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전공의 폐지

2016년 한국고용정보원은 콘크리트공과 정육원, 도축원을 AI 대체 고위험군으로 분류했다. 8년이 지난 지금 이들 직업의 직무 대체율은 각각 29.1퍼센트와 24.0퍼센트로 오히려 저위험군에 속한다. 예측이 틀린 것이 아니다. 기술적 가능성만 봤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시기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대체가 일어나고 있다. 번역과 통역이다. 중국 985와 211 명문대학들이 외국어 전공을 폐지하기 시작했다.
985는 1998년 5월에 시작된 세계 일류대학 육성 프로젝트로 39개 대학이 선정됐고, 211은 21세기를 대비한 100개 핵심대학 프로젝트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합친 것보다 더 권위 있는 명칭이다. 그 985 대학 중 하나인 중국과학기술대학이 2023년 영어 전공을 폐지했다. 베이징언어대학은 러시아어, 일본어, 독일어, 한국어, 스페인어 등 7개 번역 석사 전공의 신입생 모집을 2025년부터 중단했다. 2018년부터 2025년까지 156개 대학에서 114개 외국어 전공이 사라졌다.
미국에서는 번역학의 하버드라 불리던 Middlebury Institute가 2027년 완전 폐교를 선언했다. 등록자 수 감소와 재정 적자가 직접적 원인이었지만, 4년간의 개선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이사회의 설명은 이 분야가 일시적 침체가 아니라 구조적 전환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대체는 기술적 가능성이 아니라 경제적 이득으로 결정된다. 동네 중국집에 요리 로봇이 없는 이유는 대체가 불가능해서가 아니다. 월 200만원 주고 사람을 쓰는 것이 수억 원짜리 로봇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보다 싸기 때문이다. 반대로 연봉 1억을 받는 전문 번역가를 AI가 대신하면 기업은 연간 수천만 원을 절약한다.
구글은 이제 실시간 통번역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화자의 어조와 감정까지 반영한 자연스러운 번역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애플도 에어팟 프로를 통해 실시간 통역 기능을 선보였다. 2025년 기준 AI 번역의 정확도는 98.7퍼센트에 달하며, 비용은 인간 번역의 1퍼센트 수준이다. 기본적인 번역 시장의 40퍼센트를 이미 AI가 점유하고 있다.
언어 전공자의 전통적인 진로는 네 가지였다. 통번역, 외교, 무역, 언어 교육. 통번역은 AI가 직접 대체하고 있다. 무역 현장에서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번역 앱으로 충분해졌다. 언어 교육 역시 AI 튜터가 24시간 1대1 맞춤 학습을 제공하는 시대가 됐다. 외교 분야만이 아직 인간의 미묘한 뉘앙스 파악과 관계 구축 능력을 필요로 하지만, 외교관이 되는 길은 애초에 바늘구멍이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이 2025년 9월 발표한 연구가 있다. 링크드인과 레벨리오 랩스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AI를 도입한 기업들에서 주니어 레벨과 엔트리 레벨 포지션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6200만 명의 근로자와 28만 5천 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였다. 반면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급 인력의 고용은 오히려 증가했다.
연구진은 시니어들이 AI로 대체하기 어려운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복잡한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는 능력, 조직의 역학 관계를 읽는 감각,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다루는 경험. 문제는 그 경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갖추게 되었는가다. 그들도 처음에는 신입이었다. 반복적인 업무를 하면서 실수하고, 선배의 피드백을 받고,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몸으로 익혔다. 보고서를 수십 번 고쳐 쓰면서 글을 다듬는 법을 배웠고, 회의에서 말실수를 하면서 정치적 감각을 키웠다.
그런데 그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자리를 AI가 가져간다면 어떻게 될까. 경험을 쌓을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 사다리의 아랫단이 없어지는 셈이다.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은 당분간 괜찮겠지만, 새로 올라오려는 사람들은 발 디딜 곳이 없다. 언어 전공을 폐지한 중국 대학들이 대신 개설한 것은 외국어와 컴퓨터, 외국어와 AI, 외국어와 법학을 결합한 복합 전공이다. 언어 하나만으로는 부족하고 그것을 활용할 전문 영역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외국어 전공은 황금기를 누렸다.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취업이 보장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지금, 중국에서만 매년 10만 명 이상의 영어 전공 졸업생이 쏟아지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AI 번역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제는 인간의 감정과 어조까지 모방한다. 기술 발전의 속도를 과소평가했던 사람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대학들이 전공을 폐지하는 것은 신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