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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제도의 유효기간, AI 시대에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

인공지능 시대에 학교 교육이 아이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이 질문을 학부모가 아니라 교육 전문가 자신이 먼저 던지기 시작했다. 2025년 말 중국에서 아동교육 전문가가 성적 우수한 초등학생 자녀를 자퇴시켰다. MIT 출신의 수재이고, 집안은 대대로 교육가 집안이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학교가 가르치는 것이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 쓸모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이 판단이 극단적인지 아닌지는 시간축을 어디에 놓느냐에 달려 있다. 오늘 기준으로 보면 무모하다. 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사회적 경로가 끊기고, 또래 관계가 단절되고, 검증된 자격이 사라진다. 그런데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사회에 나오는 것은 2038년 이후다. 대학까지 가면 2042년이다. 그때의 세상이 지금과 같은 구조일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를 3개월 단위로 체감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16년 뒤의 세상을 지금의 잣대로 그리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안다. 2024년 초만 해도 인공지능 에이전트(AI Agent)는 개념에 가까웠다. 2026년 9월 현재, 에이전트는 코드를 쓰고, 문서를 분석하고, 복잡한 업무를 단계별로 수행한다. 세쿼이아 캐피털(Sequoia Capital)의 패트 그래디(Pat Grady)는 2026년 AI 어센트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더 빠른 말은 사람을 10에서 40퍼센트 더 생산적으로 만들지만, 자동차는 10에서 40배 더 생산적으로 만든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은 말에서 자동차로의 전환이다.

여기에 휴머노이드가 겹친다. 테슬라(Tesla)는 2026년 3분기부터 옵티머스(Optimus) 3세대의 양산을 시작했다. 피규어(Figure),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 중국의 유니트리(Unitree)까지. 2030년이면 이 로봇들이 공장과 물류 현장에 보급되고, 2035년이면 가정에 들어올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인지 노동은 인공지능이 가져가고, 물리적 노동은 휴머노이드가 가져간다. 이 두 흐름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이 시대의 특수성이다.

그런데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여전히 정보를 암기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정답을 고르는 훈련이다. 이 훈련이 만들어내는 인간형은 명확하다. 주어진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사람. 이 인간형은 산업화 시대의 최적해였다. 공장과 사무실은 이런 사람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정보 처리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순간, 이 최적해의 가치가 급락한다. 2024년 이후 글로벌 IT 대기업들이 주니어 개발자 채용을 급격히 줄인 것이 이미 데이터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부유층은 이 흐름을 먼저 읽었다. 포춘(Fortune)의 2026년 9월 보도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의 부유한 가정들이 자녀를 연간 7만5천 달러짜리 AI 학교에 보내고 있다. 알파 스쿨(Alpha School)이 대표적이다. 이 학교에서 아이들은 하루 2시간을 AI 튜터와 함께 핵심 과목을 학습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공개 발표, 협상, 관계 형성 같은 기술을 훈련한다. 교사는 가이드(Guide)라 불리며, 수업 계획이나 채점을 하지 않는다. 현재 1,200명 이상의 학생이 다니고 있고, 50개 캠퍼스로 확장 중이다. 하버드 대학교의 2025년 물리학 실험에서 AI 적응형 튜터링을 사용한 학생들의 학습 성과가 중앙값 기준 2배 이상 높았다는 결과가 이 모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반대편에서는 중국의 보통 가정들이 AI를 활용해 기존 입시 경쟁을 더 강화하고 있다. 허슈왕(虎嗅网)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학습기 시장은 2020년 252억 위안에서 2023년 512억 위안으로 두 배 넘게 성장했다. AI로 문제를 더 빨리 풀고, 더 많이 풀고, 더 높은 점수를 받는 데 기술이 쓰이고 있다. 아이러니다. 같은 기술이 한쪽에서는 기존 교육을 해체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존 교육을 극대화하고 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시간축이다. 지금 당장의 점수를 보는 사람과, 15년 뒤의 세상을 보는 사람 사이의 간극이다.

포브스(Forbes)의 2026년 7월 기사가 짚은 지점이 있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2,800개 직무 역량을 분석한 결과, 인공지능이 대체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것은 대인관계 기술이었다. 앤트로픽(Anthropic)의 공동창업자 대니엘라 아모데이(Daniela Amodei)는 대체되지 않을 것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얼마나 잘 소통하는가, 얼마나 친절한가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도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AI가 분석과 기술 업무를 맡으면서 공감과 감정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 더 가치 있어진다고.

교육이 가르쳐야 할 것이 바뀌었다. 정보를 저장하고 인출하는 능력은 이미 기계가 인간을 압도한다. 정해진 절차를 따르는 능력도 마찬가지다. 남는 것은 기계가 끝내 떠안을 수 없는 영역이다. 무엇이 옳은 질문인지를 판별하는 능력.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고 그 결과를 떠안는 능력.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에 맞게 자기를 조율하는 능력. 그리고 자기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스스로 감시하는 능력, 메타인지(Metacognition).

장자(莊子)의 달생편(達生篇)에 매미를 잡는 꼽추 노인 이야기가 있다. 공자가 초나라로 가는 길에 숲에서 긴 장대로 매미를 잡는 노인을 만난다. 한 번도 빗나가지 않는다. 비결을 묻자 노인이 말한다. 나는 다섯 달을 연습해서 장대 끝에 구슬 두 개를 올려도 떨어지지 않게 되면 놓치는 매미가 드물고, 세 개를 올려도 떨어지지 않으면 열에 하나 놓칠까 말까 하고, 다섯 개를 올려도 떨어지지 않으면 마치 땅에서 주워 담듯 잡는다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吾處身也 若厥株拘 吾執臂也 若槁木之枝. 나는 내 몸을 나무 그루터기처럼 세우고, 내 팔을 마른 나뭇가지처럼 뻗는다. 천지가 아무리 크고 만물이 아무리 많아도, 나는 오직 매미 날개만 안다. 돌아보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는다. 만물의 어떤 것으로도 매미 날개를 바꾸지 않는다. 이러고서야 어찌 잡지 못하겠는가.

이 이야기가 오래 살아남은 것은 기술의 숙련을 말해서가 아니다. 집중이라는 상태의 본질을 짚었기 때문이다. 노인은 매미를 잡는 기술을 배운 것이 아니라, 자기 전체를 하나의 행위에 완전히 일치시키는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이것은 알고리즘이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다. 기계는 정보를 처리하지만, 자기 존재를 하나의 목적에 온전히 거는 일은 하지 못한다. 거기에는 의지와 선택과 포기가 있기 때문이다. 만물의 어떤 것으로도 매미 날개를 바꾸지 않겠다는 것은 결단이다. 기계에게는 결단이 없다.

그래서 어쩌면 앞으로의 교육이 가르쳐야 할 것은 과목이 아닐 수 있다. 자기를 어디에 걸 것인지를 스스로 정하는 힘. 정한 뒤에 흔들리지 않는 힘. 틀렸을 때 다시 정하는 힘. 이 세 가지는 교과서에 없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기계가 모든 답을 제공하는 세상에서, 이 세 가지가 없는 사람은 기계의 출력물을 소비하는 쪽에 서게 된다.

중국의 그 교육 전문가가 옳은지 틀린지는 아직 모른다. 그 아이가 10년 뒤에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가 던진 질문은 엉뚱한 질문이 아니다. 16년 뒤에 사회에 나갈 아이에게 지금 학교가 가르치는 것이 정말 필요한가. 이 질문 앞에서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교육자가 얼마나 되는가. 허슈왕의 기사 제목이 묘하게 이 상황을 요약한다. 미국의 부유층은 낡은 학교에서 탈출하고, 중국의 가정은 AI로 낡은 경쟁을 강화한다. 가장 비싼 특권은 이제 낡은 경쟁에서 빠져나올 권리다.

학교가 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가 무엇을 가르치는 곳인지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정답을 외우는 곳에서, 질문을 만드는 곳으로. 정보를 저장하는 곳에서, 판단을 연습하는 곳으로. 기술을 익히는 곳에서, 자기를 아는 곳으로. 이 전환이 지금 당장 일어나야 하는 이유는, 인공지능이 3개월마다 한 세대씩 진화하기 때문이다. 학교가 10년에 한 번 교과 과정을 바꾸는 속도로는, 이미 졸업하기 전에 배운 것이 쓸모없어진다.

그 노인이 다섯 달을 써서 도달한 자리. 천지가 아무리 크고 만물이 아무리 많아도 오직 매미 날개만 아는 자리. 기계가 천지의 모든 정보를 쥐게 된 시대에, 사람에게 남는 것이 바로 저 자리일 수 있다. 다만 그 자리에 서려면 먼저 무엇을 버릴지를 정해야 하는데, 지금의 교육은 버리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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