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원하는 사람 – 기술의 수명이 2년인 시대에 무엇을 배울 것인가
시대마다 필요한 인재는 달라진다. 이것은 예측이 아니라 관찰이다. 40년 전에 30년을 써먹을 수 있었던 기술이 지금은 2년도 못 간다. OECD가 추적한 수치다. 1987년에 익힌 기술 하나로 은퇴까지 버틸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2년마다 쓸모가 바뀐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전히 한 가지를 잘 익혀두면 평생 먹고살 수 있다고 믿는다.

2024년 세계정부정상회의에서 엔비디아 CEO 젠슨 황(Jensen Huang)이 한 말이 논란이 됐다. 아이들에게 컴퓨터 과학을 가르쳐야 한다고들 하는데, 사실은 거의 정반대라고 했다. 아무도 프로그래밍을 할 필요가 없는 기술을 만드는 것이 자기들의 일이고, 앞으로 프로그래밍 언어는 사람의 말이 된다고 했다.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프로그래머가 됐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이 발언이 퍼지면서 문과의 시대가 왔다느니, 코딩은 배울 필요 없다느니 하는 해석이 쏟아졌다. 그런데 젠슨 황이 실제로 한 말의 핵심은 문과도 이과도 아니다. 기술의 문턱이 낮아지면, 그 기술 자체를 다루는 능력보다 그 기술을 써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아는 능력이 중요해진다는 이야기다. 도구가 쉬워지면 도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도구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앞서간다.
이런 전환은 처음이 아니다. 산업혁명 초기에 영국 직조공들이 기계를 부쉈다. 러다이트 운동이다. 기계가 자기들의 숙련된 손기술을 대체할 것이라는 공포 때문이었다. 실제로 대체됐다. 그런데 기계를 부순 사람들이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새로운 공장의 주인이 됐다. 한 세대 만에 가치 있는 능력의 정의 자체가 바뀐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구조는 같다. 세계경제포럼이 2025년에 발표한 미래 직업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약 1억 7천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9천 2백만 개의 기존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현재 직장인의 핵심 역량 중 39%가 2030년까지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달라진다는 것은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 쓸모 있는 것이 5년 뒤에는 다른 형태로 쓸모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주역(周易)에 시(時)라는 개념이 있다. 때. 주역 64괘는 전부 다른 시간대의 다른 상황을 말하고 있다. 건괘(乾卦)의 잠룡물용(潛龍勿用)은 아직 때가 아니니 움직이지 말라는 뜻이고, 비룡재천(飛龍在天)은 때가 왔으니 날아오르라는 뜻이다. 같은 용인데 때에 따라 해야 할 것이 다르다. 능력이 달라진 것이 아니다. 시간이 달라진 것이다. 주역이 가르치는 핵심 중 하나가 시중(時中)이다. 때의 한가운데에 서는 것. 지금 이 순간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읽고, 거기에 맞추는 것이다. 과거에 통했던 것을 붙들고 있으면 시중을 잃는다.
젠슨 황의 말을 주역으로 읽으면 단순하다. 코딩이라는 기술이 쓸모없어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코딩이라는 기술의 시(時)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손으로 베를 짜는 기술이 쓸모없어진 것이 아니라 손으로 베를 짜는 시대가 지나간 것과 같다. 기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기술이 놓인 시간대가 문제다.
사람들이 놓치는 것이 하나 있다. 시대가 바뀔 때 살아남는 사람의 특징은 새로운 기술을 빨리 배우는 것이 아니다. 지금 무엇이 바뀌고 있는지를 감지하는 것이다. 배우는 속도는 그다음이다. 감지가 먼저다. 러다이트 운동의 직조공들은 기술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당대 최고의 숙련공이었다. 그런데 바뀌고 있는 것을 기계의 위협으로만 읽었지, 흐름의 전환으로 읽지 못했다. 위협에 반응하면 부수게 되고, 전환에 반응하면 올라타게 된다.
세계경제포럼 보고서가 제시한 2030년 핵심 역량 상위 목록을 보면, 분석적 사고, 창의적 사고, 회복탄력성, 유연성이 상위를 차지한다. AI와 빅데이터 같은 기술 역량도 올라와 있지만, 그 기술을 감싸는 것은 결국 사고방식이다. 기술은 도구이고, 도구를 들고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고다. 젠슨 황이 말한 것도 결국 이것이다. 프로그래밍 언어가 사람의 말이 되면, 중요한 것은 말을 정확하게 하는 능력이다.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아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곧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그러면 지금 뭘 배워야 하는가. 이 질문 자체가 함정이다. 뭘 배워야 하느냐고 묻는 순간, 다시 기술 하나를 붙잡으려는 관성에 빠진다. 30년짜리 기술이 2년짜리로 줄어든 시대에, 특정 기술 하나를 정답으로 찍는 것은 과녁이 움직이는 사격장에서 한 곳만 조준하는 것과 비슷하다.
주역의 변(變)이라는 글자가 여기서 의미를 갖는다. 주역은 변화의 책이다. 64괘, 384효가 전부 변화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주역이 말하는 변화는 혼란이 아니다. 변화 안에 일정한 흐름이 있다는 것이 주역의 전제다. 날씨가 매일 다르지만 계절의 순서는 있듯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매번 다르지만 그 안에 읽을 수 있는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을 읽는 눈이 시대를 건너는 능력이다. 특정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계속 감지하는 감각을 기르는 것이다.
젠슨 황이 코딩을 배울 필요 없다고 한 것이 아니다. 코딩만으로 충분했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고 한 것이다. 러다이트 직조공에게 문제가 된 것은 기계가 아니라, 기계 이후의 세상을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기술의 수명이 2년으로 줄어든 시대에, 30년짜리 정답을 찾으려는 사람은 이미 질문을 잘못 하고 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두 부류의 사람이 갈린다. 이전 시대의 정답을 붙들고 있는 사람과, 다음 시대의 질문을 먼저 던지는 사람. 어느 쪽이 살아남는지는 역사가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다만 지금 자기가 어느 쪽에 서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