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이 와인 다섯 잔을 마시고 털어놓은 이야기들이 시사하는 것들
2026년 2월 3일 밤, Cisco AI Summit에서 젠슨 황은 2주간의 아시아 출장에서 돌아온 직후, 시차에 찌들린 채로 시스코 CEO 척 로빈스와 마주 앉았다. 새벽 1시부터 깨어 있었다는 그는 와인이 나오자 거침없이 마셔댔고, 다섯 잔째에 이르러서는 평소 공식 석상에서는 꺼내지 않을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라이브 스트리밍 중이라는 사실도, 수천 명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밤의 대화가 흥미로운 까닭은, 시가총액 4조 5천억 달러짜리 회사의 수장이 취기를 빌려 내놓은 발언들이 현재 기술 산업이 처한 구조적 전환의 윤곽을 꽤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컴퓨팅이 근본부터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고 했다. 과장처럼 들릴 수 있으나,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들여다보면 그 말이 단순한 수사가 아님을 알게 된다. 기존 컴퓨팅은 사람이 한 줄 한 줄 코드를 짜서 기계에 지시하는 방식이었다. 포트란(FORTRAN)에서 C++까지, 언어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컴퓨터에게 원하는 결과를 말하면 기계가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젠슨 황의 표현을 빌리면, 명시적 프로그래밍(Explicit Programming)에서 암시적 프로그래밍(Implicit Programming)으로의 전환이다. 이것은 단순히 코딩 방식이 바뀌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처리, 저장, 네트워킹, 보안이라는 컴퓨팅의 모든 기둥이 동시에 재편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가 이 자리에서 소개한 Vera Rubin 플랫폼이 그 실체를 보여준다. 2026년 1월 CES에서 공개된 이 차세대 AI 플랫폼은 6개의 새로운 칩을 하나의 랙 단위 슈퍼컴퓨터로 통합한 것으로, 이전 세대인 블랙웰(Blackwell) 대비 추론(Inference) 토큰 비용을 10분의 1로 낮추고, 전문가 혼합 모델(Mixture-of-Experts) 학습에 필요한 GPU를 4분의 1로 줄인다. Rubin GPU 하나에 3,360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되어 있고, HBM4 메모리로 GPU당 288GB 용량에 22TB/s의 대역폭을 제공한다. 72개의 Rubin GPU와 36개의 Vera CPU를 케이블 없이 하나의 랙에 담은 NVL72 시스템은 NVFP4 기준 3.6엑사플롭스(ExaFLOPS)의 추론 성능을 낸다. Microsoft는 이미 차세대 Fairwater AI 슈퍼팩토리에 이 시스템을 배치하겠다고 발표했고, AWS, Google Cloud, CoreWeave도 2026년 하반기부터 Rubin 기반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 정도 규모의 하드웨어 전환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의 말처럼 단순한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컴퓨팅의 재창조에 가깝다.
그날 밤 가장 귀를 솔깃하게 만든 발언은 코딩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코드 작성이 본질적으로 타이핑일 뿐이며, 타이핑은 이미 값싼 상품이 되었다고 했다. 이 말은 맥락 없이 떼어놓으면 오해를 살 수 있으나, 그가 진짜 하려던 이야기의 방향은 다른 데 있었다. 세상에서 정말 가치 있고 까다로운 문제들은 정해진 알고리즘으로 풀 수 없다는 것, 답이 늘 맥락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그래서 미리 짜놓은 코드보다 상황을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지능이 필요하다는 것이 요지였다. 소프트웨어가 미리 녹음된 음악(Pre-recorded)이라면, AI는 즉흥 연주(Generative)에 가깝다는 비유다.
공교롭게도 그가 이 발언을 한 바로 그 주에, Anthropic이 Claude Cowork의 새로운 플러그인을 공개하면서 글로벌 소프트웨어 주식이 폭락했다. Bloomberg에 따르면 하루 만에 2,850억 달러가 증발했고, Thomson Reuters는 15.8% 하락해 사상 최대 일일 낙폭을 기록했다. S&P 500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지수는 8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2026년 들어 약 20% 빠졌다. 법률, 금융, 마케팅 영역에서 AI가 기존 SaaS(Software-as-a-Service) 기업들의 핵심 업무를 대체할 수 있다는 공포가 시장을 덮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젠슨 황은 이 폭락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비논리적인 일이라고 했다. 소프트웨어는 도구이고, AI가 도구 산업 자체를 대체한다는 생각은 틀렸다는 것이다. 시간이 증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목에서 그의 시각이 드러난다. 그는 AI를 더 나은 소프트웨어 도구가 아니라, 증강된 노동력(Augmented Labor)으로 본다. IT 산업의 총 규모가 약 1조 달러인데, 세계 경제 전체는 100조 달러라는 것. AI가 소프트웨어를 넘어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는 단계로 진입하면, 기술 기업들이 처음으로 그 100조 달러 전체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자율주행차를 예로 들었는데, 자율주행차 자체는 자동차이지만 디지털 운전기사는 평생에 걸친 노동 서비스라는 것이다. 자동차 가격보다 그 노동의 가치가 훨씬 크다. 이것이 도구를 만드는 산업에서 노동을 만드는 산업으로의 전환이며, 젠슨 황이 물리적 AI(Physical AI)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이다.
하지만 현실의 기업 현장은 아직 그 미래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 2025년 8월 MIT의 NANDA 프로젝트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용 AI 파일럿 프로그램의 95%가 측정 가능한 수익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300건 이상의 공개 AI 도입 사례와 153명의 경영진 설문을 분석한 이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300억에서 400억 달러가 기업 AI에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5%만이 실질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PwC가 2026년 다보스에서 발표한 조사에서도 CEO의 56%가 AI 도입에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문제는 AI 모델의 성능이 아니라 도입 방식에 있었다. 기존 업무 흐름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하는 도구, 학습하지 못하는 정적인 시스템, 잘못된 영역에 쏟아부은 예산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젠슨 황은 이 문제를 그의 방식으로 풀어놓았다. 새 기술 초기에 스프레드시트로 ROI를 계산하려 들지 말라고 했다. Fortune지는 그의 접근법을 1960년대 반문화와 현대 육아법의 결합이라고 묘사했는데, 핵심은 백화제방(百花齊放), 즉 먼저 백 송이 꽃을 피우고 그 다음에 가지치기하라는 것이다. NVIDIA 안에서도 AI 프로젝트 수가 통제 불능이라고 인정하면서, 그게 좋다고 했다. 새 프로젝트 제안에 대한 첫 반응은 예스이고, 증명하라고 하지 않는다고. 아이들에게 삶을 탐험하게 하듯 프로젝트를 키우되, 적절한 시점에 판단으로 가지를 친다는 것이다. 혁신은 조기에 통제되면 죽는다는 확신이 깔려 있다.
이 말은 단순한 경영 철학이 아니라, NVIDIA가 실제로 걸어온 길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그는 12~13년 전 AlexNet 이야기를 꺼냈다. 두 명의 젊은 엔지니어가 GPU 몇 개로 수십 년간 축적된 컴퓨터 비전 알고리즘을 뛰어넘었던 순간이다. 대부분의 어려운 문제는 정교한 계획이 아니라 직관과 지혜로 풀린다고 했다. 바로 전날 Ilya Sutskever와 Alex Krizhevsky를 만났다고 하면서, 그때의 돌파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회고했다. NVIDIA가 GPU를 단순한 그래픽 처리 장치에서 AI 연산의 핵심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도, 초기에 그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맥락이다.
그날 밤의 또 다른 주목할 발언은 지능의 풍요(Abundance of Intelligence)에 대한 것이었다. AI가 만들어내는 것은 더 빠른 계산이 아니라 지능 자체의 풍요라는 것. 기존에 1년이 걸리던 작업을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면, 비용이 급감하는 정도가 아니라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바뀐다고 했다. 무어의 법칙(Moore’s Law)조차 너무 느리다며, 달팽이 같다고 했다. NVIDIA는 10년 만에 백만 배 성능 향상을 목표로 한다고. 뉴욕까지 1초 만에 갈 수 있다면 여행이라는 개념 자체가 달라지듯, AI의 속도가 충분히 빨라지면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의 종류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그는 한 가지 전환을 더 짚었다. 사람이 AI를 감독하는 구조(Human-in-the-Loop)가 아니라, AI가 사람의 작업에 개입하는 구조(AI-in-the-Loop)로 바뀔 것이라고. 미래에는 직원들이 자신의 AI를 회사에 가져올 것이고,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물을 수 있는 질문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소프트웨어 주식 폭락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 MIT 보고서가 지적한 것처럼 직원들의 90%가 이미 회사 공식 도구가 아닌 개인 AI를 업무에 쓰고 있고, 이 그림자 AI(Shadow AI) 경제가 기업 AI 도입보다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젠슨 황이 말한 미래는 이미 통제되지 않는 형태로 진행 중인 셈이다.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간결했다. AI를 쓰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빼앗기지, AI에게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고. 첫 번째가 될 필요는 없지만, 마지막은 되지 말라고. 마지막이 되면 도태된다고. 와인 다섯 잔의 힘을 빌린 이 말이 허풍인지 통찰인지는, 아마 앞으로 2~3년 안에 상당 부분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그가 술기운에 기대어 꺼낸 이야기들이, 일주일 사이에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1조 달러 가까운 시가총액을 증발시킨 현실과 정확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은,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