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비전과 실행 사이의 거리, 머스크와 박정희가 보여준 것

미래는 예측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이것이 비전을 가진 경영자와 그저 똑똑한 경영자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다. 2026년 5월 13일, 피규어 AI의 휴머노이드 로봇 세 대가 캘리포니아 서니베일 본사에서 8시간 연속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패키지 분류 작업을 했다. 사람의 개입은 한 번도 없었다. 로봇 한 대가 7시간 44분 동안 만 개의 패키지를 처리했고, 평균 처리 속도는 패키지당 2.6초였다. 사람의 작업 속도와 거의 같다. 같은 시기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는 월 4대씩 생산되며, 현대차 공장에 본격 배치되는 시점은 2028년으로 잡혀 있다. 십수 년 전 백플립을 하고 박스를 들어올리던 그 아틀라스의 후예다. 같은 산업, 같은 목표, 같은 시대인데 결과는 다르다.

이 차이를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는 방식이 있다. 한쪽은 비전을 실행으로 끌어내리고, 다른 쪽은 시연 영상에 머무른다. 그러나 진짜 차이는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학계는 이 격차를 오래 연구해 왔다. 가트너의 조사에 따르면 전략 책임자의 70퍼센트는 자신이 그 격차를 좁힐 능력이 있다고 자신하지 못한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이 임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88퍼센트가 전략 실행 능력을 조직 성공에 본질적이라고 답했지만, 임원들 스스로의 추산으로 전략이 가진 잠재 가치의 약 40퍼센트가 실행 단계에서 사라진다. 비전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비전 다음에 따라와야 하는 것이 부족하다.

비전 리더십에 대한 학술 연구가 머스크를 반복해서 사례로 꺼내는 이유는 그가 매력적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한 가지 흔치 않은 결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2024년 아틀란티스 출판사의 테슬라 사례 연구는 머스크의 리더십을 변혁적 리더십과 비전 리더십, 적응 리더십이 동시에 작동하는 보기 드문 조합으로 분석한다. 아드놀라 아데그베산이 2025년에 발표한 논문도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머스크는 비전을 선언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전을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낮은 층까지 내려간다는 점에서 다른 비전가들과 갈린다. 이것을 머스크 본인은 제1원리 사고(First Principles Thinking)라고 부른다.

머스크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가 2002년 로켓 발사 비용을 알아봤을 때 한 대에 6500만 달러였다. 그는 그 가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질문을 바꿨다. 로켓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항공우주용 알루미늄 합금, 티타늄, 구리, 탄소섬유. 원자재 시장에서 그 재료들의 가격은 얼마인가. 계산을 마친 그가 도달한 결론은, 원자재 값이 완성된 로켓 가격의 약 2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면 나머지 98퍼센트는 어디에서 오는가. 거기서 스페이스X가 시작되었다. 그가 만든 팰컨 9는 발사 비용을 거의 10분의 1로 끌어내렸다. 비전이라는 단어는 흔히 멀리 보는 능력으로 이해되지만, 머스크의 작업 방식은 그 반대에 가깝다. 멀리 본 후, 가장 가까운 단위 비용까지 내려와서 거기서부터 다시 쌓는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도 비슷한 구조를 보여준다. 그는 1964년 12월 서독을 방문해 본과 쾰른 사이 아우토반을 시찰했다. 그때부터 2년 가까이 그는 고속도로 자료를 모았고, 1967년 대선에서 비로소 공식 공약으로 발표했다. 1968년 2월 착공해 1970년 7월 7일 완공했다. 2년 5개월, 총 공사비 429억 원. 같은 시기 일본 도메이고속도로의 8분의 1 수준이었다. 박정희는 비전을 선언만 한 것이 아니라 노선 선정, 토지 매입, 자금 조달, 인력 동원, 공사 일정 관리까지 직접 개입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실린 최광승의 2010년 논문은 이 과정을 두고 박정희의 업무 추진 방식이 명확하게 드러난 사례라고 정리한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단계별 실행 목표를 설정하고, 실무 영역까지 직접 들어간다는 것이다. 부실 공사 비판도 따라붙었고 정치적 의도도 끼어 있었다. 그러나 미국 차관이 거부되었음에도 우리 기술과 자금으로 마쳤다는 사실은 남는다. 비전을 선언하는 사람과, 비전을 가격표로 환산해 들어가는 사람의 거리가 여기서도 드러난다.

대조적으로 비전이 실행으로 내려오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학계는 꽤 정밀하게 짚는다. 하버드의 존 코터(John Kotter)는 조직 변화의 70퍼센트가 실패하거나 목표에 못 미친다는 결론을 내고, 그 원인을 비전과 실행 사이를 잇는 리더십 공백으로 봤다. 코터의 관찰에서 흥미로운 점은 실패의 주된 무대가 최고경영진이 아니라 중간 관리자라는 것이다. 비전은 위에서 만들어지지만 그 비전이 실제 노동과 부딪치는 지점은 아래쪽이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누군가가 비어 있을 때 비전은 영상 속에만 남는다.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십수 년 동안 보여준 백플립 영상, 박스 운반 영상, 파쿠르 영상이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그 인상이 양산 단가, 결함률, 교대 가능 시간, 충전 사이클 같은 가장 지루한 숫자들로 내려오지 못했을 뿐이다. 피규어가 BMW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에서 11개월 동안 차량 3만 대 생산에 기여하고, 1250 시간 운영하고, 9만 개 부품을 옮겼을 때, 그 숫자들은 영상이 아니라 회계 장부의 단위였다.

도교에서 일을 도모하는 방식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 도덕경 63장에 있다. 圖難於其易, 為大於其細. 天下難事必作於易, 天下大事必作於細. 어려운 일은 그것이 쉬울 때 도모하고, 큰 일은 그것이 작을 때 시작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곳에서 만들어지고, 천하의 큰 일은 반드시 작은 곳에서 만들어진다. 비전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으면서 비전 리더십의 핵심을 짚는다.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과, 그 그림을 가장 작은 동작 단위로 분해하는 능력이 따로 놀지 않는다. 머스크가 로켓 가격을 원자재 시장의 알루미늄 시세까지 내려보낸 작업, 박정희가 고속도로 비전을 노선 측량과 평당 236원의 토지 매입 단가까지 내려보낸 작업이 모두 이 한 문장 안에 들어간다. 노자가 거듭 말하는 것은 큰 일을 쉽게 다루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큰 일이 사실은 작은 일들의 누적이라는 것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도 결국 양산으로 들어간다. 2026년 출고 물량은 이미 현대차와 구글 딥마인드에 모두 약정되었고, 보스턴 본사에서 즉시 생산을 시작했다. 현대는 2028년까지 조지아 메타플랜트에서 연 3만 대 양산 체제를 갖추겠다고 발표했다. 결과적으로는 같은 길로 들어선다. 다만 십수 년 늦었다. 자본의 시간으로 십 년은 흔히 한 세대 산업의 위치를 결정한다. 옵티머스, 피규어 03, 유니트리 G1, 1X 네오가 동시에 시장을 깔고 있을 때, 늦게 들어가는 쪽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좁아져 있다. 같은 비전을 가졌더라도, 그 비전이 어떤 속도로 단가와 시간표로 환산되었는지가 결국 누가 그 시대의 산업을 가져가는지를 결정한다.

리더의 진짜 역량 차이는 비전의 크기에서 갈리지 않는다. 비전의 크기는 비교적 흔하다. 그 비전을 가장 낮은 단위까지 분해할 의지가 있는지, 분해된 단위에서 다시 위로 쌓을 인내가 있는지에서 갈린다. 영상이 길어질수록, 그 길이만큼 단가와 시간표는 멀어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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