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지식 vs 지혜: 현대 사회의 구분점

1973년 마이클 스펜스가 밝혀낸 것이 있다. 학위는 당신이 무엇을 배웠는지 증명하지 않는다. 대신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고용주에게 신호로 보낸다. 똑똑하고, 성실하고, 규칙을 따를 줄 안다는 신호. 과거에는 이 신호가 유효했다. 20세기 기업 시스템은 톱니바퀴를 원했다. 시키는 일을 정확히 수행하는 사람. 학위는 그 톱니바퀴의 품질 보증서였다. 그러나 그 시대는 끝났다.

인공지능이 톱니바퀴의 역할을 대신한다. 정보를 검색하고, 분석하고, 정리하고, 심지어 코드를 짜는 일까지. 지식을 습득하고 적용하는 능력은 더 이상 인간의 고유 영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인공지능은 답을 찾는 데 탁월하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인지 정의하는 일은 하지 못한다. 조직을 이끄는 능력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갈등을 조율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일은 알고리즘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숫자 뒤에 숨은 의미, 말 뒤에 숨은 의도, 상황 뒤에 숨은 흐름을 읽는 일.

이것들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가르칠 수도 없다.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가 1966년에 이름을 붙였다. 암묵지.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 자전거 타는 법을 말로 설명할 수 있는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 법을 교과서로 전달할 수 있는가. 언제 밀고 언제 물러서야 하는지, 누구를 믿고 누구를 경계해야 하는지, 어떤 기회를 잡고 어떤 기회를 버려야 하는지. 이런 것들은 경험을 통해서만 체득된다. 실패를 통해서만 배워진다.

동양에서는 이를 지혜라 불렀다.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지식은 축적된다. 지혜는 체득된다. 지식은 전달된다. 지혜는 깨달아진다. 지식은 책에서 나온다. 지혜는 삶에서 나온다. 고졸도 못한 농부가 지혜로울 수 있다. 하버드 박사가 멍청이일 수 있다. 공자가 말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여기서 배움은 지식이고, 생각함은 지혜로 가는 길이다. 둘 다 필요하지만, 둘은 같지 않다.

지혜의 핵심에 자기 인지가 있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 자신의 강점과 한계를 직시하는 것. 자신이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이해하는 것.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한 이유다. 노자가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자는 밝다(知人者智 自知者明)”고 한 이유다. 명문대를 나온 사람이 이 영역에서 유리하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 일찍 성공한 경험이 자기 인식을 왜곡한다. 모든 것이 쉽게 열렸던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시험받아 본 적이 없다. 실패해 본 적이 없으니 실패에서 배우는 법도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270만 명의 창업자를 분석했다.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상위 0.1% 기업의 창업자 평균 나이는 45세였다. 50세 창업자가 30세보다 성공 확률이 1.8배 높았다. 같은 업종에서 3년 이상 경험이 있으면 성공 확률이 85% 올라갔다. 이 숫자들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암묵지가 축적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자기 인지가 형성되는 데 실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혜는 세월을 먹는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가 케냐 시골 아이들을 조사했다. 학교 성적과 실용 지능 사이에 음의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삶에 필요한 지식에서는 뒤처졌다. 미 육군 장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암묵지 점수가 IQ보다 리더십을 더 잘 예측했다. 경제학자 스테이시 데일과 앨런 크루거의 연구에서는, 하버드에 합격하고도 덜 유명한 학교에 간 학생이 하버드에 간 학생과 평생 소득이 같았다. 학교가 아니라 야망이 성공을 결정했다.

시장이 이를 감지했다. 구글, 애플, IBM, 테슬라가 많은 직무에서 학위 요건을 폐지했다. 2018년에서 2023년 사이 영국 AI 채용공고에서 학위 요건 언급이 15% 줄었다. 팰런티어 CEO 알렉스 카프는 투자자들에게 말했다.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졸업생을 학위 없는 사람과 똑같이 대우한다고. 학위 없는 직원이 때로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갤럽 조사에서 미국인의 고등교육 신뢰도는 2015년 57%에서 2024년 36%로 떨어졌다. 사람들이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이 가르치는 것과 세상이 원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지식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지식은 이제 검색하면 나온다. 지식의 가치가 0에 수렴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이 정리해준다. 남는 것은 지혜다.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사람을 이끄는 능력, 자신을 아는 능력. 이것들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다. 학위로 증명할 수 없다. 삶으로 체득해야 한다. 실패로 배워야 한다. 시간이 걸린다.

도덕경에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이 있다.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 왕필본에서는 대기면성(大器免成)이다. 큰 그릇은 완성됨을 면한다. 완성되지 않기에 계속 자란다. 자신이 완성되었다고 믿는 순간, 성장이 멈춘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사람만이 계속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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