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 의심이라는 것

의심이라는 감정이 있다. 한번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의심은 사랑을 죽이고, 의심은 행복을 죽이고, 의심은 모든 선한 것을 죽인다.” – 아가사 크리스티
역사 속 의심의 파괴력
당나라 무측천과 적인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적인걸은 무측천의 가장 신임받는 재상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적인걸이 모반을 꾸민다고 고발했다. 조사관 내준신이 가혹한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내려 했지만, 적인걸은 영리했다. “모반이 맞습니다”라고 즉시 인정해버렸다. 그리고 아들이 면회 올 때 혈서를 몰래 전달했다. “억울하다”는 내용이었다.
무측천은 딜레마에 빠졌다. 자백서와 혈서, 무엇을 믿어야 할까. 이때 전 재상 악사회의 아들이 찾아와 말했다. “황상, 아무나 잡아서 내준신에게 보내면 모반죄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무측천은 그제야 깨달았다. 의심이 이성을 흐렸던 것이다.
조조의 의심병은 더 심각했다. 친구 여백사가 자신을 대접하려고 돼지를 잡으러 간 사이, 조조는 칼을 갈아대는 소리를 듣고 암살당한다고 착각했다. 여백사 가족을 모두 죽이고 나서야 진실을 알았다. “차라리 내가 천하를 배신할지언정, 천하가 나를 배신하게 두지는 않겠다”는 그 유명한 말을 남겼다.
현대의 의심병들
40대 남성 A씨가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퇴근이 30분 늦었다고 추궁하고, 휴대폰을 뒤지고, 심지어 사설탐정까지 고용했다.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A씨는 “증거를 숨겼다”며 더 의심했다. 결국 아내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병원에 입원했고, 이혼소송까지 갔다.
실리콘밸리의 한 스타트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CEO가 직원 한 명이 회사 기밀을 경쟁사에 팔았다고 의심했다. 그 직원이 경쟁사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내 조사를 벌이고, 컴퓨터를 압수하고, 심지어 미행까지 했다. 6개월 후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는 게 밝혀졌다. 그 직원은 이미 회사를 그만둔 후였다.
도끼 도둑의 심리학
중국 고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 농부가 도끼를 잃어버렸다. 이웃집 아이가 의심스러웠다. 그 아이를 보니 걸음걸이가 수상했다. 말투도 어색했다. 표정도 뭔가 숨기는 것 같았다. 심지어 집 앞을 지날 때도 고개를 돌리며 지나갔다.
며칠 후 농부는 산에서 자신의 도끼를 발견했다. 자기가 작업하다가 떨어뜨린 것이었다. 그 다음날 이웃집 아이를 보니 어떻게 생겼나? 평범한 아이였다. 걸음걸이도 자연스럽고, 말투도 순수했다.
“의심하는 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증거가 된다.” – 볼테르
의심하는 순간, 상대방의 모든 행동이 의심스럽다. 그것이 무고한 사람들을 때려잡는 이유가 되고, 여론 재판이 위험한 이유가 된다. 특히 군중이 되는 순간 인간들의 지성은 바닥을 치기에, 더욱더 위험하다.
신뢰할 사람을 구분하는 법
두 가지 상황에서 사람의 본성이 드러난다.
첫째는 위기 상황이다. 2020년 코로나19가 터졌을 때를 생각해보자. 누가 진짜 친구인지 명확해졌다. 어떤 사람들은 연락도 끊었고, 어떤 사람들은 마스크를 사다 주며 안부를 물었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때 주변 사람의 70%가 거리를 둔다고 한다. 나머지 30%가 진짜 관계다.
둘째는 시간이다. SNS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 처음에는 완벽해 보이던 인플루언서가 시간이 지나면서 가짜 브랜드 제품을 팔거나, 사기 광고를 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반대로 꾸준히 한결같은 사람들이 있다. 5년, 10년, 15년 늘 꾸준히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신뢰할만 하다는 것.
인간이란 비슷한 존재
요즘 직장에서 자주 보는 패턴이 있다. 팀장이 부하직원 한 명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 직원이 하는 모든 일이 문제로 보인다. 일찍 퇴근하면 “책임감이 없다”, 늦게 퇴근하면 “효율성이 떨어진다”, 질문을 많이 하면 “기본기가 부족하다”, 질문을 안 하면 “소통을 안 한다”.
결국 그 직원은 정말로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팀장은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은? 의심 때문에 정말로 그렇게 만든 것이다.
직장만 아니라 연인도 마찬가지다. 저 사람 바람 피우는 것 아니야? 의심하고 괴롭힌다. 원래 바람 피울 의도가 없었지만, 계속되는 추궁과 신뢰받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결국은 눈을 돌리게 된다.
그러면 의심하던 사람은 “봐, 내 촉이 맞았어.”
그럼 촉이 맞은거냐? 아니면 ?
“타인을 판단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잣대는 사실 우리 자신에 대한 고백이다.” – 칼 융
완전한 의심도, 완전한 믿음도 위험하다. 스티브 잡스는 “신뢰하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는 레이건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의심받기 싫으면 먼저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어야 남들도 나를 믿는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진실하게 살면 진실한 사람들이 남는다. 가짜들은 알아서 걸러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의심은 지혜의 시작이지만, 의심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 조지 산타야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