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대학의 존재가치

2025년,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두 사람이 각자의 인터뷰에서 대학 교육에 대해 말했다. 샘 알트만은 7월 코미디언 Theo Von의 팟캐스트에서, 일론 머스크는 11월 인도 투자자 Nikhil Kamath와의 대담에서였다. 둘 다 AI 산업의 최전선에 있으며, 둘 다 어린 자녀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결론이 미묘하게 갈린다.

알트만은 2025년 2월에 태어난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내 아이는 절대 AI보다 똑똑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대학에 보낼 것이냐는 질문에 아마 아닐 것이라고 답했다. 현재도 대학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잘 작동하지 않는데, 18년 후에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논리다. 다만 그는 아이들은 괜찮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걱정되는 건 부모 세대라고. 새로운 기술에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건 언제나 젊은 쪽이었다.

머스크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그의 큰 아들들은 기술에 능통한 세대답게 AI가 20년 내에 자신들의 스킬을 무용지물로 만들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도 대학에 가고 싶어 한다고 했다. 머스크는 이를 막지 않는다. 사회적 이유로 가고 싶다면 가는 게 좋다, 동갑 친구들과 학습 환경에서 어울리는 것이니까. 그는 대학이 학습 도구로서는 별 의미가 없다고 보지만, 경험과 관계의 장으로서는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다.

두 사람 모두 대학의 본래 기능, 그러니까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는 기관으로서의 역할에는 회의적이다. 이건 단순한 철학적 견해가 아니라 산술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AI 시대에 무언가를 배우는 비용은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AI를 활용하면 몇 주에서 몇 개월이면 새로운 분야의 지식을 상당 수준까지 습득할 수 있다. 그런데 대학은 여전히 4년이라는 시간을 요구한다. 게다가 그렇게 4년을 투자해서 배운 것들이 졸업할 때쯤이면 이미 낡은 지식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기술의 변화 속도가 교육과정의 갱신 속도를 압도하는 세상에서, 지식 그 자체의 가치는 점점 희석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과거에는 능력의 증명이었던 졸업장이, 이제는 그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앞으로 정말 필요한 것들은 대학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선생 없이 스스로 학습하는 독학 능력, 빠르게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 적응력,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상대방의 니즈를 파악하는 감각, 복잡한 세계에서 정확한 판단과 올바른 선택을 내리는 능력, 타인과 협력하는 기술, 신뢰를 얻는 방법. 이런 것들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다고 생기지 않는다. 현실 세계에서 벽에 부딪치고, 실패하고, 때로는 얻어맞으면서 체득하는 것들이다. 인간이 가진 일반적인 기능들, 그러니까 정보를 외우고, 계산하고, 문서를 작성하고, 분석하는 따위의 능력들은 대부분 10년에서 20년 안에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낼 테니까.

그렇다면 대학의 가치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대학이 원래 부수적이라고 여겼던 것들에 있을지 모른다. 타인과 협력하는 법을 배우는 것. 무언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는 경험. 동년배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더 알고 싶은지 찾아가는 과정. 대학이 살아남는다면, 지식을 전달하는 기관으로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자기 자신을 탐색하는 공간으로서일 것이다.

알트만은 계산기가 발명된 후에도 수학 교육이 사라지지 않았듯 AI도 교육을 죽이는 게 아니라 진화시킬 것이라고 말하긴 했다. 하지만 그 진화의 방향이 대학이라는 제도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 눈치다. 흥미로운 건 결론의 차이다. 알트만은 더 급진적이다. 아예 보내지 않겠다는 쪽에 가깝다. 머스크는 더 유연하다. 본인은 대학을 비싼 종이쪼가리라고 비유해왔지만, 아이들이 원한다면 그 선택을 존중한다. 어쩌면 이 차이는 두 사람의 성격 차이일 수도 있고, 자녀의 나이 차이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갓 태어난 아이의 미래는 추상적으로 그릴 수 있지만, 이미 대학 진학을 앞둔 아이의 선택은 구체적인 현실이다.

다만 두 사람이 공유하는 전제가 하나 있다. AI 시대에 남는 것은 결국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는 것. 알트만은 창의성, 사회성, 목적 추구를 언급했고, 머스크는 사회적 성장과 친구를 사귀는 경험을 말했다. 대학이 살아남는다면, 지식의 창고가 아니라 관계의 장으로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굳이 대학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머스크는 AI가 가져올 변화의 속도를 초음속 쓰나미에 비유했다. 일이 선택이 되는 세상, 스킬이 취미가 되는 세상. 그 세상에서 대학은 어떤 모습일까. 아니, 대학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18년 후, 알트만의 아들이 대학 진학을 고민할 나이가 되었을 때, 우리는 답을 알게 될 것이다. 아니면 그때쯤이면 그런 질문 자체가 의미 없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댓글에 인색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