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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아는 사람은 쉽게 말한다 – 사주를 아무에게나 물어보면 안 되는 이유

진짜 아는 사람은 쉽게 말한다. 명리학(命理學)에서도, 물리학에서도, 어떤 분야에서든 마찬가지다. 어떤 것을 깊이 이해한 사람은 그것을 상대방의 언어로 풀어줄 수 있다. 반대로, 대충 아는 사람은 전문 용어를 나열하고, 부적합한 비유를 덧붙이고, 말이 길어진다.

아인슈타인이 남긴 말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어떤 것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천재가 한 말이니 무게가 있다. 그런데 사실 그보다 2,500년 전에 노자(老子)가 먼저 같은 말을 했다. 도덕경(道德經) 70장, 吾言甚易知 甚易行. 나의 말은 매우 알기 쉽고 매우 행하기 쉽다. 도(道)라는 것이 그렇다. 진짜 깊은 이치일수록 말은 단순해진다.

최근에 인터넷 역학 커뮤니티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봤다. 어떤 여성이 자기 사주를 올리면서 직업을 계속할지 말지 물었다. 몸이 안 좋아서 고민이라고 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나름 진지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달린 댓글이 압권이었다. 을(乙)이 어쩌고, 경(庚)이 어쩌고, 미용실에서 갑은 긴 것이고 을은 굽은 것이라느니, 남자손님은 긴머리고 여자손님은 파마머리라느니, 공적 궤도니 사적 궤도니 하는 말이 줄줄이 이어졌다. 한참을 읽었는데 결론이 없다. 핵심을 짚는 문장이 단 하나도 없다. 설명은 길고도 길고 넘치는데 정작 그 여성이 알고 싶었던 것에 대한 답은 어디에도 없다.

여기서 두 가지가 보인다.

첫째, 그 댓글을 단 사람의 실력 문제다. 사주에 없는 글자를 끌어와서 설명하고, 미용실 비유를 장황하게 펼치는 것은 핵심을 모른다는 뜻이다. 진짜 아는 사람이라면 두세 문장이면 끝난다. 당신의 기운이 이쪽으로 빠지고 있어서 몸이 힘든 거다, 지금 운의 흐름이 이러니까 이 시기에는 이렇게 하는 게 낫다. 이 정도면 된다. 적천수(滴天髓)의 저자로 알려진 유백온(劉伯溫)은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일급 책사였다. 그가 남긴 명리학의 고전이 수백 년간 읽히는 이유가 있다. 핵심만 말했기 때문이다. 적천수라는 이름 자체가 하늘의 골수, 즉 가장 순수한 한 방울이라는 뜻이다. 한 방울이면 충분하다. 양동이째 쏟아부을 필요가 없다.

둘째,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왜 자기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인터넷 게시판에서 공짜로 물어보는가.

이것은 명리학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사주(四柱)라는 것은 자기 인생의 설계도와 같다. 직업을 계속할지, 그만둘지, 건강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이런 결정은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무게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익명의 게시판에 올려놓고 아무나 답해주기를 기다린다. 몸이 아프면 동네 약국에서 “뭐 좀 주세요” 하지 않고 병원에 가서 제대로 진단을 받는다. 법률 문제가 생기면 인터넷 댓글에서 법률 조언을 구하지 않고 변호사를 찾는다. 그런데 자기 운명에 대해서는 왜 그 기준이 느슨해지는 걸까.

그런 커뮤니티에 진짜 고수가 얼마나 되겠는가. 물론 실력자가 아예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확률의 문제다. 수백 명이 댓글을 다는 곳에서 진짜 깊이 있는 사람을 만날 확률은 높지 않다. 장자(莊子) 추수편(秋水篇)에 나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가을 장마에 강물이 불어 황하(黃河)의 신 하백(河伯)이 자기가 가장 크다고 뽐냈다가, 바다에 이르러 북해약(北海若)을 만나고는 부끄러워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말할 수 없고, 여름 벌레에게 얼음을 말할 수 없다. 井蛙不可以語於海 夏蟲不可以語於氷. 아는 것이 적을수록 자기가 아는 것의 범위를 모른다. 그래서 자신 있게 댓글을 단다.

더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누군가 댓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고 치자. 그러면 그 말을 따를 것인가, 따르지 않을 것인가. 따른다면 뭘 믿고 따르는 건가. 그 사람의 실력을 검증할 방법이 있는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인터넷에서 몇 줄 써준 것을 근거로 직업을 그만두거나 계속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인가. 반대로 따르지 않을 거라면 애초에 왜 물어본 건가. 읽고 나서 마음에 드는 답만 골라서 자기 확신을 강화하려는 것인가.

자기 인생의 결정권과 선택권은 자기에게 있다. 사주명리(四柱命理)는 그 결정을 돕는 좋은 도구다. 그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도구는 쓰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좋은 칼도 요리사가 쓰면 음식이 되고, 아무나 쥐면 다칠 수 있다. 사주 해석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사람에게 제대로 물어야 제대로 된 답이 나온다.

투자의 세계에서도 같은 현상이 반복된다. 주식 커뮤니티에서 “이 종목 사도 될까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답을 해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 답을 믿고 돈을 넣었다가 잃으면 누가 책임지는가. 워렌 버핏은 투자 원칙을 두 줄로 요약한다. 첫째, 돈을 잃지 마라. 둘째, 첫째 규칙을 잊지 마라. 자기 돈은 자기가 판단해서 움직여야 한다. 남의 말을 듣되 결정은 자기가 하고, 그 결정의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인생의 결정도 다르지 않다.

명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기준을 제안한다면 이것이다. 누군가의 사주 해석을 들었을 때, 듣고 나서 바로 이해가 되면 그 사람은 알고 있는 것이다. 듣고 나서 더 혼란스러워지면 그 사람이 모르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의 문제이지 듣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의학도 그렇다. 좋은 의사는 검사 결과를 줄줄이 읊으면서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라고 하지 않는다. 여기가 원인이니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끝낸다.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명리학도 다를 것이 없다. 진짜 고수라면 미용실 비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이 사주의 기운이 어디로 가고 있고, 그래서 지금 몸이 왜 그런 신호를 보내는지, 한두 마디면 끝나는 일이다.

노자가 말했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도덕경 56장이다. 물론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글을 쓰는 나도 모르는 사람이 된다. 다만 노자가 말하려 한 것은 분명하다. 진짜 아는 사람은 필요한 만큼만 말한다. 그리고 그 필요한 만큼의 말에는 값이 있다. 공짜로 얻은 조언에는 공짜만큼의 무게가 실린다. 자기 인생의 무게를 감당할 답을 원한다면, 그 무게에 걸맞은 곳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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