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발끝으로 서면 오래 못 간다 — 짝을 고르는 일에서 자기를 모르면 생기는 일

짝을 고르는 일에서 가장 흔한 실수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면서 상대에게 완벽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상형 조건이 실제 연애에 도움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2025년에 나온 43개국 대규모 연구의 답은 명확하다.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 욕망의 크기는 정확하게 알면서, 자기 그릇의 크기는 잘 모른다. 이 간극이 크면 클수록, 짝을 찾는 일은 미궁에 빠진다.

도덕경(道德經) 제24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企者不立 跨者不行. 발꿈치를 들고 서는 사람은 오래 서지 못하고, 다리를 크게 벌려 걷는 사람은 멀리 가지 못한다. 自見者不明 自是者不彰. 스스로 드러내려는 사람은 오히려 밝지 못하고, 스스로 옳다 하는 사람은 오히려 빛나지 못한다. 노자(老子)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억지의 구조다. 자기 키보다 높이 서려고 발끝을 세우면, 순간은 높아지지만, 결국 무너진다. 자기 보폭보다 넓게 벌리면, 한 걸음은 넓어지지만, 다음 걸음을 내딛지 못한다. 사람의 모든 일이 그렇지만, 특히 배우자를 고르는 일에서 이 원리는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나 꺼내보겠다. 한 여성이 오랜 독신 생활 끝에 가족에게 자신의 이상형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조건은 이랬다. 좋은 대학 석사 이상, 키 180 이상, 피부가 희고 이목구비가 뚜렷할 것, 머리숱이 건재할 것, 패션 감각이 있을 것, 집안일을 알아서 할 것, 요리를 잘할 것, 아이를 잘 돌볼 것, 유머가 있을 것, 집과 차와 저축이 있을 것, 그리고 월급으로 자기를 먹여 살릴 수 있을 것. 왜냐하면 자기는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 조건들을 한 호흡에 쏟아낸 것이다. 빈틈이 없었다. 너무 빈틈이 없어서 오히려 허가 드러났다. 이 리스트의 앞 두 가지만 충족하는 남자도 이미 상위 몇 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거기에 나머지 조건까지 전부 갖추려면, 그것은 사람을 찾는 일이 아니라 드라마 캐릭터를 설계하는 일이다.

주변에서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듣고 한마디 했다. 그런 사람이 왜 하필 당신을 선택하겠느냐고. 그 여성은 화를 냈다. 자기는 주체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남자가 가족을 먹여 살리는 건 당연한 거라고. 그 반응 자체가 문제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주체성이라는 단어는 본래 자기 삶의 방향을 자기가 정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기 삶의 모든 물질적 조건을 상대에게 맡기려 하면서 주체성을 주장하는 것은, 말의 뜻과 행동이 정확히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주체성이 아니라 의존을 주체성이라는 포장지로 감싼 것에 가깝다.

이런 사례가 여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모로 평범하고,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부족한 편인 남자가 비슷한 조건을 내건 경우도 있다. 피부 하얗고 예쁘고 다리 길고, 착하고 순하고, 살림도 잘하고 바깥일도 잘하고, 집안이 좋고 학벌도 높고 돈도 잘 버는 독녀. 이쯤 되면 모순이 웃음을 넘어 걱정이 된다. 그런 조건의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 해도, 그 사람이 왜 자기를 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없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조건 목록을 떠올리지만, 심리학은 그 목록이 실제로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데이터로 보여준 적이 있다. 2025년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캠퍼스(UC Davis)의 폴 이스트윅(Paul Eastwick)이 이끈 국제 공동 연구가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28권에 게재되었다. 43개국, 22개 언어, 10,358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등록 보고서(Registered Report) 방식의 연구였다.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짝의 조건을 물었다. 외모, 지성, 경제력, 성격 등 35가지 특성에 대해 각각 얼마나 중요한지를 평가하게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사람들이 누구에게 끌리는지, 누구와 사귀는지를 추적했다. 결과는 뚜렷했다. 사람들이 입으로 말하는 이상형의 조건은, 실제 짝의 선택과 매우 약한 상관관계만을 보였다. 35개 특성 전체를 통합한 보정 패턴 지표(corrected pattern metric)조차 효과 크기가 작았다.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이긴 했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에 비하면 거의 무시할 만한 수준이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성별에 따른 차이였다. 여성들은 경제력이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실제 끌림에서 경제력의 영향은 여성들이 진술한 것보다 훨씬 작았다. 반대로 외모에 대해서는 여성과 남성 모두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이 외모에 반응했다. 사람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조차 정확히 모른다는 이야기다.

이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머릿속에서 설계하는 이상형이라는 것이 실제 관계에서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긴 리스트, 그 정밀한 조건표는, 실제로 누군가를 만났을 때 종이 위에 머무른다. 사람은 조건으로 끌리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기가 조건으로 끌린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상형의 조건을 열 가지를 채우든 스무 가지를 채우든, 실제 만남에서는 전혀 다른 무엇이 작동한다. 그 무엇이라는 것은 결국, 두 사람 사이의 살아 있는 반응이다. 말투, 눈빛, 침묵의 질감, 유머의 결, 불편함을 다루는 방식. 이런 것들은 조건표에 적을 수 없다.

도덕경 24장으로 돌아가면, 노자는 이런 말도 했다. 其在道也 曰餘食贅行. 도(道)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것들은 남은 음식이고 쓸데없는 혹이다. 사람마다 쓸데없이 덧대고 있는 것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자기 능력 밖의 조건 목록이고, 누군가에게는 상대를 통해 채우려는 자기 삶의 빈자리이고, 누군가에게는 자기에 대한 과대평가다. 이런 것들을 걷어내면 남는 것이, 자기의 실제 크기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짝에게도 일정한 수준을 요구한다. 이것은 이기적인 게 아니라 합리적인 것이다. 강한 사람이 짝을 볼 때, 감정만 보는 것이 아니다. 가치관이 맞는지, 위기가 왔을 때 함께 버틸 수 있는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지, 둘이 함께 세우려는 삶의 그림을 같이 그릴 수 있는지를 본다. 1 더하기 1이 2보다 커지는 조합을 원하는 것이지, 계속 빚을 만들어내는 동업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강한 사람들은 아주 단순한 것만 본다. 이 사람이 나를 좀 도와줄 수 있는가. 적어도 집안일이라도 잘 돌봐줄 수 있는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못 하겠다면, 아무리 감정이 있어도 관계는 오래 가기 어렵다. 어느 한쪽이 아무 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소비만 한다면, 그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시들어간다. 외부에서 인정받을 것이 없으니 안에서도 자기를 인정할 수 없게 되고, 그러다 보면 상대를 의심하게 되고, 의심은 집착이 되고, 집착은 공포가 된다. 고래 등에 붙어 사는 따개비처럼, 고래가 언제 죽을까, 언제 나를 떨어뜨릴까, 그 두려움 속에 사는 것이다.

외모가 뛰어나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뛰어난 외모는 그 자체로 자본이고, 짝을 고르는 일에서 분명히 유리하다. 이스트윅의 연구에서도 외모는 진술된 선호도(Stated Preference)와 무관하게 실제 끌림에서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특성 중 하나였다. 하지만 외모는 깨지기 쉽다. 능력이 받쳐주지 않는 외모는, 다른 사람의 도구가 되기 쉽다. 보통 사람의 외모는, 능력과 짝을 이루어야 자기 것이 된다. 혼자 서 있을 수 없는 자본은 자본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빌려준 담보에 가깝다.

자기가 강해야 자기 것이다. 다른 누구의 것도 내 것이 될 수 없다. 있다 해도 사용권일 뿐이다. 상대의 마음이 바뀌면, 하루아침에 회수된다. 이상적인 짝을 원한다면, 먼저 이상적인 자기가 되어야 한다. 적어도 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어야 한다. 발꿈치를 들고 높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키만큼 서되, 그 자리를 단단하게 밟고 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이 불쾌해한다. 불쾌하다는 반응 자체가, 들여다봐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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