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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심장을 멈추는 과학적 이유 – 컬럼비아대 혈관 손상 연구와 도덕경 26장의 고요함

요즘 사람들이 유난히 쉽게 화를 낸다. 운전 중에, 댓글창에서, 가족끼리 밥을 먹다가. 화가 나는 상황이 많아진 것인지, 화를 참는 힘이 약해진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분명한 것은 이 시대의 공기에 불기운이 짙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기운이 사람의 심장을 위협하고 있다.

2024년 5월, 컬럼비아대학교 어빙 의료센터(Columbia University Irving Medical Center)의 다이치 심보(Daichi Shimbo) 교수 연구팀이 Journal of the American Heart Association에 발표한 연구가 있다. 논문 제목은 Translational Research of the Acute Effects of Negative Emotions on Vascular Endothelial Health이다. 280명의 건강한 성인을 무작위로 네 집단에 배정한 뒤, 각각 분노, 불안, 슬픔, 중립적 감정을 유발하는 과제를 수행하게 했다. 분노 집단에게는 과거에 화가 났던 경험을 8분간 떠올리며 말하게 했다. 8분이다. 긴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분노를 경험한 참가자들의 혈관 이완 능력, 즉 혈류매개확장반응(Flow-Mediated Dilation)이 절반 이상 떨어졌다. 피가 원활하게 흐르기 위해 혈관이 부드럽게 열리는 기능이 급격히 저하된 것이다. 불안이나 슬픔 집단에서는 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분노만이 혈관을 직접 공격했다.

혈관 내피(Endothelium)가 손상되면 동맥경화가 시작된다. 동맥경화는 심근경색과 뇌졸중의 전 단계다. 심보 교수는 이렇게 정리했다. 혈관 내피 기능의 손상은 심근경색과 뇌졸중의 위험 증가와 직결된다고. 한 번 화를 낸다고 심장이 멈추지는 않는다. 그러나 매일, 매주, 매달 반복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혈관벽에 미세한 상처가 쌓이고, 거기에 염증이 붙고, 염증이 굳어져 혈관을 좁힌다. 어느 날 그 좁아진 통로가 막히면, 그것이 심근경색이다.

화를 내는 사람은 자기가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자기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반응이라고 느낀다. 저 사람이 잘못했으니까, 세상이 불공평하니까, 나만 손해를 보고 있으니까. 분노에는 언제나 정당한 이유가 붙어 있다. 문제는 이유의 유무가 아니라, 분노가 몸에 남기는 흔적이다. 이유가 있든 없든 혈관은 똑같이 수축한다.

도덕경(道德經) 26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重為輕根 靜為躁君. 무거움이 가벼움의 뿌리이고, 고요함이 조급함의 주인이다. 이어서 노자는 말한다. 輕則失根 躁則失君. 가벼우면 뿌리를 잃고, 조급하면 주인을 잃는다. 2,500년 전에 쓰인 이 구절이 지금 읽으면 처방전처럼 보인다. 고요함이 조급함을 다스린다. 조급하면 자기를 잃는다.

노자가 말한 조(躁)를 지금 시대에 대입하면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사람들이 조급하다. 빨리 돈을 벌어야 하고, 빨리 인정받아야 하고, 빨리 결과를 봐야 한다. 기다림이 사라졌다. 기다리지 못하면 짜증이 올라오고, 짜증이 쌓이면 분노가 된다. 분노가 터지면 심장이 뛴다. 심장이 뛰면 혈관이 수축한다. 이 순서가 하루에 서너 번씩 반복되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

출퇴근 시간의 도로를 생각하면 된다. 끼어드는 차량에 경적을 울리고, 신호에 걸리면 한숨을 쉬고, 늦을 것 같으면 가슴이 조여온다. 이 과정에서 몸은 이미 전투 모드에 들어가 있다.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혈압이 오른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의자에 앉아도 몸은 아직 도로 위에 있다. 회의 중에 누군가의 말이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한 번 치솟는다. 저녁에 집에 와서 뉴스를 보면 또 한 번 올라간다. 하루 종일 몸이 쉬지 못한다.

심보 교수의 연구에서 주목할 점이 하나 더 있다. 분노 유발 후 혈관 기능이 손상되었지만, 40분이 지나면 회복되었다. 몸에는 회복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다만 회복할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40분 안에 또 다른 분노가 올라오면 회복은 중단된다. 상처가 아물기 전에 같은 자리를 다시 긁는 것과 같다.

도덕경 26장의 핵심은 고요함이 조급함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다스린다는 표현이 중요하다. 조급함을 없애라는 뜻이 아니다. 조급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살아 있는 한 급한 일은 생기고, 화나는 일은 벌어진다. 노자가 말한 것은 제거가 아니라 위계다. 고요함이 위에 있고 조급함이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순서. 그 순서가 뒤집히면, 조급함이 주인이 되고 고요함은 쫓겨난다. 그때부터 몸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현대인의 일상에서 고요함이 조급함 위에 있는 시간이 하루에 얼마나 되는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밀린 메시지에 반응하고, 출근길에 뉴스를 듣고, 하루 종일 알림에 시달리고, 잠들기 직전까지 화면을 본다. 고요함이 끼어들 틈이 없다. 조급함이 아침부터 밤까지 주인 행세를 한다.

문제는 이것이 개인의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대 자체가 불기운이 강하다. 속도를 높이는 쪽으로 모든 것이 설계되어 있다. 더 빠른 배달, 더 빠른 응답, 더 빠른 결과. 느린 것은 뒤처지는 것으로 취급되고, 기다리는 것은 나약함으로 취급된다. 이 환경에서 고요함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역류에 가깝다.

그래서 방법이 거창할 필요가 없다. 하루에 한 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10분만 만드는 것.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화면을 끄고, 눈을 감거나 먼 곳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혈관에게 주는 40분의 회복 시간 중 첫 번째 10분이 될 수 있다. 대단한 수행이 아니다. 몸이 전투 모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틈을 여는 것이다.

미국심장협회(AHA) 심리건강-심장-신체 연결 과학 성명 작성위원회 의장인 글렌 레빈(Glenn Levine) 교수는 이 연구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분노가 혈관 내피의 건강과 기능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연구이며, 혈관 내피는 심근허혈과 동맥경화성 심장 질환의 핵심이라고. 분노가 마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분노는 혈관의 문제이고, 혈관의 문제는 생사의 문제다.

노자가 靜為躁君이라고 한 것을 단순하게 풀면 이렇다. 고요함이 주인이면 산다. 조급함이 주인이면 위태롭다. 이것을 건강의 맥락으로 읽든, 삶의 태도로 읽든, 투자의 원칙으로 읽든 구조는 같다. 급하게 내린 결정은 대개 나중에 비용을 치른다. 화가 난 상태에서 보낸 메시지는 관계를 깨뜨리고, 화가 난 상태에서 내린 판단은 시장에서 손실을 부르고, 화가 반복되는 몸은 혈관이 닫힌다.

분노를 참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참으면 안으로 곪는다. 분노가 올라왔을 때 그것을 알아채는 것. 알아채는 순간 분노와 자기 사이에 한 뼘의 간격이 생긴다. 그 간격이 있으면 분노가 나를 끌고 다니지 못한다. 간격이 없으면 분노가 곧 나다. 분노의 포로가 된 상태에서 내리는 모든 판단은 분노의 판단이지 나의 판단이 아니다.

이 시대에 심근경색과 뇌졸중이 늘어나는 것을 단순히 식습관이나 운동 부족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사람들의 내면에 불이 많다. 비교에서 오는 불, 조급함에서 오는 불, 불공평하다는 느낌에서 오는 불. 이 불이 혈관벽을 태우고 있다. 심보 교수의 연구가 실험실에서 8분 만에 확인한 것을 사람들은 매일 수십 분씩 겪고 있다.

도덕경 26장의 마지막이 이렇다. 奈何萬乘之主 而以身輕天下. 만승의 군주가 어찌 몸을 가벼이 하여 천하를 경솔히 다루겠는가. 노자가 말한 만승의 군주는 나라의 왕이지만, 지금 읽으면 각자의 몸이다. 자기 몸이 유일한 영토인데, 분노라는 불로 그 영토를 태우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혈관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주는 것이 고요함이다. 그 고요함을 하루에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아마 심장의 미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분노가 심장을 멈추는 과학적 이유 – 컬럼비아대 혈관 손상 연구와 도덕경 26장의 고요함” 에 달린 1개 의견

  • 8분 만에 혈관 이완 기능이 절반 이상 떨어진다는 수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분노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혈관의 문제라는 프레임, 설득력 있게 읽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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