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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흘러야 돈이다

어제 한 중국인 의대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할아버지가 고위공무원이다. 겉으로 보면 부러울 것 없는 집안인데, 그가 한 시간 넘게 한 이야기는 전부 하소연이었다. 돈을 쓰면 전부 보고된다. 무엇을 샀는지, 어디서 썼는지, 전부 감시당한다. 지난달에 카메라 장비를 사느라 한국 돈으로 1300만원쯤 썼는데, 아버지가 이유도 묻지 않고 카드를 정지시켰다. 자동차도 눈에 띄는 건 안 된다. 명품은 하나도 없다. 결혼 상대도 할아버지가 이미 정해뒀다. 주식 투자 같은 것도 못 한다. 그냥 모으는 것만 허락된다. 그는 자유를 얻고 싶다고 했다. 이민을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다고 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에게는 돈이 있다. 그러나 그 돈은 그의 것이 아니다. 쓸 수 없기 때문이다. 흐르지 않는 돈은 주인에게 속해 있어도 죽어 있는 것과 같다.

며칠 전에는 제자 한 명이 돈 이야기를 꺼냈다. 실제로 가난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돈이 없어서 안 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돈만 있으면 해결될 텐데, 라는 말을 반복했다. 이 사람에게 돈은 늘 부족한 것이다. 아무리 벌어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먼저다. 그러니 쓰지 못한다. 쓰면 더 부족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람은 부자들 앞에서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타인이 자신을 무시하는 이유가 돈이 없어서라고 믿는다. 정작 본인의 말투나 태도는 돌아보지 않는다. 이 사람에게 돈은 존엄의 조건이다. 돈이 없으면 존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돈을 움켜쥔다. 쓰면 존엄이 깎일 것 같기 때문이다.

세 사람의 상황은 다르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돈이 흐르지 않는다. 첫 번째 사람은 외부에서 막혀 있고, 두 번째 사람은 결핍감이 막고 있고, 세 번째 사람은 자격지심이 막고 있다.

돈은 물에 비유된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 흘러야 맑다. 돈도 같다. 먹는 것을 아끼고, 입는 것을 아끼고, 자신을 기쁘게 하는 데 한 푼도 쓰지 않으면, 돈이 흘러올 이유가 사라진다. 돈은 순환하지 않는 곳을 피해 간다.

가난하고 힘들어도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흐름을 만든다. 거창한 소비가 아니다. 좋아하는 음식 한 끼, 오래 갖고 싶었던 물건 하나, 그런 것이다. 자신에게 쓰는 돈에는 허락의 의미가 있다. 나는 이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선언이다. 그 선언이 없으면 돈은 죄의식이 된다. 쓰면 안 되는 것, 늘 모자란 것, 지켜야 하는 것. 그렇게 묶인 돈은 살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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