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질그릇
장자의 아내가 죽었다.
혜자가 조문을 갔을 때, 장자는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는 화가 났다. 함께 늙은 아내가 죽었는데, 울지 않는 것도 모자라 노래라니. 그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

이 장면을 처음 읽는 사람은 대부분 혜자 편이다. 당연하다. 우리는 혜자의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혜자의 세계에서 죽음은 상실이다. 있던 것이 없어지는 것이고, 가진 것을 빼앗기는 것이다. 그래서 슬퍼야 하고, 그래서 울어야 한다. 울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은 것이 되고, 웃으면 인간이 아닌 것이 된다. 이것이 우리가 배운 방식이다.
그런데 장자는 왜 노래를 불렀을까.
1973년 어니스트 베커는 『죽음의 부정』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인간은 왜 그토록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가. 피라미드를 쌓고, 책을 쓰고, 회사를 세우고, 아이를 낳는 것. 그는 그 모든 행위의 밑바닥에서 같은 것을 발견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
베커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 이 앎은 견딜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평생을 죽음을 부정하는 데 쓴다. 영웅이 되려 하고, 업적을 남기려 하고,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에 소속되려 한다. 모두 상징적 불멸을 향한 몸부림이다. 내 몸은 죽더라도 내 이름은, 내 작품은, 내 유전자는 남는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종교가 약속하는 것의 핵심은 결국 죽음 이후의 존속이다. 천국, 극락, 환생, 영생. 표현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죽어도 끝이 아니라는 위안. 베커의 시각에서 보면,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정교한 문화적 구조물들 상당수가 죽음의 공포를 달래기 위해 지어졌다.
그 공포는 일상 곳곳에 스며 있다. 한국의 건물에서 4층이 사라진다. 四가 死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병원에서도, 아파트에서도, 4층은 F층이 되거나 아예 건너뛴다. 숫자 하나도 입에 담기 싫은 것이다. 장례식장을 ‘의료원 장례문화관’이라 부르고, 죽었다는 말 대신 ‘별세’, ‘영면’, ‘소천’이라는 단어를 쓴다. 죽음은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 되었다. 말하면 가까워질 것 같고, 가까워지면 닿을 것 같기 때문이다.
베커 이후 심리학자들은 수백 건의 실험으로 이를 검증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상기시키면, 그들은 자기 집단에 더 강하게 동일시하고, 이방인을 더 적대시하고, 자신의 세계관을 위협하는 것에 더 방어적이 된다. 죽음의 공포는 세상을 더 좁게 만든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싸우고, 배척하고, 벽을 쌓는 이유 중 상당 부분은 우리가 죽음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자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던 걸까.
장자는 혜자에게 이렇게 답했다. 처음에는 나도 슬펐다고. 하지만 그 시작을 돌이켜보니, 본래 생명이 없었다고. 생명이 없었을 뿐 아니라 형체도 없었고, 형체가 없었을 뿐 아니라 기(氣)도 없었다고. 흐릿한 가운데 섞여 있다가 변하여 기가 되고, 기가 변하여 형체가 되고, 형체가 변하여 생명이 되었다고. 이제 다시 변하여 돌아간 것이라고.
이것은 위안이 아니다. 이것은 관점의 전환이다.
혜자에게 아내는 ‘있다가 없어진 것’이다. 장자에게 아내는 ‘없다가 있었다가 다시 없는 것’이다. 혜자는 지금 이 순간만 본다. 장자는 변화의 전체 흐름을 본다. 혜자에게 죽음은 예외적 사건이다. 장자에게 죽음은 계절이 바뀌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노자는 이것을 더 간결하게 말했다. “致虛極, 守靜篤. 萬物並作, 吾以觀復.” 텅 비움을 지극히 하고 고요함을 돈독히 지키면, 만물이 함께 피어나는데 나는 그 되돌아감을 본다. 여기서 핵심은 ‘觀’, 본다는 것이다. 만물이 피어나고 지는 것을 그저 바라본다. 거기에 개입하지 않는다. 붙잡지 않는다.
베커의 인간은 붙잡는다. 삶을 붙잡고, 의미를 붙잡고, 자아를 붙잡는다. 그래서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붙잡은 모든 것을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장자의 인간은 붙잡지 않는다. 처음부터 내 것이 없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내도 내 것이 아니었고, 이 몸도 내 것이 아니었다. 잠시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일 뿐.
그렇다면 장자에게 슬픔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분명히 말했다. 처음에는 나도 슬펐다고. 장자는 슬픔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슬픔에 머무르지 않았다. 슬픔을 통과해서, 그 너머를 보았다. 질그릇 소리는 슬픔의 부정이 아니라 슬픔 이후의 평온이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드러난다. 베커가 말한 부정(denial)은 직면하지 않는 것이다. 죽음을 보지 않으려고 딴 곳을 보는 것이다. 4층을 F층으로 바꾸고, 죽음을 영면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장자의 태도는 직면한 후의 수용이다. 죽음을 똑바로 보았기 때문에, 이제 두렵지 않은 것이다.
현대 심리학에서도 비슷한 발견이 있다. 죽음을 무의식적으로 회피할 때와 의식적으로 성찰할 때, 그 결과는 다르다. 무의식적 회피는 방어와 공격성을 낳지만, 의식적 성찰은 오히려 삶의 의미 추구와 친밀감의 증가로 이어진다. 죽음을 피하면 삶이 좁아지고, 죽음을 마주하면 삶이 깊어진다.
장자가 임종을 앞두었을 때, 제자들이 성대한 장례를 치르겠다고 했다. 장자가 말했다. 천지를 관으로 삼고, 해와 달을 옥으로 삼고, 별을 구슬로 삼으면 되는데 뭘 더하겠느냐고. 제자들이 걱정했다. 새와 짐승이 스승님을 먹을까 두렵습니다. 장자가 답했다. 땅 위에서는 새의 밥이 되고, 땅 아래에서는 벌레의 밥이 될 텐데, 한쪽에서 빼앗아 다른 쪽에 주는 것은 왜 그리 편파적이냐고.
웃음이 난다. 죽음을 앞두고도 이렇게 가볍다. 가볍다는 것은 무겁지 않다는 뜻이고, 무겁지 않다는 것은 붙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장자는 자기 몸뚱이조차 붙들지 않았다.
2024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뉴욕 주민의 72%가 의료적 조력 사망을 지지한다. 그러나 절반 이상은 자국에서 그것이 합법인지조차 모른다. 죽음에 대해 말하고 싶지만, 말하는 것 자체가 두렵다. 이것이 베커가 말한 부정이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것.
장자의 질그릇 소리는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울린다. 그 소리는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 그것을 놓으면 무엇이 남는가.
아마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장자가 말한 고향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