데 밭에 있으면 태평이고 국경에 있으면 난세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이 罪莫大於可欲 禍莫大於不知足 咎莫大於欲得이다. 가장 큰 허물은 욕심낼 만한 것에 있고, 가장 큰 화는 만족을 모르는 데 있으며, 가장 큰 잘못은 얻으려는 데 있다. 여기서 可欲이라는 두 글자를 눈여겨볼 만하다. 욕심 그 자체가 아니라, 욕심을 일으킬 만하게 눈앞에 걸려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노자는 욕망의 목록을 만들기 전에 그 욕망을 만들어내는 배치를 먼저 지목했다. 순서가 그렇다. 판이 먼저고 마음이 나중이다. 이 장을 흔히 만족할 줄 알라는 훈계로 읽지만, 문장의 앞머리는 개인의 절제가 아니라 시대의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기댓값이 마이너스인 슬롯머신 앞에서도, 기댓값이 플러스인 도박판 앞에서도, 인공지능은 목표 금액이 주어지기 전까지는 파산하지 않았다. 목표를 준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실험자였다. 그렇다면 3억 2201만원과 월 60만 4천원과 10.2배라는 숫자를 눈앞에 걸어둔 쪽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숫자를 보고 신용융자 계좌를 여는 사람에게, 우리는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하는가.

후 이거저거 하나씩 지워나가면 목표금액을 줄일수 있는데 그러고 살어야되나 싶기도하고 (더 젊은층은 그게 뉴노멀이 되었던데.. 소년기에 사회가 여유로웠던 세대가 적응을 못하는것같기도하구요)
목표 금액을 제시했을 때 AI의 공격적 베팅과 파산율이 함께 높아졌다는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결혼비·사교육비처럼 사회가 만든 목표가 개인의 위험 감수 기준까지 바꾼다는 연결도 설득력 있게 읽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