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디폴트값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 명리학 대운과 노력의 관계
인생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은 디폴트가 아니다. 명리학(命理學)에서는 용희신(用喜神) 대운(大運)의 시기에 기운이 순조로워 적은 노력으로도 큰 결과를 얻기 쉽다고 본다. 반대로 기구신(忌仇神)의 시기에는 아무리 힘을 써도 일이 뒤틀리는 흐름이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단순한 사실을 평생 모른 채 살아간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 58장에서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이라 했다. 재앙 속에 복이 기대어 있고, 복 속에 재앙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 이 구절을 단순히 “새옹지마”쯤으로 읽어버리면 노자의 깊이를 놓치게 된다. 노자가 말하려 한 것은 복과 화의 순환 그 자체가 아니라, 복이 화로 전환되는 그 메커니즘이다. 좋은 것이 왜 나쁜 것이 되는가. 거기에 사람의 인식 문제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용희신(用喜神) 대운(大運)을 타고 나는 사람이 있다.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고, 적당히 노력하면 결과가 따라오고, 경쟁에서도 이상하게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이런 사람에게 인생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정상이다. 문제는 이 “정상”이 대운(大運)이라는 시간의 에너지가 만들어낸 일시적 조건이라는 점을 모른다는 데 있다. 마치 태어나서부터 순풍만 받은 배가, 바람이라는 것의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NBA의 데릭 로즈(Derrick Rose)가 그런 사례다. 2011년, 22살의 나이로 최연소 MVP를 수상했다. 시카고 불스를 이끌고 경기당 25점을 쏟아부었다. 그에게 농구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듬해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그 뒤 복귀와 부상을 반복하면서, 경기당 득점은 17점대까지 떨어졌다. 기량이 줄어든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로즈는 인터뷰에서 “예전처럼 공격적으로 뛰는 게 두렵다”고 말한 적이 있다. 몸이 회복되어도 마음이 따라가지 못했다. 내 뜻대로 되던 시절이 만들어놓은 기준이, 뜻대로 되지 않는 시절에는 족쇄가 된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콜로넬 샌더스(Colonel Sanders)는 60대 중반까지 뚜렷한 성공 없이 살았다. 군 복무, 철도 노동자, 주유소 운영, 식당 경영까지 이것저것 했지만 번번이 무너졌다. 사회보장 연금을 처음 받았을 때 그 금액은 105달러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거기서 멈추었을 것이다. 그런데 샌더스는 그 돈을 들고 자기 치킨 레시피를 팔러 다녔다. 1,000번 이상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KFC는 그렇게 태어났다. 그에게 인생의 디폴트는 처음부터 “안 되는 것”이었기에, 안 되는 것에 대한 내성이 있었다. 실패가 충격이 아니라 일상이었으니까.
제임스 다이슨(James Dyson)도 마찬가지다. 날개 없는 선풍기와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로 유명한 그는, 첫 제품을 완성하기까지 5,127개의 시제품을 만들었다. 5년이 걸렸다. 영국에서는 아무도 그의 제품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일본 시장에서 먼저 성공한 뒤에야 자국에서 인정받았다. 다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그것들은 실패가 아니라 수업이었다.” 5,127번의 실패를 수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실패가 디폴트인 환경에서 단련된 사람뿐이다.
명리학(命理學)의 관점에서 보면, 이른 시기에 좋은 대운(大運)을 만나는 것이 반드시 좋은 명(命)은 아니다. 이유는 단순하다. 용희신(用喜神)의 기운이 지나가면 반드시 기구신(忌仇神)의 기운이 온다. 순풍 다음에는 역풍이 불게 되어 있다. 10대에서 30대까지 좋은 대운(大運)을 탄 사람이 40대에 기구신(忌仇神) 대운(大運)을 만나면, 그 충격은 처음부터 고생한 사람보다 훨씬 크다. 내 뜻대로 되는 삶이 정상이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은 “비정상”이다. 비정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정상을 유지하는 것보다 몇 배나 어려운 일이다.
도덕경(道德經) 76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強.”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딱딱하고 강해진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노자의 역설이다. 일찍 성공한 사람은 딱딱해지기 쉽다. 세상이 내 뜻대로 돌아간다는 확신이 유연성을 빼앗기 때문이다. 반면 오랫동안 치열하게 경쟁하고, 실패를 반복한 사람은 부드러워진다. 부드럽다는 것은 약하다는 뜻이 아니다. 상황에 맞게 자신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투자의 세계에서도 이 원리는 정확히 적용된다. 2020년에서 2021년 사이, 이른바 “동학개미운동” 시기에 주식 시장에 입문한 사람들이 있다. 코스피가 1,400대에서 3,300대까지 치솟던 시기였다. 아무 종목이나 사도 올랐다. 이들에게 주식 투자란 사면 오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2022년, 금리 인상과 함께 시장이 꺾이자 그 많던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이탈했다. 반면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투자자들은 2022년의 하락을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은 시장이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뼈로 알고 있었으니까.
노력은 당연히 중요하다. 다만 노력이 결과로 직결되는 시기가 있고, 노력해도 결과가 따라오지 않는 시기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명리학(命理學)에서 대운(大運)을 읽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언제 밀어붙여야 하고 언제 물러서야 하는지, 그 시기의 기운을 읽는 것. 노력 너머에 존재하는 무언가. 그것을 동양에서는 천시(天時)라 불렀고, 서양에서는 타이밍(Timing)이라 불렀다.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것을 가리킨다.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이 사실을 감각으로 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안다.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되는 시기를 겪어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이 좋을 때 교만하지 않고, 운이 나쁠 때 무너지지 않는다. 장자(莊子)가 말한 소요유(逍遙遊)의 경지가 어쩌면 이런 것일 수도 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타고, 바람이 멈추면 내려앉되, 어느 쪽이든 자유로운 상태. 다만 그 자유로움에 이르는 길이, 순탄한 삶에서 출발하는 것인지, 아니면 거친 삶에서 출발하는 것인지는 각자가 생각해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