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와 혁신
동양철학에서 정관(正官)은 질서와 규율을 상징한다. 국가를 다스리는 자는 규칙을 세워 혼란을 막고, 그 규칙이 권위가 되어 체제를 유지한다. 공무원이 규정을 늘리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규칙 하나가 늘어날 때마다 그의 권한이 명확해지고, 책임의 경계가 선명해지며, 무엇보다 실수의 여지가 줄어든다. 이것이 관성(官星)의 본질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통제하는 것.
반면 식상(食傷)은 생산하고, 창조하고, 기존의 틀을 깨뜨린다. 새로운 서비스, 새로운 기술, 새로운 사업 모델은 모두 식상의 영역이다. 문제는 관성과 식상이 서로를 견제하는 관계라는 점이다. 규칙이 많아지면 창조는 위축되고, 창조가 넘쳐나면 질서가 흔들린다.

한국의 상황을 숫자로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진다. 2024년 OECD 규제정책평가에서 한국은 38개국 중 1위를 기록했다. 정부는 이를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규제를 관리하는 시스템, 영향평가 절차, 이해관계자 참여 방식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해 발표된 상품시장규제지수(PMR)에서 한국의 기업활동 개입 항목은 38개국 중 36위였다. 무역투자장벽도 36위. 서비스네트워크 분야 진입장벽은 OECD 평균의 1.5배 수준으로 최하위권이었다.
이 두 가지 결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규제를 만드는 절차는 세계 최고로 정교하지만, 그 정교한 절차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은 결국 더 많은 규제라는 뜻이다. 형식은 선진국이되 내용은 후진국인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 사례를 보자. 2013년 글로벌 승차공유 서비스 우버가 한국에 진출했다. 택시업계의 반발이 일었고, 검찰이 기소했으며, 1년 반 만에 사업을 접었다. 같은 서비스가 미국, 호주, 프랑스, 대만 등 세계 각국에서 운영되는 동안 한국에서는 불법이 되었다. 2018년에는 타다가 등장했다. 렌터카 기반 호출 서비스로, 등장 1년 반 만에 회원 170만명을 확보했다. 승차거부 없는 서비스, 조용한 차내 환경, 충전과 와이파이까지. 소비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러나 택시업계가 움직였고, 검찰이 기소했으며, 국회는 타다금지법을 만들었다. 재판은 1심, 2심, 대법원까지 모두 무죄였다. 법원은 합법이라 했지만 법은 이미 바뀌어 있었다. 타다는 문을 닫았다.
2022년부터 서울에서는 심야 택시 대란이 시작되었다. 밤늦게 강남역에서 택시를 잡으려면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타다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25만 대의 택시 중 1500대에 불과했던 타다가 상황을 완전히 바꿨을 것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선택지가 하나 더 있었을 것이다.
같은 시기 중국에서는 디디가, 동남아에서는 그랩이, 미국에서는 우버와 리프트가 경쟁하며 모빌리티 산업을 키워갔다. 자율주행 기술과 결합하며 테슬라, 웨이모 같은 기업들이 혁신의 최전선에 섰다. 세계에서 모빌리티 분야의 혁신이 가장 풍성하게 일어나는 동안 한국에서는 기존 택시업계의 반발을 의식한 정치적 결정이 반복되었다.
이것이 비단 모빌리티 산업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의 서비스업 노동생산성은 OECD 36개국 중 28위다. 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제조업 대비 서비스업 생산성 비율은 OECD 35개국 중 34위로 최하위권이다. 한국의 제조업이 세계 정상급인 것을 고려하면 서비스업과의 격차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전경련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 1만명당 외식업체 수는 125.4개로, 중국 66.4개, 프랑스 26.1개, 미국 20.8개를 훨씬 뛰어넘는다. 치킨집 수가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 수와 맞먹고, 커피전문점의 52.6%가 창업 3년 내에 문을 닫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규제가 혁신을 막으면 새로운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이 성장하지 못한다. 성장할 곳이 없는 사람들은 진입장벽이 낮은 자영업으로 몰린다. 과도한 경쟁 속에서 생산성은 떨어지고 폐업률은 높아진다. 이것이 악순환의 구조다.
KDI의 장기 경제성장률 전망을 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현재 1%대 후반에서 2040년대에는 0%대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측된다. 생산연령인구는 2019년 정점을 찍은 뒤 매년 수십만 명씩 줄고 있다. 2050년이 되면 생산연령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고령인구 비중은 40%까지 오른다.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성장을 유지하려면 생산성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혁신이 필요하다. 혁신이 일어나려면 새로운 시도가 가능해야 한다.
미국은 법인세율을 OECD 최고 수준인 35%에서 21%로 낮추고, 수출과 투자를 장려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실리콘밸리, 뉴욕, 보스턴 같은 창업 생태계가 에어비앤비, 도어대시, 블록 같은 기업을 배출했다. 지난 10년간 미국 기업의 합산 매출은 63% 증가했다. 중국은 95% 증가했다. 한국은 13%였다. 대한상공회의소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기업 생태계의 성장 속도가 한국의 6.3배에 달한다.
물론 규제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질서 없는 혁신은 혼란을 부른다. 소비자 보호, 안전, 공정경쟁을 위한 규칙은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균형이다. 관성이 지나치면 식상이 눌리고, 눌린 식상은 재성(財星)을 생산하지 못한다. 재성이 없으면 경제는 돌아가지 않는다. 이것이 명리의 논리이고, 현실의 논리이기도 하다.
한국의 규제는 대개 사전적이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막아두는 방식이다. 발생할 수 있는 1%의 위험을 막기 위해 99%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반면 미국이나 중국은 사후적 규제에 더 무게를 둔다. 일단 해보게 두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대응한다.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결과는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서비스 생산성은 6만 6천 달러다. 미국은 12만 8천 달러, 프랑스는 8만 6천 달러, 독일은 7만 6천 달러다. 한국 정부는 최근 서비스산업 국내외 실태조사 용역을 발주했다. 주요국과 비교해 우리나라에만 있는 과도한 규제를 골라내고, 개선 우선순위를 도출하겠다는 것이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2011년부터 추진되었지만 10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이다.
노자는 말했다.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 자주 뒤집으면 부서진다. 규칙을 너무 자주 바꾸거나 너무 많이 만들면 백성이 지친다. 그러나 아예 손을 대지 않으면 타버린다.
지금 한국이라는 생선은 한쪽 면이 너무 오래 구워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