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가 곧 국력이다
2024년, 중국에서 미국과 유럽으로 향하는 전력 변압기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가격도 덩달아 치솟았다. 2021년에 60만 달러 하던 20MVA급 변압기가 2025년에는 95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까지 올랐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니 주문하고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120주에서 210주, 길게는 4년까지 늘어났다.

이 현상의 뿌리를 캐보면 AI가 나온다. 정확히 말하면 AI를 돌리는 데이터센터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추산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삼킨 전력은 415테라와트시였다. 이게 2030년에는 945테라와트시로 두 배 이상 불어난다. 일본 전체가 1년 동안 쓰는 전력과 맞먹는 양이다.
미국이 가장 심하다. 2024년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183테라와트시로, 미국 전체 전력의 4퍼센트를 넘었다. 파키스탄 한 나라가 1년간 쓰는 전력량이다. 버지니아주 한 곳에서만 데이터센터가 주 전체 전력의 26퍼센트를 빨아들인다. 북부 버지니아는 세계에서 데이터센터가 가장 밀집한 곳이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 운영 용량의 13퍼센트, 아메리카 대륙 용량의 25퍼센트가 여기 몰려 있다.
문제는 이 수요를 감당할 전력망이 낡았다는 점이다. 미국 대형 변압기의 평균 나이는 38년에서 40년 사이다. 설계 수명을 이미 넘겼다. 전국에 6천만에서 8천만 대에 달하는 배전 변압기 중 55퍼센트가 수명 끝자락에 와 있다. 국가재해자문위원회(National Infrastructure Advisory Council)는 2024년 보고서에서 변압기 부족을 “전력망 신뢰성에 대한 명백한 전략적 위험”이라고 경고했다.
Wood Mackenzie에 따르면 2025년 미국 전력 변압기와 배전 변압기 공급 부족은 각각 30퍼센트와 10퍼센트에 이른다. 2019년 이후 전력 변압기 수요는 116퍼센트, 배전 변압기 수요는 41퍼센트 치솟았다. 국내 생산이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2025년 기준으로 미국 전력 변압기의 80퍼센트, 배전 변압기의 50퍼센트를 수입에 의존한다.
중국이 이 빈자리를 메운다. 2023년 중국의 유침 변압기(oil-immersed transformer) 수출은 25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이 중 30퍼센트 가까이가 유럽과 북미로 향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변압기 생산국이면서 동시에 가장 싼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을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 이야기가 나왔으니 덧붙이면, 2024년 기준으로 전 세계 신규 재생에너지 설비의 91퍼센트가 화석연료보다 싸게 전력을 생산했다. 태양광은 화석연료 대비 41퍼센트 저렴했고, 육상 풍력은 53퍼센트 저렴했다. 중국 육상 풍력 발전 비용은 킬로와트시당 0.029달러, 태양광은 0.033달러다. 세계 어디보다 낮다. 인도가 0.038달러로 그 뒤를 따른다.
아시아 지역은 태양광 설비 비용이 킬로와트당 500달러, 육상 풍력이 850달러 수준으로 2026년에도 세계 최저를 유지할 전망이다. 에너지 저장장치 비용에서도 중국이 치열한 공급업체 경쟁 덕에 세계 최저 수준을 달성하고 있다.
스페인의 사례가 흥미롭다. 스페인은 2018년에서 2024년 사이 산업용 전력 가격이 유럽 평균보다 낮아졌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2.8퍼센트에서 40.2퍼센트로 늘어난 덕이다. 스페인 중앙은행 연구에 따르면, 풍력과 태양광이 2019년 수준에 머물렀다면 현재 도매 전력 가격은 40퍼센트 더 높았을 것이다. 싼 전력이 제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사례다. 같은 기간 전력 비용이 높은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제조업 생산량은 부진했다.
미국 에너지부의 “Speed to Power” 계획은 대규모 발전과 송전 시설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한 연방 차원의 움직임이다. 명시적으로 “AI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라는 목표를 내세운다. 전력 풍요(electricity abundance)가 국제 경제 경쟁력과 국가 안보의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는 신호다. 2024년 중국은 화력발전 50기가와트 이상, 대규모 태양광 277기가와트를 새로 지었다. 같은 해 미국은 화력발전 약 2.5기가와트, 태양광 약 40기가와트를 지었다. 발전소를 짓는 능력 자체가 경쟁 우위가 되었다.
G7 국가들은 세계 GDP의 45퍼센트를 차지하지만, 현재 건설 중인 태양광과 풍력 프로젝트는 전 세계의 10퍼센트에 불과하다. 중국은 앞으로 지어질 대규모 태양광과 풍력 프로젝트의 70퍼센트를 계획하고 있다. 세계 부의 절반을 가진 G7이 세계 GDP 하위 4분의 1에 해당하는 나라들과 비슷한 규모의 재생에너지를 짓고 있다는 이야기다.
데이터센터 한 곳이 소도시 전체와 맞먹는 전력을 삼킨다. OpenAI의 텍사스 애빌린 데이터센터는 최종적으로 1기가와트 이상을 쓸 수 있다.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 인구를 합친 약 75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세계 최대 하이퍼스케일러 5곳의 2024년 자본 지출은 약 4,430억 달러였고, 2025년에는 3,710억 달러로 전년 대비 44퍼센트 증가할 전망이다. 데이터센터를 위한 설비 지출이 향후 3년 내 1조 달러에 도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버지니아주 전력망은 데이터센터 수요를 감당하려면 발전량을 150퍼센트, 타 주에서 들여오는 전력을 150퍼센트 늘려야 한다. 송전 용량도 40퍼센트 더 필요하다. 현재 태양광 시설 건설 속도의 두 배로 지어야 하고, 필요한 풍력 발전량은 현재 확보된 해상 풍력 부지 전체의 잠재력을 넘어선다. 대형 천연가스 발전소를 1년 반마다 하나씩 새로 지어야 한다. 이 수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버지니아 주민의 월 전기요금은 2040년까지 약 40달러 오를 것으로 추산된다.
일리노이에서 노스캐롤라이나까지 걸쳐 있는 PJM 전력 시장에서 데이터센터는 2025-26년 용량 시장에서 93억 달러의 가격 상승을 유발했다. 카네기멜런 대학 연구에 따르면,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와 암호화폐 채굴이 미국 평균 전기요금을 8퍼센트 올릴 수 있고, 북부 버지니아 같은 고수요 지역에서는 25퍼센트를 넘길 수 있다.
전력망에 연결하려면 5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데이터센터 운영사들은 전력망 뒤편(behind-the-meter)에 자체 발전 시설을 짓는 쪽으로 움직인다. 셰브론은 2027년까지 텍사스 서부에서 첫 AI 데이터센터 전력 프로젝트를 가동할 계획이다. 석유 회사가 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2024년 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 사용을 피함으로써 4,670억 달러 규모의 연료 비용을 절감했다. 국제 연료 시장 가격 급등에 대한 노출을 줄이고 경제적 불안정성을 낮추는 효과다. 햇빛이나 바람으로 현지에서 전력을 만들 수 있는 개발도상국에게 이는 단순히 싼 전력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다.
태국과 베트남에서는 이미 태양광 발전 비용이 화석연료 조달 비용보다 낮다. 중동과 북아프리카도 태양광의 비용 경쟁력을 활용해 재생에너지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도는 2030년까지 세계 주요 경제 대국 중 가장 빠른 재생에너지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AI 데이터센터가 하나의 도시만큼 전력을 삼키는 시대가 왔다. 그 전력을 누가, 얼마에, 얼마나 빨리 공급할 수 있느냐가 AI 경쟁의 숨은 변수가 되었다. 변압기 하나에 4년을 기다려야 하는 나라와, 발전소를 한 해에 수십 기 짓는 나라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IDC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25년 4,461메가와트에서 2028년 6,175메가와트로 연평균 11퍼센트씩 늘어난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38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3년의 6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정보통신업의 전력 사용량은 전체 산업용 전력의 6.9퍼센트로, 5년 전 3.8퍼센트에서 거의 두 배 늘었다.
문제는 전력망이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발전설비는 69퍼센트 늘었는데 송전선로는 14퍼센트밖에 확충되지 않았다. 국가 전력망의 47퍼센트가 수도권으로 유입되지만, 수도권 발전 비중은 18퍼센트에 불과하다. 소비는 수도권에 집중되고 발전은 지방에 편중된 구조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30년까지 최소 7기가와트의 신규 공급이 필요하고, 연간 6조에서 7조 원의 송전 인프라 투자가 요구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2025년 정부 예산안에 포함된 전력 인프라 투자액은 1.9조 원에 불과했다.
인천에서는 이미 전력망 포화가 현실이 되었다. 2025년 10월 기준으로 한국전력은 인천 지역에서 24건의 전력공급 신청을 거부했다. 거부된 총 전력량 1,156메가와트는 신형 원전 1기에 육박하는 규모다. 거부된 신청의 80퍼센트가 데이터센터였다. 2024년 송전을 시작한 인천의 단 1개 데이터센터가 180메가와트의 계약전력을 차지하며 전력망 포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도 문제다. 2021년 킬로와트시당 평균 105.5원이던 산업용 전기요금이 2024년에는 182.7원으로, 3년 만에 73퍼센트 올랐다. 킬로와트시당 179.5원인 한국 대기업 평균 요금은 미국 전역 평균인 112원보다 60퍼센트 이상 비싸다. 텍사스주 77.6원, 조지아주 83.4원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다.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 “차라리 공장을 해외로 옮기겠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재생에너지 비중도 낮다. 2024년 한국의 태양광 발전 비중은 5퍼센트, 풍력은 0.5퍼센트로 2020년 이후 사실상 정체 상태다.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10퍼센트로, 세계 평균 32퍼센트에 한참 못 미친다. 중국 태양광 발전 비용이 킬로와트시당 0.033달러인데, 한국은 재생에너지 조달 자체가 어렵다고 카카오와 삼성SDS가 밝힌 바 있다.
한전은 2038년까지 72조 8천억 원을 송변전설비에 투자할 계획이다. 그러나 한전의 누적 부채는 200조 원대에 달하고, 연간 이자 부담만 4조 원 안팎이다. 2021년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누적 적자가 41조 원이다. 투자 재원을 어디서 마련할지 불투명하다.
중국은 ‘동수서산(東數西算)’ 프로젝트를 추진해 동부의 데이터 소비를 서부의 전력 자원으로 보완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미국은 에너지부가 “Speed to Power” 계획을 통해 AI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력망 확충에 나섰다. 한국은 수도권 집중 구조를 바꾸지 못한 채 전력망 포화와 요금 인상 사이에서 기업들의 경쟁력이 깎여나가고 있다.
미래 산업은 점점 더 디지털화되고 자동화된다. 제조에 AI를 가장 먼저 통합하는 나라와 기업이 앞서나간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산업 공정에 기존 AI 응용 기술을 널리 적용하면 멕시코 전체 에너지 소비량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고 추산한다. 운송 부문에 AI를 적용하면 자동차 1억 2천만 대가 쓰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Bessemer Venture Partners의 한 파트너는 말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시장이다. 석유보다 크다. 지구상 모든 사람에게 지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석유가 아니라 지능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지능을 만들려면 전력이 필요하다. 결국 에너지 이야기로 돌아온다.

와 아주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