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할머니의 예언과 사도인, 중국 민간 예언의 기묘한 적중
중국에는 아직도 설명할 수 없는 예언자들이 있다. 하북성 보정 지역에 전해지는 미친 할머니 이야기가 그렇고, 수백 년간 중국 전역을 떠돈 사도인(赊刀人)의 이야기가 그렇다. 이들의 공통점은, 당대에는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말이 하나둘 들어맞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북성 보정 지역 고양현에 살았다는 미친 할머니는 1930~40년대 이 일대를 떠돌았다. 작은 보따리 하나를 등에 지고, 향을 챙겨 다녔다. 밥을 얻어먹을 때도 먼저 향 한 대를 달라고 했고, 사당이 보이면 안을 깨끗이 쓸고 향을 올렸다. 손에는 늘 지팡이 하나가 들려 있었고, 걸으면서 알 수 없는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은 그 노래를 순구류(顺口溜), 우리 말로 하면 타령 정도 되는 것으로 들었다. 당시에는 아무도 그 뜻을 몰랐다. 그래서 미친 할머니라 불렀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단순히 이상한 노래만 부른 게 아니었다. 한번은 길에서 동네 건달이 욕설을 퍼부었다. 할머니는 “나를 욕하지 마라, 내일이면 네가 도랑에서 치여 죽을 것이다”라고 했다. 다음 날 그 건달은 진짜 길가 배수로에서 사고로 죽었다. 또 몇몇 나쁜 소년들이 사당에서 향을 피우는 할머니의 뒤통수를 흙덩이로 때렸다. 할머니는 쓰러지면서도 “때린 놈들, 언젠가 총에 맞아 죽을 것이다”라고 했다. 나중에 그 소년들은 하나같이 일본군에게 총살당하거나, 문화대혁명 때 난사에 맞아 죽었다고 전해진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할머니가 부르던 타령의 뜻을 하나씩 깨닫기 시작했다. “돈을 쓰는데 구멍이 없다, 담배를 피우는데 대통이 없다, 신발을 신는데 앞코가 없다.” 과거에는 구멍 뚫린 동전으로 살림을 했고, 담뱃대에 잎담배를 넣어 피웠으며, 집에서 만든 신발에는 반드시 앞코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지폐에는 구멍이 없고, 종이 담배에는 대통이 없으며, 온갖 모양의 신발에 앞코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졌다. “건물 위에 건물이 있고, 등불이 아래를 향한다”는 타령도 마찬가지다. 당시 사람들은 기와집에서 기름등을 켜고 살았다. 지금은 고층 아파트에서 천장에 박힌 전등이 아래를 비춘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부린다”는 것도, “아이를 부모처럼 떠받든다”는 것도 전부 들어맞았다.
하지만 이 타령들 가운데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이 있다. “뼈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이룬다.” “거친 체로 치고, 가는 체로 또 친다.” “열 사람 중 아홉이 죽고, 남은 한 사람이 신선이 된다.” “착한 사람은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도 살고, 나쁜 사람은 쥐구멍에 숨어도 도망치지 못한다.” 이 마지막 타령이 묘하게도 명나라 유백온(劉伯溫)이 남겼다는 태백산비문(太白山碑文)의 예언과 겹친다. “가난한 자 만 명 중 천 명이 남고, 부자 만 명 중 두셋이 남는다.” 한국의 격암유록(格庵遺錄)에도 “열 집에 하나 남기 어렵다”는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지역의 예언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은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기묘한 구석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이야기를 보태자면, 중국에는 사도인(赊刀人)이라는 존재가 있다. 글자 그대로 풀면 칼을 외상으로 파는 사람이다. 이들은 식칼이나 가위, 낫 같은 생활 도구를 가지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건네주고 돈을 받지 않는다. 대신 장부에 사간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두고, 짧은 말 한마디를 남긴다. 그 말이 이루어지는 날에 돌아와서 돈을 받겠다는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으면 공짜다.
사도인의 기원은 송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복매(卜賣)라고 불렸는데, 점을 쳐서 돈을 받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청나라 때 기록이 구체적으로 남기 시작했다. 함풍 신유년, 절강성 봉화현에 작은 배를 타고 온 몇 사람이 노점을 펴고 칼을 팔았다. 당시 쌀값은 한 되에 80문이었다. 이들은 돈을 받지 않으며 한마디를 남겼다. “쌀이 한 되에 18문이 되면 돌아와 돈을 받겠다.” 사람들은 당연히 비웃었다. 80문짜리 쌀이 18문이 되다니. 그런데 18년 뒤 광서 원년, 황제가 민생 안정을 위해 쌀 가격을 조정했고, 실제로 한 되에 18문이 되었다. 영파부 관원이 이들을 잡으려 했으나,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청나라 서적에는 사도인에 관한 흥미로운 해석이 실려 있다. 도(刀)는 도(道)와 통한다는 것이다. 칼을 외상으로 판다는 것은 도(道)를 빌려준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민간에서는 사도인을 도가(道家)에 속하는 사람들로, 귀곡자(鬼谷子)의 문하 제자들이라고 전한다. 기문둔갑(奇門遁甲)에 정통해 미래를 읽고, 세상의 변화를 알려주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전국시대 귀곡자는 손빈, 방연, 소진, 장의 같은 기라성 같은 제자들을 배출한 인물이다. 그의 문하에서 음양의 이치와 천문 지리를 배운 이들이 대를 이어 세간을 떠돌며 조용히 세상의 변화를 예고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21세기에도 사도인은 나타났다. 2019년 후베이성 황강(黃岡)에 사도인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황강이 커다란 감옥이 되면 그때 돈을 받으러 오겠다.” 이듬해 코로나가 터졌다. 우한이 봉쇄되고, 황강도 봉쇄되었다.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시 안에 갇혔다. 2020년 10월에는 하남성 신현에 또 사도인이 나타났다. 식칼 두 자루를 138위안에 내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년 10월에 돈을 받으러 오겠다. 그때 살아 있으면 돈을 내고, 사람이 없으면 그만이다.” 2021년 7월, 하남성 정주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공식 사망자 수도 상당했지만, 실제 사상자는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직도 떠돈다.
2021년 7월에는 또 다른 사도인 목격담이 올라왔다. 한 인터넷 사용자가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올렸다. 수십 년 만에 칼과 가위를 파는 행상을 만났는데, 예전에는 짐을 짊어지고 다녔지만 이번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고 했다. 그리고 남긴 말은 이것이었다. “내년 8월에 눈이 내리면 돌아와 돈을 받겠다. 눈이 오지 않으면 돈은 필요 없다.” 한여름 8월에 눈이 내린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직 아무도 확인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기후 재앙의 징조라 해석하고, 어떤 사람은 핵겨울 같은 극단적 상황을 암시한다고 해석한다.
옥수수 이야기는 사도인의 예언 가운데 비교적 잘 알려진 것이다. “옥수수가 한 근에 1위안이 되면 돌아와 돈을 받겠다.” 누구도 그런 날이 올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옥수수는 한 근에 몇 푼에 불과했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나 실제로 옥수수 가격이 한 근에 1위안에 도달했고, 사도인은 돌아와 외상값 10위안을 받아갔다고 전해진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예언도 남아 있다. “거리마다 빈 건물이 가득한데 사는 사람이 없을 때 돈을 받으러 오겠다.” 그리고 “세 사람이 만두 하나를 놓고 다투어 먹을 때 돌아오겠다.”
미친 할머니의 타령과 사도인의 예언 사이에는 묘한 공명이 있다. 거친 체로 치고 가는 체로 또 친다는 것과, 살아 있으면 돈을 내고 없으면 그만이라는 것은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진짜 미래를 보았는지, 아니면 시대의 흐름을 읽는 데 탁월했던 것인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과거의 예언들이 하나둘 현실이 되어갈 때마다 아직 남아 있는 예언들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사도인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칼을 갈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돈을 받으러 올 채비를 하고 있을까. 거리에 빈 건물이 늘어가는 요즘, 그 질문이 가벼운 호기심만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조금 불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