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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좋은 운의 시작, 반드시 버려야 할 세 가지

2026년, 운이 바뀌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무언가를 새로 얻은 게 아니라, 무언가를 버렸다는 것이다. 새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습관을 만들려 하지만, 정작 변화의 시작은 비우는 데 있다. 도덕경(道德經) 제48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배움을 하면 날로 더하고, 도를 행하면 날로 덜어낸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마침내 무위(無爲)에 이른다. 2026년이라는 시간이 어떤 의미를 가지려면, 먼저 세 가지를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낡은 관계를 버려라

사람들이 시간을 소모하는 가장 흔한 방식 중 하나는 이미 끝난 관계를 붙잡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매몰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라고 부른다. 이미 투자한 시간과 감정이 아까워서 관계를 끊지 못하는 현상이다. 2018년 포르투갈 미뉴대학교의 연구팀이 9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사람들은 이미 상당한 돈과 노력을 쏟아부은 관계일수록 그 관계가 불행해도 떠나지 못하는 경향을 보였다. 카네기멜론대학교의 크리스토퍼 올리볼라 교수는 이 현상의 원인을 낭비에 대한 혐오로 설명한다. 우리는 자신이 낭비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하고, 다른 사람이 낭비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래서 관계라는 정신적 계좌를 열어놓으면, 그것을 닫으려면 반드시 본전을 뽑아야 한다고 느낀다.

문제는 이 정신적 계좌가 영원히 닫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낡은 관계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대부분 자신의 존재 확인을 그 관계 안에서 하고 있다. 상대를 분석하고, 원망하고, 다시 기대하는 순환 속에서 일종의 생동감을 느낀다. 그런데 그 생동감은 진짜가 아니다.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와 같다. 바람이 불 때만 소리가 나고, 바람이 그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건강한 관계는 사실 좀 심심하다. 물처럼 담백하다. 노자가 말한 군자지교담여수(君子之交淡如水),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담백하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낡은 관계를 정리하고 나면 처음에는 허전하다. 그 허전함이 두려워서 사람들은 다시 옛 관계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 빈자리가 바로 새로운 인연이 들어올 공간이다. 자리를 비워야 새것이 채워진다. 그 허전함을 못 견뎌서, 헤어져야 하는데 헤어지지 않고, 이 관계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인연이 오길 기다리는 사람을 많이 봤다. 환승하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은 좋은 인연을 만나기 어렵다.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손절을 못 하는 사람은 새로운 기회를 잡지 못한다. 포트폴리오든 인간관계든, 원칙은 같다.

자기비하를 버려라

자기비하는 기묘한 방어기제다. 스스로를 낮추면 기대치가 낮아지고, 기대치가 낮아지면 실패해도 덜 아프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비하를 습관처럼 달고 산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이것은 자기 보호가 아니라 자기 축소다.

텍사스대학교의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 교수는 20년 넘게 자기연민(Self-Compassion)을 연구해왔다. 그녀의 2009년 연구에 따르면, 2,18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기연민은 자존감보다 더 안정적인 자기 가치감을 제공했으며, 특정 결과에 덜 의존적이었다. 자존감은 성공하면 올라가고 실패하면 무너지는 불안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자기연민은 실패의 순간에도 자신을 돌보는 능력을 유지하게 해준다. 더 주목할 것은, 자기연민이 높은 사람이 목표를 더 높게 설정한다는 연구 결과다. 네프의 연구에서 자기연민은 건강한 완벽주의와는 관계가 없었지만, 수행 기준 자체를 낮추지도 않았다. 자기연민이 높은 사람들은 목표를 세우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목표에 미치지 못했을 때 덜 무너졌다.

도교에서는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 도덕경 제33장, 知人者智 自知者明. 남을 아는 것은 지혜지만, 자신을 아는 것은 밝음이다. 자기비하는 자신을 아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약점만 확대해서 보는 것이다. 진짜 자기 인식은 자신이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동시에 보는 것이다. 무엇이든 다 잘해야 자신감이 생기는 게 아니다.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면,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자기비하가 습관이 된 사람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성공 경험이 아니다. 자기비하의 진짜 원인을 좁혀보는 것이다. 외모 때문인지, 경제력 때문인지, 능력 부족 때문인지. 그 구체적인 지점을 찾아야 해법도 구체적이 된다. 모든 것이 부족하다는 막연한 느낌은 대부분 착각이다. 실제로는 한두 가지 구체적인 불안이 전체를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버려라

사람은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편도체(amygdala)와 시상하부(hypothalamus)가 미지의 상황에서 위협 반응을 일으키고,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시켜 시야를 좁힌다. 이것이 이분법적 사고와 충동적 행동을 만든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불확실성에 대한 불내성(Intolerance of Uncertainty)이라 부른다. 캐나다의 미셸 뒤가(Michel Dugas) 교수 연구팀은 불확실성에 대한 불내성이 범불안장애의 핵심 요인이라는 것을 밝혀냈고, 이를 기반으로 불확실성 내성을 키우는 치료법을 개발해 실제 임상에서 사용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불확실성을 두려움이 아니라 도전으로 보는 사람들이 더 잘 산다는 연구 결과다. 매기 잭슨(Maggie Jackson)의 저서 Uncertain: The Wisdom and Wonder of Being Unsure에 따르면,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학습 능력 향상, 더 나은 의사결정, 위기 대응 능력, 정신건강 개선, 그리고 더 따뜻한 대인관계와 연결되어 있다. 캐롤 드웩(Carol Dweck) 교수의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 연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불확실성이 주는 도전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회복탄력성과 적응력이 더 높다.

도교는 처음부터 불확실성을 전제로 세계를 바라봤다. 장자의 소요유(逍遙遊)가 말하는 것은 결국 정해진 길 없이 노니는 것이다. 목적지를 모르면서도 나아가는 것. 그것이 소요다. 현대인들은 안전한 곳에서 안전한 길을 따라 안전한 목적지로 가려 한다. 그런데 인생에서 의미 있는 것들, 사랑, 기회, 성장, 부, 이런 것들은 전부 미지의 영역에 숨어 있다. 알려진 길만 반복하면, 알려진 결과만 반복된다.

투자에서도 이것은 자명하다. 모든 사람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자산은 이미 비싸다. 진짜 수익은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는 곳에서 나온다. 워런 버핏이 말한 것처럼, 다른 사람이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지라는 것도 결국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라는 뜻이다.

2013년 Psychological Science에 실린 연구에서는 단 15분의 마음챙김 명상만으로도 참가자의 77%가 매몰비용을 포기할 수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내려놓는 것은 의지의 문제만이 아니다. 연습의 문제이기도 하다.

세 가지를 버리라고 했지만, 결국 버려야 할 것은 하나다. 낡은 자기 자신이다. 낡은 관계를 붙잡는 자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자신, 모르는 것 앞에서 얼어붙는 자신. 도덕경 제16장은 이렇게 말한다. 致虛極 守靜篤. 비움을 극한까지 이르게 하고, 고요함을 독실하게 지켜라. 비운 만큼 채워진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당신이 지금 가장 놓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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