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혁신: 심신상응을 통한 자기 발견
생각을 바꾸는 것이 가장 높은 지혜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생각이란 뇌에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상념이다. 감각 기관이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고, 기억이 그것과 뒤섞이면서 신경망이 동시에 작동한다.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피부로 느낀 것이 신호가 되어 뇌로 전달되고, 거기서 의식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생각은 허공에서 튀어나오는 게 아니다.

도가에서는 이것을 심신상응이라 했다. 몸과 마음이 서로 응한다는 뜻이다. 외부의 자극이 내부의 기억과 만나 하나의 감정을 형성한다. 이 과정은 자동으로 일어난다. 통제할 수 없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떠오른 생각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여기서 사람의 삶이 갈린다.
떠오른 생각을 있는 그대로 두면 그것은 지나간다. 구름이 하늘을 지나가듯이.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을 붙잡는다. 대항하고, 평가하고, 억누르고, 거부하고, 부정한다. 그러면 생각이 굳어진다. 감정이 된다. 감정이 반복되면 성격이 된다. 성격이 굳으면 운명이 된다.
수많은 업은 바로 여기서 만들어진다. 자기 생각에 갇혀서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이 곧 진실이라고 믿는 순간, 그것은 감옥이 된다. 억울해하고, 분노하고, 원망한다. 그 고통 속에서 천 년을 벗어나지 못한다. 도교에서 말하는 삼시충이 바로 이것이다. 자기 안의 집착이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죽어서도 풀리지 않는다. 풀 수가 없다. 자기가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느 어머니가 있었다. 딸이 학교를 거부했다. 집에서 쉬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무너졌다. 분노, 불안, 두려움, 원망, 억울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어머니는 그 감정들을 억누르지 않았다. 그냥 흘러가게 두었다. 감정이 충분히 표출되고 나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가라앉고 나서야 비로소 다음을 생각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일이 있었다. 누군가가 SNS에 글을 올렸다. 댓글이 달렸다. 포용도 능력이라는 내용이었다. 글을 쓴 사람은 화가 났다. 자기를 가르치려 든다고 느꼈다. 잠시 후 생각을 바꿨다. 어쩌면 그 사람은 자기를 인정해준 것일 수도 있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그것이 수행이다.
무언가를 보고, 듣고, 느꼈을 때 바로 사실이라고 단정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일에는 최소한 세 가지 버전이 있다. 내가 이해한 것, 상대가 말한 것, 실제로 일어난 것. 남이 말한 것이 반드시 진실은 아니다. 내가 본 것과 들은 것도 전부가 아니다. 편을 가르거나 결론을 내리기 전에 시간을 두고 더 보고 더 듣고 더 생각하는 것이 낫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많은 사람들이 무너졌다. 그런데 그 와중에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본 것이다.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은 그 시기에 반도체 투자를 오히려 늘렸다. 결과는 알려진 대로다. 상황은 같았다. 해석이 달랐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이 아니다. 현실을 외면하라는 말도 아니다. 하나의 시각에 갇히지 말라는 뜻이다. 막다른 골목처럼 보이는 곳에서 다른 문을 찾는 것이다. 문이 없으면 창문이라도. 창문이 없으면 천장이라도.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방법은 반드시 어려움보다 많다고 믿는 사람이 있고, 이미 끝났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둘 다 아직 결과를 모른다. 그런데 전자는 움직이고 후자는 멈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