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무너뜨리는 혼인 관계, 능력과 권한의 불일치가 만드는 비극
가정이 무너지는 데는 외부의 적이 필요하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내부에서 스스로 무너진다. 한국의 2023년 이혼 통계를 보면 연간 9만 2천 건의 이혼이 발생했고, 이혼 사유로 가장 많이 기재된 것은 성격 차이였지만, 실제로는 경제 문제와 가치관 충돌이 그 이면에 깔려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서울가정법원에서 이혼 소송 중인 부부 12명을 심층 면접한 연구에서 도출된 이혼 과정의 핵심 범주는 흥미롭게도 자존감 손상이었다. 갈등이 발생하고, 자존감이 상하고, 무시가 이어지고, 관계가 단절되는 순서. 그런데 이 자존감 손상이라는 것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뿌리에는 능력과 권한의 불일치라는 문제가 놓여 있다.

조직을 운영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권한을 주면 조직이 망한다. 기업에서는 이것이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난다.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교체되고, 의사결정이 잘못되면 시장이 즉시 심판한다. 그런데 가정이라는 조직에서는 이 피드백 루프가 작동하지 않는다. 능력과 무관하게 발언권이 배분되고, 역량과 상관없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며, 그 결과가 10년, 20년 뒤에야 드러나기 때문이다.
1999년 코넬대학교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가 발표한 연구가 있다. 이른바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 특정 분야에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논리, 문법, 유머 테스트에서 하위 25%에 해당하는 참가자들이 스스로를 상위 62% 수준으로 평가했다. 이 효과의 핵심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할 능력조차 부족하다는 점이다. 자기 인식을 위한 최소한의 역량 자체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것이 가정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발현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유 체계가 혼란스러운 사람이 가정의 의사결정권을 쥐면, 결정의 결과는 가족 전체가 떠안는다. 논리적 정합성이 부족한 사람이 오늘은 이렇게, 내일은 저렇게 방향을 바꾸면, 가족 구성원들은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 놓이게 된다. 아이들은 특히 이런 환경에 취약하다. 일관성 없는 규칙, 감정에 따라 변하는 기준, 논리적 설명 없이 내려지는 명령.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건강한 판단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은 굳이 연구를 인용하지 않아도 상식에 속한다.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재정권을 쥐는 문제는 더 직접적이다. 돈을 번다는 것은 단순히 노동의 대가를 받는 행위가 아니다. 시장의 논리를 이해하고, 자원의 희소성을 체감하고, 리스크와 보상의 관계를 몸으로 아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겪지 않은 사람이 재정을 관리하면, 지출의 우선순위가 뒤틀리고, 저축과 투자의 개념이 왜곡되며, 결국 가계 전체의 재정 건전성이 무너진다. 곳간에서 인심 나고, 빈 곳간에서 부부 싸움 난다는 옛말은 단순한 속담이 아니라 수천 년간 반복된 가정 파탄의 패턴을 요약한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이혼 통계에서 경제 문제를 직접적 이혼 사유로 기재한 비율은 10% 수준이지만, 성격 차이로 기재된 상당수가 경제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단시각적인 사람이 집안의 방향을 설정하려고 할 때의 문제는 시간이 지나야 드러난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부동산을 살 때, 아이의 학교를 정할 때, 노후를 준비할 때, 이 모든 결정은 5년, 10년, 때로는 30년 뒤의 결과를 감안해야 한다. 눈앞의 편의만을 좇아 결정을 내리는 사람에게 이런 장기적 판단을 맡기면, 가정은 늘 뒷북을 치게 된다. 부동산 상승기에 팔고, 하락기에 사고, 아이의 진로를 유행에 따라 바꾸고, 노후 자금을 단기 소비에 탕진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교육을 모르는 사람이 매일 자녀 교육을 맡는 문제는 아마도 이 모든 것 중 가장 비가역적인 결과를 낳는다. 아이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에드먼턴 가족 네트워크(Edmonton Family Network)의 분석에 따르면, 양육에서도 더닝-크루거 효과가 그대로 나타난다. 자신이 탁월한 부모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가장 문제가 많은 양육을 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고, 정작 아이를 잘 키우는 부모는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교육에 대한 체계적 이해 없이 자신의 경험과 감정만으로 아이를 가르치는 것은, 의학을 모르는 사람이 매일 환자를 진료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도덕경 제33장에 知人者智 自知者明이라는 구절이 있다. 남을 아는 것은 지혜이지만, 자신을 아는 것은 밝음이라는 뜻이다.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비극은 이 자기 인식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아는 것. 그것이 가정을 유지하는 데 있어 사랑보다 더 근본적인 조건일 수 있다. 사랑이 넘치는데 가정이 무너지는 경우는 드물지 않지만, 자기 인식이 정확한 두 사람이 만든 가정이 무너지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문제는 이런 구조적 불일치가 결혼 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애 기간에는 감정이 판단을 가리고, 결혼 초기에는 서로에 대한 기대가 현실을 덮는다. 이 불일치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시점은 보통 자녀가 태어나고, 경제적 압박이 시작되고, 삶의 방향에 대한 의사결정이 본격적으로 필요해지는 때다. 그때가 되면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지점을 지나 있는 경우가 많다.
조직에는 적재적소라는 말이 있다. 맞는 사람을 맞는 자리에 두는 것. 가정도 조직이다. 다만 해고가 없고, 인사 이동이 없으며, 실적 평가도 없는 조직이다. 그래서 잘못된 배치가 수십 년간 유지되고, 그 대가를 가장 먼저 치르는 것은 언제나 아이들이다. 가정을 망가뜨리는 것은 외도나 폭력 같은 극적인 사건만이 아니다. 조용하고 느리게, 능력 없는 사람이 권한을 쥔 채 매일매일 내리는 잘못된 결정들. 그것이 쌓여서 어느 날 가정이라는 건물 전체를 무너뜨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