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이 좋아하는 후배의 조건 – 빛을 빌리기 전에 갖춰야 할 것들
귀인은 눈 위에 꽃을 얹어주는 사람이지, 눈보라 속에서 숯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남의 기세를 빌릴 수는 있어도,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작동하지 않는다. 스스로 서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는다. 사람들은 약자에게 동정은 보내지만 실제로 도와주는 일에는 인색하다. 심하면 은근히 깔보기까지 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강한 것에 끌리고, 약한 것에서는 고개를 돌린다. 귀인이라는 존재가 하는 일은 밑바닥에서 누군가를 끌어올려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그런 일은 현실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귀인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그 사람에게는 발견될 만한 무언가가 있었다.

도덕경(道德經) 27장에 善行無轍迹 善言無瑕讁이라는 구절이 있다. 잘 가는 자는 자취를 남기지 않고, 잘 말하는 자는 흠잡힐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이 더 깊다. 是以聖人常善救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是謂襲明. 성인은 늘 사람을 잘 살려내므로 버리는 사람이 없고, 늘 물건을 잘 살려내므로 버리는 물건이 없다. 이것을 빛을 감추되 밝게 쓰는 것이라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성인이 아무나 구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善救라고 했다. 잘 살려낸다는 것이다. 쓸모가 있는 사람을 찾아내어 그 쓸모를 살려주는 것이지, 아무 준비도 없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다.
투자의 세계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 벤처캐피털(Venture Capital)이 스타트업에 돈을 넣을 때, 아무것도 없는 팀에 투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소한의 제품이 있거나, 시장에서 반응이 나오고 있거나, 창업자가 해당 분야에서 검증된 경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Y Combinator 같은 세계 최고의 액셀러레이터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보는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사람이다. 이 사람이 끝까지 해낼 수 있는가, 이 팀에 뭔가 남다른 것이 있는가. 귀인이 후배를 점찍는 과정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귀인과 후배의 관계 중 하나는 추사 김정희와 역관 이상적의 이야기다. 1840년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권력을 잃은 사람에게 가까이 가면 자신도 위험해지니까. 그런데 이상적은 달랐다. 중국을 오갈 때마다 귀한 서적을 구해서 제주도 유배지까지 보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1844년에는 황조경세문편 120권 76책을 보냈다. 김정희는 이 제자의 한결같은 마음에 감동하여 국보 세한도(歲寒圖)를 그려 보냈다. 歲寒然後知 松栢之後凋. 한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마지막까지 푸르다는 걸 알게 된다. 논어 자한편의 이 구절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다. 이상적이 김정희에게 변함없는 의리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이미 탁월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상적은 9대에 걸친 역관 집안 출신으로, 생애 동안 12번이나 청나라를 오가며 당대 최고의 중국 문인들과 교류했다. 북경에서 자신의 문집을 낸 것도, 청나라의 정세를 조정에 정확하게 보고한 것도 그였다. 아무 능력 없이 의리만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귀한 서적을 구할 수도 없었고 김정희의 학문적 갈증을 채워줄 수도 없었다. 능력이 있었기에 의리를 실천할 수 있었다. 이것이 핵심이다.
귀인이 후배에게서 보고 싶어하는 것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진짜 실력이다. 한 가지라도 남들보다 뛰어난 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귀인이 아무리 밀어줘도 결국 무너진다. 삼국지의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이나 찾아간 것은 제갈량에게 천하삼분지계라는 명확한 전략적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 준비 없이 초야에 묻혀 있었다면 유비가 찾아갈 이유가 없었다. 둘째는 꾸밈없는 태도다. 귀인이 될 만한 사람은 대개 오랜 세월 사람을 봐온 사람이다. 잔꾀를 부리면 바로 들킨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을 때 가장 값진 것이 진심인데,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그 상황에서 자신을 포장하려 든다. 셋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일을 맡겼을 때 기대한 만큼 해내는 것이 기본이고, 기대 이상의 결과를 가져오면 그때부터 귀인의 눈빛이 달라진다. 넷째는 받은 것을 기억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도움을 받아 올라선 뒤에 마치 자기 혼자 해낸 것처럼 구는 사람은 두 번 다시 귀인을 만나기 어렵다.
명리학(命理學)에서 귀인성(貴人星)이라는 것이 있다. 천을귀인(天乙貴人), 천덕귀인(天德貴人), 월덕귀인(月德貴人) 같은 것들이다. 사주에 귀인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귀인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귀인을 만날 수 있는 기운이 있다는 뜻이지,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귀인이 찾아온다는 뜻이 아니다. 사주의 귀인성은 일종의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행동이다. 사주에 귀인이 아무리 많아도, 스스로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그 귀인성은 발동하지 않는다. 반대로 사주에 귀인이 약해도, 본인이 충분한 가치를 갖추고 있으면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도움의 손길이 온다.
장자(莊子) 달생편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기성자라는 사람이 임금을 위해 투계, 즉 싸움닭을 기르는데, 열흘이 지나자 임금이 물었다. 닭이 다 준비됐느냐. 기성자가 답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허세를 부리고 제 기운만 믿고 있습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 물었더니 답이 같았다. 아직입니다. 다른 닭의 소리나 그림자만 봐도 반응합니다. 또 열흘이 지났다. 아직입니다. 눈빛이 사납고 기세가 넘칩니다. 마지막으로 열흘이 더 지나자 기성자가 말했다. 이제 거의 됐습니다. 다른 닭이 울어도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멀리서 보면 나무로 깎은 닭 같습니다. 그 덕(德)이 온전해져서, 다른 닭이 감히 맞서지 못하고 보기만 해도 돌아서 달아납니다. 呆若木鷄. 나무닭처럼 멍하니 서 있는 것, 그것이 진짜 경지다. 귀인이 찾는 후배도 이런 사람이다. 자기 실력을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이미 드러나는 사람. 허세 대신 깊이가 있는 사람. 소란 대신 고요가 있는 사람.
현대 기업의 세계에서도 이 원리는 똑같이 작동한다.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이 2010년 토드 콤스를 버크셔 해서웨이의 투자 매니저로 발탁했을 때, 콤스는 이미 자신의 헤지펀드에서 연평균 시장을 크게 상회하는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버핏이 한 것은 이미 검증된 사람에게 더 큰 무대를 열어준 것이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키워낸 것이 아니다. 2012년에 합류한 테드 웨슐러도 마찬가지였다. 버핏과의 점심 자선 경매에서 두 번이나 낙찰받은 뒤 발탁되었는데, 그 자체가 이미 버핏에 대한 존경과 배움에 대한 진심을 보여주는 행위였다.
달 자체는 빛을 내지 않는다. 태양의 빛을 받아 스스로를 밝힌다. 조건이 부족한 사람이 때로 귀인의 빛을 빌려야 평범함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빛을 빌리기 전에, 자신이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먹구름이 태양빛을 가리듯,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귀인의 빛도 닿지 않는다. 도덕경(道德經) 41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明道若昧 進道若退 夷道若纇.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고, 나아가는 도는 물러나는 것 같고, 평탄한 도는 울퉁불퉁한 것 같다. 귀인을 만나는 길도 이것과 닮아 있을지 모른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시간 속에서, 묵묵히 자신을 갈고닦는 사람. 그 시간이 길수록, 빛을 받았을 때 더 환하게 빛나는 법이다. 그 빛이 자기 것인지 빌린 것인지는, 어쩌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