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영역과 인공지능

2025년 12월, 노르웨이에서 49세 남성 티크옌이 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았다. 의료진은 산성 역류라고 진단하고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흔한 일이다. 응급실은 바쁘고, 복통 환자는 많고, 모든 케이스를 정밀 검사할 수는 없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 Grok이라는 AI와 대화를 나눴다. 증상을 설명하자 AI는 비정형 충수염이나 천공성 궤양 가능성을 지적하며 즉시 CT 스캔을 요구하라고 조언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티크옌은 병원에 다시 갔지만, AI가 그렇게 말했다고 하면 무시당할 것 같았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 집에 간호사인 언니가 있는데 그녀가 스캔을 받으라고 했다고. 결과적으로 CT 촬영이 이루어졌고, 거의 파열 직전인 충수염이 발견되었다. 긴급 수술로 목숨을 건졌다.
이 이야기가 레딧에 올라가고 X로 퍼지면서 일론 머스크가 “cool”이라고 반응했고, 각종 뉴스 매체가 다뤘다. 그리고 비슷한 사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2025년 1월에는 어머니가 딸의 손목 엑스레이를 Grok에 업로드했다가 여러 병원에서 성장판이라고 넘겼던 부위가 실제로 원위 요골 골절이었음을 확인했다. 캐스트 치료로 수술을 피했다. 피부 발진, 검사 결과 해석, 디스크 탈출까지 AI가 의사의 오진을 잡아냈다는 포스트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한 발 더 나아갔다. 2024년 칭화대학교 연구진이 개발한 에이전트 호스피탈(Agent Hospital)은 세계 최초의 AI 병원이다. 14명의 AI 의사와 4명의 AI 간호사가 하루 3천 명의 환자를 진료할 수 있다. 50만 건의 합성 환자 데이터로 훈련된 이 시스템은 미국 의사면허시험 문제에서 93.06퍼센트의 정확도를 기록했다. 인간 의사가 만 명의 환자를 진료하려면 2년이 걸린다. AI 의사는 며칠이면 된다. 2024년 11월에는 칭화대 스핀오프 스타트업이 개발한 즈징 AI 닥터(Zijing AI Doctor)가 출시되었다. 21개 임상 전문과에 걸쳐 42명의 AI 의사가 300개 이상의 질환을 다룬다.
한의학 기반 AI도 이미 작동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 설진(舌診) 분석 시스템이 위암 선별 진단에 기여하고 있고, 맥진(脈診) AI는 그래프 컨볼루션 네트워크를 통해 기존 방식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여준다. AI가 환자의 혀 이미지와 맥파를 분석하고, 증상을 종합하여 처방을 추천하는 시스템이 실제로 운용 중이다. 경험 많은 한의사의 진단 패턴을 학습한 AI는 이제 처방 정확도에서 전문의 수준에 근접하거나 이를 넘어서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의사의 자리는 어디인가. 한국의 대형 병원에서 초진 환자가 의사와 대면하는 시간은 평균 3.3분이다. 일반 종합병원 기준으로도 6.2분에서 7.4분 사이다. 미국은 20분 이상이고, 9분 미만인 경우는 6퍼센트에 불과하다. 중국의 3차 병원에서는 의사가 15분 진료 중 7분을 전자의무기록 작성에 쓰고 실제 환자와 대면하는 시간은 4분이다. 환자는 몇 시간을 기다려 몇 분 만에 진료실을 나선다. 공감? 자세한 검진? 그런 것은 시스템 안에 설계되어 있지 않다.
칭화대 의대 동지아홍 학장은 의학은 사랑의 과학이고 따뜻함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AI 의료는 여전히 차갑다고 했다. 개인화된 돌봄과 연민을 제공할 수 없다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현재 병원에서 환자가 받는 것이 사랑의 과학이고 따뜻함의 예술인가. 3분 진료에서 의사가 환자의 눈을 보며 공감을 표현할 시간이 있는가. 하루에 60명, 많으면 100명이 넘는 환자를 보는 의사가 각각의 환자에게 개인화된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가.
AI가 아직 제공하지 못하는 것을 인간 의사가 제공하고 있다면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환자는 이미 차가운 시스템 안에 있다. 그리고 그 시스템 안에서 오진이 발생한다. 티크옌의 충수염처럼. 어머니가 발견한 딸의 골절처럼.
중국은 2030년까지 AI 개발에 1.4조 달러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딥시크(DeepSeek) AI는 이미 중국 전역 260개 이상의 병원 인트라넷에 탑재되어 있다. 상하이 루이진 병원에서는 하루 3천 장의 병리 슬라이드를 분석한다. 청두 제1인민병원에서는 원격 진료와 만성질환 관리에 활용된다. 베이징 칭화창겅병원은 2025년 5월 2단계 확장을 완료하며 1,500 병상, 일일 외래 환자 1만 명 규모로 성장했다. 그 물리적 확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디지털 레이어다. 입원 수속부터 진단, 수액 관리, 이동 간호 스테이션까지 AI가 환자 여정의 거의 모든 단계를 지원한다.
물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AI는 의학 도구가 아니며 오진 위험이 있다고. 훈련 데이터 부족으로 특정 인종이나 연령대에서 편향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오진의 법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환자 데이터의 프라이버시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신의 위험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발전 중이라는 점이다. AI의 진단 정확도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의료 전용 AI가 본격 도입되면 오진률이 20에서 50퍼센트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응급실에서 AI가 CT와 MRI를 즉시 분석하면 뇌출혈이나 심근경색 환자의 골든타임을 단축할 수 있다. 농촌이나 개발도상국에서도 고급 진단에 접근하기 쉬워진다.
티크옌은 AI의 조언을 따르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했다. AI가 말했다고 하면 무시당할 것 같아서. 2025년 12월의 의료 현장은 그런 곳이다. AI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조언을 하지만, 그 조언이 받아들여지려면 인간의 권위를 빌려야 하는 곳. 몇 년 후에도 그럴까. 아니면 의사가 AI의 판단을 참고하는 것이 당연한 프로토콜이 될까. 혹은 환자가 자신의 증상을 AI에게 먼저 물어보는 것이 일상이 될까.
의사는 무엇을 하게 될까. 3분 진료 대신 AI가 1차 진단을 수행하고, 의사는 확인과 환자 소통, 치료 계획 수립에 집중하게 될까. 아니면 AI가 제공하지 못한다는 따뜻함과 공감을 진짜로 제공할 시간을 갖게 될까. 혹은 그 자리 자체가 사라질까.
확실한 것은 티크옌의 충수가 파열되기 전에 발견되었다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간호사 언니가 아니라 AI였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