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 학위가 취업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

2025년 11월,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Palantir Technologies)가 이례적인 채용 공고를 냈다. 고등학교 졸업생 22명을 뽑아 4개월간 유급 인턴십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름은 메리토크라시 펠로우십(Meritocracy Fellowship). 대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 실무 경험을 쌓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월급은 약 5,400달러, 한화로 700만 원이 넘는다. 500명 이상이 지원했고, 그중 22명이 선발되었다. 일부는 아이비리그 합격 통보를 받고도 이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CEO 알렉스 카프(Alex Karp)는 대학 교육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했다. 대학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훈련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비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졸업해도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캠퍼스에서는 실무와 동떨어진 것들만 배운다고. 팔란티어에서 일한 경력이 어떤 대학 졸업장보다 낫다는 주장이다. 공동 창업자 피터 틸(Peter Thiel)도 오래전부터 비슷한 생각을 해왔다. 그가 만든 틸 펠로우십은 유망한 젊은이들에게 대학을 그만두면 10만 달러를 주는 프로그램이다.
팔란티어의 펠로우십은 단순한 인턴 과정이 아니다. 첫 4주 동안 참가자들은 서구 문명과 미국 역사를 공부한다.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자서전을 읽고, 게티즈버그를 방문하고, 링컨과 처칠에 대해 토론한다. 그 이후에는 실제 팀에 배치되어 풀타임 직원처럼 일한다. 우수한 성과를 보인 펠로우에게는 정규직 제안이 간다. 이미 몇 명은 오퍼를 받았다.
흥미로운 실험이다. 대학이라는 관문을 건너뛰고 바로 현장으로 들어가는 길을 기업이 직접 만들어준 것이다. 물론 22명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이다. 전체 고졸자들에게 열린 기회는 아니다. 하지만 신호는 분명하다. 적어도 일부 기업들은 대학 졸업장이 아닌 다른 것을 보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링크드인과 레벨리오 랩스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인공지능을 도입한 기업들에서 주니어 레벨과 엔트리 레벨 포지션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6,200만 명의 근로자와 28만 5천 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였다. 반면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급 인력의 고용은 오히려 증가했다.
이 연구가 말하는 바는 단순하다.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취업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명문대 졸업생들도 직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하버드를 나와도, 스탠퍼드를 나와도 예전처럼 자리가 기다리고 있지 않다. 2024년 말부터 실리콘밸리의 신입 채용 공고는 눈에 띄게 줄었고, 금융권의 애널리스트 TO도 마찬가지다.
흥미로운 점은 경력 15년, 20년 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았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들이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복잡한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는 능력, 조직의 역학 관계를 읽는 감각,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다루는 경험 같은 것들이다. 인공지능은 정보를 합성하고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영역에서는 인간을 대체하지 못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그 경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갖추게 되었는가. 그들도 처음에는 신입이었다. 반복적인 업무를 하면서 실수하고, 선배의 피드백을 받고,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몸으로 익혔다. 보고서를 수십 번 고쳐 쓰면서 글을 다듬는 법을 배웠고, 회의에서 말실수를 하면서 정치적 감각을 키웠다. 그 지루하고 반복적인 시간들이 쌓여서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자리를 인공지능이 가져간다면 어떻게 될까. 경험을 쌓을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 사다리의 아랫단이 없어지는 셈이다.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은 당분간 괜찮겠지만, 새로 올라오려는 사람들은 발 디딜 곳이 없다. 이것이 하버드 연구진이 경고하는 장기적 함의(lasting consequences)다.
대학에서 배우는 것들의 가치도 재고해야 할 시점이다. 전통적으로 대학은 지식을 체계적으로 습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문서를 작성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일은 인공지능이 몇 초 만에 해낸다. ChatGPT에게 물어보면 논문 수준의 정보 정리가 나온다. 엑셀 작업은 코파일럿이 대신한다. 대학 4년 동안 열심히 익힌 기술들이 취업 시장에서 더 이상 차별화 요소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는가. 진정한 문제 해결 능력이다. 매뉴얼에 없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해법을 찾아내는 사람, 기존 틀을 깨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 불확실성 속에서 결단을 내리는 사람. 범용 인재, 일반 인재의 수요는 사라지고 있다. 남는 것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뿐이다.
동양의 명리학(命理學)으로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관인상생(官印相生)이라는 구조가 있다. 관(官)은 조직이나 제도를, 인(印)은 학습과 지식을 뜻한다. 조직이 요구하는 바를 학습해서 따라가는 구조다.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따고, 매뉴얼대로 일하는 것. 이것이 전통적인 직장인의 성공 경로였다. 그런데 이 영역을 인공지능이 점령하고 있다.
반면 식신제살(食神制殺)이나 상관가살(傷官駕殺) 같은 구조가 있다. 살(殺)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 통제 어려운 위기를 뜻한다. 식신이나 상관은 자기만의 기술과 창조성이다. 자기만의 무언가로 혼돈을 다스리는 것이다. 정해진 답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돌파하는 능력.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는 것은 이런 종류의 힘이다.
세상은 이미 바뀌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성실하게 시키는 일을 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었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그 공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버드의 데이터가 보여주고 있다. 다음 세대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아니, 지금 대학에 다니는 사람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